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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꽃 곽성숙

시가 있는 풍경-올해 마지막 능소화를 만나다/구례 화엄사 나무 한그루가 주는 기쁨이참 크다는 걸 보여주는 곳이 바로 구례 화엄사이지요.  봄에는 흑매화 한 그루가, 여름에는 능소화 한 그루가절집 풍경을 압도하는 곳입니다.  올해 마지막 능소화를 만나고 옵니다.구례 화엄사입니다. (2024년 7월 13일)      구우/차꽃 곽성숙 젖몸살을 앓던 능소화 꼭지가밤새 내린 비에 채 피지 못하고흙담 너머로 투두둑 내려 앉았다미처 피지 못한 꽃봉지, 땅에서나마 피려는지신열의 몸살을 앓는다 이른 아침 사이좋은 자매의 발에꽃봉지 빵 울려 터질 때, 그 가난한 축복이 실로 갸륵해서능소화, 폭포 같은 웃음으로 피어난다 *구우-궂은 비 또는 장맛비      구례 화엄사 능소화가 피었다길래이른 아침 길을 나섭니다.  길 초입에 자귀나무 꽃이 반겨줍니다               입.. 더보기
시가 있는 풍경-순천향교 가는 길 붉은 마음/차꽃 곽성숙 어느 이른 아침벽에는 실금이 가고 녹슨 철대문 앞에밤새 붉은 꽃이 피었어요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더라고요밤새 당신이 피우신 것이라고믿기로 하는 내 마음조차 모르겠더라고요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 찔끔찔끔물을 주다 훅 눈물이 떨어졌어요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아홍심我紅心, 불러보아요꽃의 이름을 그렇게 붙여 주었어요 나의 붉은 마음을 모르겠더라고요천둥치는 붉은 내 마음을그가 왜 모르는지 진정 모르겠더라고요.  곽성숙 제2시집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에 실린 시입니다.      순천향교 가는 길, 붉은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올해 여름 내내 마음이 가서자꾸만 찾아다녔던 꽃,        능소화가 비 속에,        담장 위에 피어 있습니다                    .. 더보기
시가 있는 풍경-아버지의 마당 아버지의 마당/차꽃 곽성숙 능소화가 피는 우리집 다무락은 낮고 평평했다담 윗부분은 유독 넓고 두툼해서 노을이 질 때 나는 거기 올라가음악을 듣고 차를 마신다 능소화도 함께 걸터 쉰다우리는 별이 된 아버지를 그리워 했다우리는 그의 마당을 사랑했다 능소화를 아끼는 아버지가 떠난 해는무슨 일인지 꽃이 피지 안했다능소화 올라오는 다무락을 사랑하던 아버지 마당은 지는 해에 순하고 둥그렇다 흙마당의 꽃밭에는 모르는 꽃이름 투성이다알았다가 잊어버린 이름, 시간이 가도 친근한 이름들이 항꾸네 지낸다 아버지는 지금도 밤마다 별빛으로 내려와 마당을 어루만지고 꽃들을 돌보신다                                            요즘 차꽃 언니가 능소화에 대한 시를 자꾸 보내옵니다. 저는 그 시에 어.. 더보기
시가 있는 풍경-길갓집 길갓집/차꽃 곽성숙 지나는 사람들이 만만하게 들여다보는무궁화 울타리 낮은 집에 살았다해질녘 마루에 앉은 엄마는,한숨이 들락대는 바가지 옆에 끼고새끼 마늘을 누런 양재기에 담아 까곤 했다 오른쪽 무너진 담 위에 까만 기와를 얹어보수공사를 대신했던 담장이 어설프게 모여먼지를 마시곤 했다어느 해 태풍에, 와르르 주저앉자 엄마는 아, 참 잘됐다며 성한 곳도 밀어내고 말았다벽돌 대신 무궁화를 촘촘히 심었다 담장으로 자리해 활짝 핀 무궁화는길갓집으로 건너보기 더 만만한 집으로 만들어때때로 사진기들이 기웃기웃했다여전히 마루에 앉은 엄마는, 사진기의 물음에 이런저런 대답을 내주었다 어쩌면 쓸쓸만 감돌았을 해질녘이 그윽해지고버석버석 마른 낙엽 같았던 엄마의 일상도 조금씩 촉촉해졌다 길갓집이어서,              .. 더보기
시가 있는 풍경-꽃등 꽃등/차꽃 곽성숙 나무의 새순에, 고목의 매화에, 꽃들의 꽃그늘에, 달콤한 저녁노을에, 저녁노을의 풀꽃에, 풀꽃을 어루만지는 바람에도 사랑이 꽃처럼 늘어나는 봄날입니다 순자씨는 이른 저녁을 먹고 동무의 손에 굽은 허리를 의지하며 꽃길을 갑니다. 순자야, 꽃보러 가자 참꽃 피면 흙담장에서 부르던 내 동무, 그립습니다 수만 송이 꽃등을 밝힌 꽃길이 환합니다 꽃이 나이고 내가 꽃이 되는 순간입니다 화전 짓던 동무들과 꽃길에 앉아, 당신이 눈을 깜박일 때마다 꽃등이 켜지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아름다운 시가 되는 순간입니다. 수만 송이 꽃등이 밝힌 꽃길... 걸으시는 봄날 되시길 바래봅니다. 더보기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차꽃 곽성숙님의 출판기념회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곽성숙 선암사 해우소의 맞배지붕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 어느 시인이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어 와송의 등굽은 허리에 기대던 그가 어깨를 들썩이다 무릎을 꿇고 곧 소리를 내었지 삶이 통곡을 하는 건, 해우소에 앉는 것과 같아 가벼워지는 것이니 난 묵묵히 내려다 보는 것으로 그를 위로 했지 시옷이란,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는 것이기에 그의 어깨를 안고 따라 울면 되지 소리없이 손길만 주면 되지 가만히 등만 내어줘도 되지 옆에 말없이 서 있어만 줘도 통곡은 빛이 나고 할 일을 다하는 것, 박공널의 시옷이 되는 것은 내게 기대도록 너에게 곁을 주는 일이야 *박공지붕의 양쪽 끝면에 ‘ㅅ’ 자 모양으로 붙인 널빤지 1집 '날마다 결혼하는 여자'를 펴낸 차꽃 언니, 지난 봄에 2집 '박공널의 시옷.. 더보기
사무치는 마음으로 가고 또 가는 정자-환벽당 겨울 환벽당/곽성숙 '푸르름이 두른 집' 환벽당*을 풀어보는 이 말, 좋아서 몇 해가 되도록 오고 또 왔건만 여지껏 그 이름값을 몰랐다 나, 이 겨울 환벽당에 와서 비로소 무릎을 친다 봄에는 홍매에, 여름엔 꽃무릇에, 가을엔 스산한 내 기분에 눈을 빼앗겼구나 모두 다, 오던 곳으로 보내고 저만 혼자 발가벗고 남으니 비로소 이름값하는 겨울 환벽당을 본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오니 이토록 환하고 푸르른 것을 내가 가리고 네 탓을 하였구나 아하, 그랬구나! 아직 제 마음 찾지못한 사람아, 겨울 환벽당으로 가라 푸르름 둘러친 환벽당 서늘함이 대숲에서 나와 스민다. *환벽당(環碧堂): 무등산 자락인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 (날마다 결혼하는 여자/지혜출판/2016) 차꽃 언니의 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