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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시가 있는 풍경-길갓집

 

 

길갓집/차꽃 곽성숙

 

지나는 사람들이 만만하게 들여다보는

무궁화 울타리 낮은 집에 살았다

해질녘 마루에 앉은 엄마는,

한숨이 들락대는 바가지 옆에 끼고

새끼 마늘을 누런 양재기에 담아 까곤 했다

 

오른쪽 무너진 담 위에 까만 기와를 얹어

보수공사를 대신했던 담장이 어설프게 모여

먼지를 마시곤 했다

어느 해 태풍에, 와르르 주저앉자 엄마는 

아, 참 잘됐다며 성한 곳도 밀어내고 말았다

벽돌 대신 무궁화를 촘촘히 심었다

 

담장으로 자리해 활짝 핀 무궁화는

길갓집으로 건너보기 더 만만한 집으로 만들어

때때로 사진기들이 기웃기웃했다

여전히 마루에 앉은 엄마는, 

사진기의 물음에 이런저런 대답을 내주었다

 

어쩌면 쓸쓸만 감돌았을 해질녘이 그윽해지고

버석버석 마른 낙엽 같았던 엄마의 일상도 조금씩 촉촉해졌다

 

길갓집이어서, 

 

 

 

 

 

 

 

 

 

 

 

 

 

 

 

 

 

 

 

 

 

 

 

 

 

 

 

 

 

 

 

 

 

 

 

 

 

 

 

 

 

 

 

 

 

 

 

 

 

 

 

 

 

 

 

 

 

 

반쯤 허물어진 담장, 

녹슨 대문, 

무궁화꽃은 아니지만, 

연분홍빛 복사꽃이 핀 길갓집... 

 

마루에 앉은 엄마는 안보이고, 

담장 아래 냉이꽃이

환하게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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