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3일, 단풍이 중부 쯤에 도착하지 않았나 편지를 보내보니, 한창이라고 하네요. 서둘러 길을 나서봅니다. 함께 가기로 한 친구 중 하나는 어제 밤의 과음으로 아까운 장면을 놓치고 배 아파하네요. 사진이 잘 나와야 많이 배아파할텐데요. 걱정이네요 ㅎ~
삼선 계단을 오르면 펼쳐지는 대둔산의 절경
대둔산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바라본 대둔산 -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네요.
대둔산의 유래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둔산고산현북45리라 쓰여있고, 300년전(1658년)에 썼다는 안심사적비에는 바위에 가로로 크게 "대둔산 안심사비"라고 적혀있다
그 아래 비문 첫줄에 "조선국 전라도 고산현 대둔산 안심사 사적비명"이라고 쓰여있다. 모두 싹나올 둔(芚)자를 써서 대둔산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둔산의 바른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인 "한듬산"이다. 이 한듬산을 한자화한 것이 대둔산이어서 '듬'의 뜻이 들어 있지 않고 다만'듬'과 비슷한 한자를 음자화한 것이 '둔'이므로 그 둔자가 한자로 어느자인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별곡, 가야곡 등 일부 논산 사람들은 그 쪽에서 보는 한듬산의 모습이 계룡산과 비슷하지만 산태극, 수태극의 대명당 자리를 계룡산에게 빼앗겨 한이 되어 '한이 든 산'의 뜻으로 한듬산이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옛날부터 이산자락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지금도 대둔산이라 하지 않고 한듬산이라 부른다.
대둔산의 능선
이치전적지 - 이곳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에 전라도절제사 권율의 독전하 동복현감 황진 장군등이 왜적을 격파한 전적지이다. 왜장 고바야가와 다카가게는 금산에서 웅치 방어선을 뚫고 호남의 수도 전주를 침공하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진 장군은 남원진에서 급히 전주로 와 안덕원까지 침입한 적을 물리치고 바로 이치로 달려가 휘하의 장수 공시억, 위대기, 의병장 황박등과 함께 사력을 다하여 싸우다가 한때 부상도 입었으나 마침내 적을 대파하니 적의 시체가 수십리에 즐비하였으며 아군의 피해는 적었다. 이에 왜적은 전주침공의 야욕을 버렸으니 이 대첩을 임진왜란 3대첩의 첫째로 손꼽기도 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르면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이 펼쳐집니다. 갑자기 산에 오르려던 마음도 사라지고, 이곳에 벤치에 앉아 차 한잔 마시고 싶어집니다.
탄성~ 탄성~ 혼자 깡총거리고 뛰어다니고 싶어집니다.ㅋㅋ
대둔산 단풍 사진도 한 장~
삼선계단 맨 위자락에 앉아 경치를 즐기는 일은 참 행복하네요.
삼선계단의 맨 끝자락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니 금강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이 보이네요
조금더 가까이에서 구름다리를 한 컷 - 뒤로 길게 늘어선 줄 보이시죠? ㅠㅠ
대둔산의 정상인 마천대가 조그맣게 보이네요.
산 뒤에 산- 산 사이의 운해가 끼어 바다처럼 보입니다
생뚱맞은 마천대 정상 - 생뚱맞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네요. 이것을 이 정상에 올리느라 애썼던 사람들이 안스럽기까지 하네요.
마천대는 878m 높이의 대둔상의 정상입니다.
돌틈의 나무와 하늘
앞의 조그만 바위가 동심 바위랍니다. 신라 문무왕 때 국사 원효대사가 처음이 바위를 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 이 바위 아래서 지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랍니다.
케이블카는 주차장에서 금강구름다리 근처까지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처마에 매달린 감들이 사랑스럽네요. - 오래된 감--> 조금 덜 오래된 감 - 시골 처마에 걸려 있었다면 더 사랑스러웠겠지요
내려오는데 퉁소 가락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 멋을 아시는 분입니다. - 아마 이분도 낙엽 쌓인 이길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멋진 퉁소를 불고 계시겠지요?
수북이 쌓인 낙엽
서운한 마음에 사진 한 장 더 찍어봅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대둔산
충남과 전북의 경계에 있는 산이 대둔산이군요.
사람이 너무 많아 오르기도 어렵고, 내려오기도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산행 코스를 길게 잡았다가 정상만 올랐다 그냥 내려옵니다.
눈 오는 날, 다시 오리라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따스한 가을 날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