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에는 곳곳에 아름다운 곳들이 많아
여행자를 자꾸 부르는 곳이지요.
작년에 거제를 그리 많이 다녔던 여행자인데
거제의 자연 풍경들에 반해, 늘 풍경을 찍기에 바빴던 여행자..
지난 거제 여행에서는 이른 아침 장승포에서 일출을 담고
늘 이정표만 보고 지나쳤던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향합니다. (2012년 1월 8일)
멀리서 온 언니에게 보여주기 위해 들른 곳입니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포로들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한국전쟁이 장기화되며 포로가 늘어나자 1951년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됐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는‘반공포로’와‘친공포로’ 사이의 유혈살상이 빈발했고,
수용소 사령관이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수용소는 휴전이 협정된 후 폐쇄됐다고 합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이렇듯 한국전쟁의 아픔이 간직돼 있는 곳입니다.
잔존한 건물과 자료, 기록물, 막사와 의복, 재현된 모습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진은 당시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유적지의 모습입니다.
이제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찬찬히 둘러볼까요?
일찍이 포로의 수가 증가하고 그들을 수용·관리하는 문제가 어려워질 조짐이 보였을 때,
유엔군사령부는 그 대책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포로를 분산시켜야 할 필요성과 공산포로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된 대책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지고 육지와도 격리된 섬으로 포로를 옮겨 놓는 방법이었다.
이때 유엔군사령부가 수용소 후보지로 생각한 섬이 제주도였다.
유엔군사령관은 미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장군에게 부산의 포로수용소를 제주도로 옮길 것을 고려해 보도록 지시하였는데,
리지웨이장군은 제주도가 포로수용소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표시하였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안내글에서 가지고 온 글입니다-
제8군사령관이 제주도를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고 했던 이유는
①제주도가 이미 피난민으로 초만원이 되어 있다는 점,
②사용할 물이 부족하다는 점, ③오랫동안 공산주의 세력이 강했다는 점,
④피난한 한국 정부가 이 섬을 임시정부의 이전 장소로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이었다
그러나 1950년 말에 중공군의 반격을 받아 사태가 극도로 불리해지면서
아군이 다시 서울을 빼앗기고 계속해서 후퇴하게 되자,
이번에는 리지웨이장군이 태도를 바꾸어 제주도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1951년 1월 11일의 일이었다.
제8군사령관이 찬성함으로써 유엔군사령부는 제주도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할 권한을 그에게 부여했다.
그런데 포로 수용소의 위치를 선정하는 문제가 거의 매듭 지워질 순간에
거제도가 포로수용소 후보지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결국 이 섬이 포로수용소 이전 장소로 최종 결정되었다.
거제도가 선정된 이유에 대해서는 섬이라는 조건과 육지로부터의 이동 거리 등이 고려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안내글에서 가지고 온 글입니다-
표를 끊고 드디어 안으로 들어섭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한국전쟁 당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의
사진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포로수용소 디오라마관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배치 및 포로의 생활모습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재현해 놓은 곳입니다.
거제도가 포로수용소 설치 장소로 확정되자 1951년 초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몇 개의 마을이 수용소 부지로 선정되고, 부산의 포로를 이곳으로 이동시키는 "알바니작전"이 계획되었다.
계획 수립 과정에서 처음에 구상된 시설은 6만명을 수용할 규모였으나,
나중에는 22만명의 포로를 수용하는 규모로 계획이 확대되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던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하는 일운면 고현리(현 거제시 신현읍)를 중심으로
용산, 장평, 문동, 양정, 수월, 제산리와 연초면의 임전, 송정리(포로 공동묘지 지역), 그리고 동부면의 저구리 일대였다.
전쟁 후반에 포로 분산 작전이 실시되었을 때는 이 섬의 남단 해상에 있는 봉암도, 용초도에도 수용소가 설치되었다.
수용소가 들어선 지역은 대부분이 농토와 임야로서 정부가 이를 징발해서 사용하였다.
수용소가 들어섰던 지역의 디오라마와 안내도
거제도는 포로를 안전하게 수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수용소 시설 공사면에서는 어려운 점이 많은 곳이었다.
당시 미처 개발이 되지 않고 야산이 많았던 이 섬은 평지라고 할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평평한 땅이라고는 경작지로서 대부분 논이었으므로, 물을 빼고 말려서 흙을 채워 넣어야 했다.
사용할 수 있는 도로도 거의 없었으므로, 도보길 또는 우마차 길을 확장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만 했다.
해상으로 포로와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서 선박이 접근할 수 있는 정박 공간과 시설도 새로이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지만 공사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수용소 시설은 부산 수용소와 거의 다름없었다.
먼저 도착한 포로들은 자신들이 수용될 장소에 울타리를 세우고 철조망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불도저로 정지 작업을 한 다음 철조망을 둘러치고 감시 망루를 설치하고 그 안에 천막을 쳤다.
이렇게 해서 거제도의 들판이 온통 천막으로 덮인 것처럼 되었다.
막사는 처음에는 이런 천막들 뿐이었으나, 그 후 해가 지나면서 흙 벽돌로 담을 쌓고 난방이 됨으로써 겨울에도 추위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안내글에서 가지고 온 글입니다-
수용소 내의 포로들의 생활상을 디오라마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디오라마에 관한 설명들...
디오라마관을 지나니 북한군 남침이라는 모형물이 세워져 있네요.
참호 안의 병사들..
6.25역사관
전쟁 발발에서 휴전까지의 기록..
무기들로 만들어진 생활용품들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구요.
한국전쟁에 지원했던 국가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대동강 철교가 재현되어 있습니다.
흰벽에 비친 그림자가 끊어진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야기 하는 듯 합니다.
대동강철교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이 다시 후퇴하게 되자
피난민들은 폭파된 평양의 대동강 철교를 타고
험난한 피난의 길에 올랐습니다.
또 이곳에는 3,000개의 침대를 보유한 제64야전병원과, 합계 2,500개의 침대를 가지고 있는
2개의 별관부속 병원(요양소)이 설치되었다.
또 바다를 통한 포로 및 물자의 양륙을 위해서 5개소의 LST 상륙부두가 있는 항구가 만들어졌다.
포로생활관
공사를 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부산에 있던 포로가 이곳으로 수송되기 시작하여서,
2월 말에는 이미 5만여 명의 포로가 옮겨졌다.
3월 1일에는 주요 본부 및 부대가 거제도로 이동되었으며,
나머지 인원의 이동도 계속되어 3월 말까지 거제도로 이송된 포로의 수는 모두 약 10만명에 이르렀다.
포로수용소 내의 생활상들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이발하고, 밥을 짓고..
포로들의 사역과 목욕..
포로수용소 내에서의 포로들의 일과는 통상 다음과 같았다.
○ 오전 5시 30분
○ 오전 6시 30분 전원 집합 점호
○ 오전 7시 오전 일과 시작
○ 오전 11시 30분 점심식사
○ 오후 1시 작업 인원 집합, 오후 일과
○ 오후 4시 일과 종료
○ 오후 5시 저녁 식사
○ 오후 8시 점호후 취침
포로생활관 옆에 위치한 M.P 다리
1917년에 가설한 연초면 연사리 연사교에
1952년 5월 7일 '돗드'준장이 친공포로에게 납치되자
포로수용소 지역 내의 주민 1,116세대를 소개시키고 출입을 통제하던
유엔군 헌병검문소가 설치되었습니다.
포로생포관
당시 포로를 생포하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1951년 당시의 포로수용소의 모습
오늘의 포로수용소의 모습
포로수송
포로들은 LST에 승선하여 해상을 통해
거제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고 전쟁포로의 신분으로 수용소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51년 3월에 10만명에 이르던 포로는 5월 말에는 11만 5천여 명이 되었고,
6월 말에는 포로 이송 작업이 거의 마무리가 되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수용 인원수가 14만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결국 부산에는 거제리 병원수용소만 남고 나머지 전 포로가 거제도로 이송되었다.
물론 그 후에도 전방에서 수집된 포로가 부산으로 모이고, 그 인원이 다시 거제도로 이송되는 과정은 계속되었다
갑자기 증가된 포로는 유엔군측이 조직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설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많은 포로들은 점차 조직화되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로 갈라진 채 사상대립 양상을 띄게 되었으며
갈등과 증오가 시작되었다.
여자포로관과 포로폭동체험관
인민군 출신과 전쟁지원을 위하여 동원된 여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들 역시 같은 민족이었지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상과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자 포로들의 생활모습
그리고 휴전 후 북으로 떠난 여자 포로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전쟁폭동체험관을 들어서면
무기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시각적인 것들과 함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깜짝 놀라게 되는 곳입니다.
휴전회담에서 전쟁포로문제로 협상이 어렵게 되자 미국측은 부상을 입었거나 병든 포로를
우선적으로 교환하자는 제안을 공산군측에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양측은 1953년 4월 20일부터 상병포로를 교환하기로 합의하였다.
당초 공산군측은 한국인 450명과 유엔군 150명, 합계 600명의 상병포로를 보내겠다고 알려 왔으며,
유엔군측은 5,100명의 북한인과 700명의 중국인, 합계 5,800명을 보내겠다고 통보하였다
전쟁포로들은 거제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다시 부산에서 기차로
문산 북쪽 4KM 지점에 설치된 환승지점까지, 그리고 다시 석방지점까지 후송되었다.
유엔군측이 '리틀스워프 작전'이라고 이름 붙인 상병포로 교환 업무는 예정된 대로 4월 20일에 시작되어
5월 3일 마지막 상병포로를 공산측에 인계함으로써 종료되었다
철모광장과 유적관..
그리고 포로수용소 막사촌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막사촌을 둘러싼 철조망..
평화로운...
그 철조망에 걸린 소원입니다.
철조망 사이로 당시의 천막이 보입니다.
철조망 안쪽으로는 포로들을 감시하던 망루가 설치되어 있고
1953년 2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매일 94톤의 쌀 및 다른 곡물이 소비되고 있었다고 하지요.
그만큼 많은 인원이 수용되어 있었던 이곳..
소변기와 대변기가 바깥에 오픈되어 있는 구조,
앞쪽으로 돌아가다 허걱~ 놀라게 됩니다.
포로수용소 막사 내부
포로들은 천막으로 된 막사에서 생활했습니다.
짚이 깔린 이 한뼘의 공간에 두명이 누워잤던..
당시 경비초소
경비초소 내부의 모습입니다.
무기전시장을 지나
남아있는 기존 유적지 구역에 이릅니다.
경비대장 집무실과 경비본부
p.x 그리고 무도장이 남아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거제도는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곳곳에 이런 유적지들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거제도 계룡산 꼭대기에 올라도 이런 유적지가 남아 있습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오는 길,
철조망 너머에 어떤 슬픔이 있는 곳인 듯
느껴집니다.
이곳에 올린 글의 대부분은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안내글에서 가지고 온 글입니다
더 자세한 안내를 원하시면 http://www.geojeimc.or.kr/pow/index.htm 을 클릭해 보세요.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찾아가는 길
대전 통영 고속도로- 통영 ic - 국도 14호선 거제방면 - 거제시청 지나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또는 부산쪽에서 오실 때는 신항만방면에서 거가대교 - 국도 14호선 거제방면 - 거제시청 지나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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