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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Turkey)

아타튀르크가 잠들어 있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터키13

 

 

 

터키의 수도, 앙카라...

유적지는 많지 않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지요.

기원전 2,000년 경에는 고대 히타이트 왕국의 중심 도시였으며, 기원전 8세기에는 프리기아의 요새로, 로마와 오스만 제국을 거치는 동안에는

중부 아나톨리아의 문화와 교역의 중심 도시로 명성을 날렸던 곳입니다.

오스만 제국 초기 동방의 강자 타무르 칸과 격전을 벌인 무대도 바로 이 곳 앙카라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앙카라는 거대 도시 이스탄불의 명성에 밀려 일개 지방 도시로 전락합니다.

앙카라가 다시 부활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의 아버지, 아타튀르크는 오스만 정권과 외세에 맞서는 저항의 중심지로

앙카라를 선택했고, 구세대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의미에서 1923년 10월 앙카라를 터기 공화국의 수도로 선포합니다.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있는 울루스 광장의 모습(2010년 6월 29일)

 

 

 

아타튀르크의 묘소

 

터키 공화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기리기 위한 영묘.

아타는 아버지를, 튀르크는 터키를 뜻하는 말로 즉, 터키의 아버지를 뜻합니다.

 

무스타파 케말은 1881년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그리스의 살로니카에서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2세부터 군사교육을 받았으며, 1904년 이스탄불의 하베에르 육군 참모 대학에 입학합니다.

졸업 후에는 변방을 전전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의 최대 격전이었던 갈리폴리 반도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국가적인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1차 대전 후 패전국이 된 오스만 제국이 영토분할을 골자로 하는 조약을 강요당하자, 민족 독립전쟁을 주도하게 됩니다.

1920년 앙카라에 임시 정부를 세우고 그리스 점령군을 완전히 격퇴한 그는 1923년 7월 터키의 독립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로잔 조약을 연합국과 체결하고

그 해 10월 앙카라를 수도로 공화제를 선포하고,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그는 재임하는 동안 근대화를 위한 수많은 개혁을 단행했다고 하지요.

이슬람 전통 복장을 폐지하고, 남녀 교육 기회의 균등, 일부 일처제, 아랍 문자를 폐지하고 로마자를 터키어로 하는 문자 개혁,

여성 선거권 부여, 인구 조사를 하여 <성>을 부여하기도 하였구요.

그래서 1934년 터키 국회는 무스타파 케말에게 아타튀르크라는 호칭을 수여합니다.

그는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에 5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지요.

앞서 소개한 돌마바흐체 궁전은 그의 마지막 집무지로써 그의 방의 시계는 그 시간에 멈춘 채 자리하게 되었구요.

 

터키의 모든 도시에 아타튀르크 광장과 동상이 있으며, 화폐에도 아타튀르크의 초상을 새겨 넣어 터키의 아버지로 기리고 있다는...

 

 

 

 

 

해질 무렵, 도착한 앙카라의 모습

 

 

 

 

울루스 광장 쪽 숙소에 묵게 되었는데, 산 위로 집들이 지어져 있습니다.

 

 

 

 

앙카라 성의 모습도 보입니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실크로드 대상들의 중간 기착지였으며, 군사적 요충지로 방어의 중요성 때문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성벽은 갈라티아인들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비잔틴, 셀주크 투르크를 거치며, 필요에 따라 조금씩 증축되었다고 합니다.

 

 

 

 

석양 속의 앙카라의 모습

 

 

 

 

해가 지고 하나 둘씩 불 밝히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해가 뜨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출과 일몰 시간의 고요...

 

 

 

 

그 고요함을 만끽하는 시간...

새의 날개짓하는 소리가 들릴 듯한...

 

 

 

 

인구 400만 명.

해발 고도 850m.

터키의 수도이지만, 카파도키아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로 들른 곳..

아타튀르크의 도시를 뒤로 하고 카파도키아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