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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우뚝우뚝 솟은 은행나무들-전주향교

 

 2010년 5월 13일, 전주 여행의 마지막 여정입니다.

우람한 은행나무들이 몇 백년 수를 자랑하며 밀밀하게 서 있는 전주향교..

가을날 이 은행나무들, 노오랗게 물들어 날린다면, 그것 또한 장관일테지만.. 이 푸르름 또한 좋은 계절입니다.

 전주 향교의 입구인 만화루~

만화루 위에 올라가 쉬었다 갈 수도 있고, 입구에 잠깐 앉아 쉬었다 갈 수도 있는 넉넉한 향교입니다.

 만화루를 들어서면 중문에 해당하는 일월문이 자리하고..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 양반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나랑에서 세운 학교입니다.

전주 향교는 세종 23년(1441) 경기전 근처에 지었다가 전주 서쪽의 화산 기슭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향교가 전주성 밖에 있어 다니기가 불편하자, 선조 36년(1603) 전라 감사 장만이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현재 경내에는 공자 등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계성사, 중국과 우리나라의 훌륭한 유학자 분들의 위패를 모신 동무, 서무, 유학을 가르치던 명륜당, 그리고 학생의 기숙사로 사용한 동재와 서재 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일월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보입니다.

대성전은 공자를 모신 사당입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향교에 공자를 모신 사당을 두고 유학을 장려했습니다.

이 대성전은 효종 4년(1653)에 다시 세우고, 대한제국 융회 원년(1907)에 다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를 가운데 모시고, 동, 서쪽으로 맹자 등 네 성인, 공자의 제자 열 사람, 주자 등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여섯 사람을 함께 모셨습니다.

동무. 서무에는 신라시대 설총을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 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향교에서는 매달 음력 초하루 보름에 사당에 향불을 피워 올리고, 매년 봄, 가을에는 석전대제를 지냈습니다.

관청의 후원을 받아 향교의 선비드링 주관하여 치렀던 이 제사는 공자의 뜻을 기리는 큰 행사였다고 합니다.

 대성전 왼쪽에 자리한 동무와 400년 정도 된 은행나무의 모습

 

 대성전과 오른 쪽에 자리한 서무의 모습

 대성전과 명륜당의 앞뜰에는 이렇게 400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각각 2그루씩 자리하고 있습니다.

벌레를 타지 않는 은행나무들처럼 유생들도 건전하게 자라 바른사람이 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대성전을 지나 다시 내문을 하나 지나면 명륜당과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명륜당

 예전에는 학생들의 기숙사로 씌였을 이 건물은 이제 강의실이 되어 있습니다.

명륜당이나 이곳에서 지금도 강의가 가끔 열리나봅니다.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모셨다는 계성사

 향교를 돌아보고 나오며, 입구의 누각에 올라봅니다.

은행나무 우뚝 솟은 향교의 모습이 넉넉하게 한눈에 보입니다.

 

비 내리는 날..

검은 나무 기둥에서 풍겨오는 수백 년 묵은 향을 따라..

다시 들러보고 싶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