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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권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따라 찾아간 도심 속 작은 사찰-길상사/가을 추천 여행지

 

 

 

내가 백석白石이 되어

- 백석과 자야 · 2

 

나는 갔다

백석白石이 되어 찔레꽃 꺾어 들고 갔다

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 준 신발을 신고 갔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길을 몰라도

찾아갈 수 있다는 신비한 신발을 신고 갔다

 

성북동 언덕길을 지나

길상사吉祥寺 넓은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

젊은 여인들은 날 알아채지 못하고

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子夜*에게 달려갔고

나는 극락전極樂殿 마당 모래를 밟으며 갔다

눈 오는 날 재로 뿌려달라던 흰 유언을 밟고 갔다

 

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겼다

느티나무 밑은 대낮인데

참나무 밑은 우리 둘만의 밤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죽어서 만나는 설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

한참 울다 보니

그것은 장발張勃**이 그려놓고 간 그녀의 스무 살 때 치마였다

나는 찔레꽃을 그녀의 치마에 내려놓고 울었다

죽어서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손수건으로 닦지 못하고

울었다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죽은 뒤에 찾아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 향기처럼 속이 타 들어갔다는 말을 못했다

 

* 자야子夜: 시인백석은 젊었을 때 김영환을 '자야'라고 불렀다.

 

** 장발張勃(1901-2001) : 서양화가, 호는 우석雨石. 서울대 미대 초대 학장을 지냈으며,

대표적으로 김대건 신부상, 명동성당 제단 벽화가 있다.

그는 자야의 20세 때 모습을 초상화로 그렸다. 

이생진 시인의 그 사람 내게로 오네 122~123쪽 / 우리글/ 2003

 

미로 같은 주택가를 굽이굽이 돌아가다 보면

고즈넉한 작은 사찰을 만납니다.

성북동 길상사...

 

백석시인과 그의 연인이었던 자야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있는 곳이지요.

이생진 선생님의 <내가 백석이 되어>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란 시를 읽으며

길상사로의 여행을 꿈꾸왔던 여행자입니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따라 찾아간 도심 속 작은 사찰

길상사로 떠난 가을소풍입니다. (2013년 10월 25일)

 

 

 

 

가을은 빛깔로 먼저 찾아오지요.

붉은빛, 노란빛..

 

그 빛깔을 따라 길 나서보면

시원스런 가을 바람과 푸르른 하늘과 높은 태양이 반겨주는 날들입니다.

 

 

 

 

아름다운 가을날,

<내가 백석이 되어>란 시속의 자야와 길상사 극락전 그리고 느티나무를 만납니다.

 

백석시인이 자야라 불렀던 김영한(1916∼1999)

그녀는 열 다섯살에 결혼했으나 남편이 우물이 빠져 죽어 청상이 됐습니다.

갈 곳이 없는 그녀는 권번 기생으로 나섰으며,

미인으로 가무는 물론, 시서화가 뛰어나 곧 최고 기생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하지요.

조선의 많은 지식인이 그녀를 연모했다고 합니다.

스무살 되던 해 그녀는 뛰어난 재주를 아까워하던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원하던 사람 중의 한명이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투옥되자

2년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함흥으로 돌아왔습니다.

은인을 옥바라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였던 백석시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습니다.

둘은 만난 지 하룻만에 동거를 시작해 석달간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지요.

 

 

 

이에 백석의 아버지는 아들을 그녀로부터 떼놓고는 다른 여자와 강제 혼인을 시켰다고 하지요.

백석은 혼인날 밤 도망쳐 먼저 서울로 와 있는 그녀와 다시 만나 한동안 동거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젊은 백석의 앞날을 걱정해 헤어지자고 했고,

그런 그녀에게 백석은 러시아로 떠나자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백석 모르게 숨어버렸습니다.

마침내 백석은 혼자 러시아로 떠났고 둘은 영영 생이별해야 했습니다.

해방된 다음 백석은 북한으로 돌아왔고, 그새 그녀는 서울에서 요정을 열어 큰 돈을 벌었다고 하지요.

이후 그녀는 '삼청각' '오진암'과 함께 서울의 3대 요정으로 손꼽히는 대원각의 여주인이 되었습니다.

그 대원각이 바로 이곳, 지금의 길상사입니다.


 

 

 

백석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을 보낸 김영한..

그녀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깨달음을 얻은 후, 

법정 스님을 만나 당시 1,000억이 넘는 '대원각'을 받아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정 스님을 10여 년간 꾸준히 찾아갔고

그리하여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가 문을 열게 됩니다.

 

 

 

 

<내가 백석이 되어> 시속의 극락전 안을 들어가 보려고 했더니

한창 불공을 드리고 계시네요.

 

길상사는 대웅전 대신 극락전을 두고 있는 절집이지요.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아미타불은 서방 정토인 극락세계에 머물며 불법을 펴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입니다.

 

살아서 사랑을 다 이루지 못한 그녀, 자야는 아미타불의 힘을 빌어 모든 한을 내려놓고

서방정토에 이르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에서 아미타불을 모셨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살아 생전 매년 백석의 생일이면 하루동안 곡기를 끊고 방안에 앉아 불경을 외우며 그를 기렸다고 하지요.

또한 수억원을 쾌척해 백석문학상을 제정, 문학도를 지원하기도 하였구요.

 

 

 

 

백석과 자야의 사랑 이야기가 있는 길상사

오려고 하였으면 진작 다녀왔을 곳인데

이생진 선생님과 꼭 함께 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이생진 선생님의 <내가 백석이 되어>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를

이곳에서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낭송으로 이곳에서 들어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지요.

 

이생진 선생님과 바람패밀리

드디어 이곳 길상사를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
그게 무슨 소용있어 '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 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이생진 시인의 그 사람 내게로 오네(시로 읽은 황진이)119~120쪽/우리 글/ 2004

 

길상사 개사식에서 법정스님은 김영한에게 '길상화보살'이라는 법명을 지어주셨다지요.

길상화 김영한의 '공덕비' 앞에 서서 이생진 선생님이 백석과 자야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십니다.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를 들으며

올려다본 하늘에는 가을이 빛나고 있습니다.

 

 

 

 

길상사 곳곳에서 이생진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을 따라가 봅니다.

이생진 선생님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계시는 차꽃언니와 툰지님..

 

 

 

 

이 아름다운 가을날, 길상사로의 소풍에 함께 해주신

고마우신 선생님~

 

 

 

 

길상사의 설법전

당초 대원각 시절에는 없던 건물이라고 하지요.

 

 

 

 

이 설법전 앞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상 눈길을 끕니다.

간결하면서도 현대적이기도 한,

모딜리아니의 여인이 떠오르기도 하는 관세음보살상입니다.

 

검색을 해보았더니 본래 천주교 신자였던 조각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길상사의 개사식 날에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스님이 나란히 축사를 하기도 하였다니

길상사의 넓은 품을 짐작해 봅니다.

 

 

 

 

길상사 곳곳에는 법정스님이 남긴 글들이 걸려 있습니다.

"여기 침묵의 그늘에서 그대를 밝히라"

"이 부드러운 바람결에 그대 향기를 실으라"

 

 

 

 

설법전 근처에 자리한 석탑,

이곳은 절집이 틀림없습니다^^

 

 

 

 

길상사에 내려앉은 가을을 따라 걸어 봅니다.

 

 

 

 

붉은 담쟁이 덩쿨에도 눈맞춤하며 걷는 길..

 

 

 

 

그 길의 끝에서 법정스님의 진영각을 만납니다.

 

 

 

 

"풍요는 사람을 병들게 하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와 올바른 정신을 준다.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됐으면 한다."

법정스님이 길상사 개사식날 하신 말씀이라고 하지요.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말씀하시던 법정스님은 2010년 3월 11일 세상과 작별하시고

이제 이곳 길상사 한켠에 모셔져 있습니다.

 

 

 

 

진영각 담 위에 내려앉은 가을..

 

 

 

 

진영각 한켠에는 법정스님이 손수 만드셨다는 나무의자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법정스님이 불일암에서 참나무 장작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손수 만드셨다는 나무의자,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의자이지요.

 

 

 

 

진영각을 둘러보고 나와 길상사의 다른 곳들을 둘러봅니다.

 

 

 

 

그리고 이르른 침묵의 집..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명상의 공간이라지요.

 

 

 

 

이곳에서 이생진 선생님과 바람패밀리들 모여 앉아

이생진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내가 백석이 되어> 를 듣습니다.

 

 

 

 

이생진 선생님의 시낭송을 듣고 계신 차꽃언니, 양숙시인, 슈룹님

 

 

 

 

슈룹님과 툰지님 그리고 한줄바람님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줄만도 못해"라고 말한 자야,

그녀는 죽는 날까지 길상사에 머물다 유언대로 화장되어 길상사 경내에 뿌려졌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놓칠까 열심히 녹화 중인 바람오라버니이십니다.

 

 

 

 

방 문풍지 바깥에는 가을이 서성이고..

 

 

 

 

그 서성이는 가을을 따라 다시 밖으로 나와봅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주신 기차오빠는 환한 웃음으로 여행자의 모델이 되어주시네요.

 

 

 

 

길상사의 가을을 즐기고 계신 바람패밀리들의 모습을 담아봅니다

광주에서 먼길을 올라오신 차꽃언니

그리고 그 옆의 양숙시인

이날 바람패밀리들에게 맛난 점심을 사주시고 길상사까지 길 안내를 해주신 양숙시인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가을 여자.. 차꽃언니^^

 

 

 

 

이생진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하나라도 놓칠까

귀를 쫑끗 세우고, 걷다가 멈추었다..

 

양복을 입고 서 계신 사진티나님

이날 길상사부터 함께 하시면서 삼청동에서 서울에서 두번째로 맛있는 집에서 맛난 단팥죽도 사주시고

북촌 길안내도 하여주신 고마우신 사진티나님이십니다.

 

 

 

 

모두 함께하여 즐거운 시간들..

벽경님 오랜만에 사진속에서 옆 얼굴을 살짜기 보여주시네요.

혼자 늘 분주하시니.. ㅎㅎ

 

 

 

 

그리고 익산에서 올라온 미노도 함박웃음을..

 

 

 

 

오늘 차꽃언니가 <이생진, 바람이 시가 되어> 카페에

현선생님의 사진과 이 시를 올려놓으셨더군요.

그 시를 살짜기 모셔와 봅니다.

 

장발의 김시습-서울 북한산.15

 

마흔 일곱의 나이에 긴 머리

시시한 웃음은 띠지 않는 그의 얼굴

"평생 혼자 살려 했는데 짝이 필요하군"

"짝이라니"

"나 장가 가기로 했지"

세상만사 다 헛것이라면서도

여자 품이 산보다 따뜻한 것

그래서 그리로 가는 것인가

오늘은 솔바람 소리가 싱그럽다

시습이 흰 눈에 푹푹 빠지며

송추 쪽으로 내려가고

나는 진달래 능선을 타고

우이동으로 내려온다

 

이생진 선생님께서 현선생님을 언젠가 이렇게 부르시며

이 시를 들려주셨다지요. ㅎ

 

 

 

 

길상사 극락전 끝에 매달린 풍경과의 눈맞춤을 끝으로

길상사에서 나옵니다.

 

아끼고 미뤄두었다 가을날 찾아온 길상사..

이생진 선생님과 바람패밀리들과 함께하니 더 좋은 곳이로군요.

 

 

 

 

길상사 입구에 걸려있던 길상사 셔틀버스 이용시간,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올려봅니다.

 

 

길상사 찾아가는 길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 323번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길상사 셔틀버스 이용 또는 버스 1111번, 2112번

승용차는 경복궁 앞 동십자각에서 삼청터널을 지나 길상사

 

그밖에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길상사로 문의하시면 될 듯 합니다

http://kilsangsa.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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