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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가을 구름을 열고 찾아간 절집-청도 운문사

 

 

 

경상북도 청도(淸道)군 운문면 신원리 1789에 위치하는 ‘운문사(雲門寺)’

이곳은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어~ 지난 번에 군위 인각사를 소개할 때도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이라고 소개하였는데 하시는 분 계시면,

여행자의 글을 열심히 읽어 주신 분이십니다^^

 

이곳 운문사는 일연스님이 주지로 계시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했다는 천년고찰입니다.

그리고 군위의 인각사에서는 '삼국유사'를 집필하고 편찬하였다고 합니다.

 

이 운문사가 있는 호거산(虎踞山)은 ‘범 호(虎)’자, ‘이를 거(距)’자를 쓰며

‘호거산 운문사(虎踞山 雲門寺)’라 하면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산의 구름을 여는 절’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모처럼 파란 하늘을 보여주던 가을 끝자락...

가을 구름을 열고 찾아간 절집..

청도 운문사 그 두번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011년 11월 12일)

 

사진은 운문사 경내의 만세루의 가을입니다.

모과 나무에 모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고, 나뭇잎은 낙엽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유홍준 교수님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에서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가지를 말씀하셨다고 하였지요.

 

지난 번에는 운문사 입구의 솔밭을 운문사의 아름다움의 세번째라고 이야기 드렸지요.

 

오늘은 운문사의 아름다움 그 네번째입니다.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입니다

 

-운문산, 가지산 연맥으로 이어진 태백산맥의 끝자락,

이곳 사람들이 영남 알프스라고 부르는 높고 깊은 산속에 자리잡았음에도

운문사는 넓은 평지사찰로 되어 있으니 그 안온한 분위기는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문경 봉암사가 열두 판 화판으로 둘러쳐 있다고 하나 그것은 꽃이 다 피어 늘어질 때의 모습이고

운문사는 연꽃이 소담하게 피어오르면서 꽃봉오리 화판이 아직 안으로 감싸인 자태이며

바로 그 화심에 해당되는 자리에 절집이 있는 것이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 중에서

 

사진은 운문사의 암자 북대암에서 바라본 운문사의 모습입니다.

 

 

 

 

범종루를 들어서면 절집의 전각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곳..

 

 

 

 

운문사에는 비로전(보물 제835호), 삼층석탑(678호) 등 보물이 7개 있고,

만세루 옆의 땅으로 길게 가지를 뻗친 500년 넘은 처진 소나무가 천연기념물 18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범종루를 지나 운문사 경내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날 수있는 원응국사비..

 

땅에는 낙엽이 가득..

위를 올려다보니 나무에 목련 새순이 맺혀 있습니다.

요즘 날씨가 따듯하여 봄인가? 하고 나무가 착각을 하였나봅니다.

이 추위에 어찌하였을련지..

 

다시 원응국사비로 집중하자면~

뒤에 보이는 세개의 비각 중 하나가 원응국사비입니다.

 

 

 

 

보물 316호인 원응국사비..

 

비각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주변으로 줄까지 쳐놓아서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운문사에 있는 이 탑비는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응국사(1051∼1144)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응국사는 일찍 출가하여 송나라에 가서 화엄의 뜻을 전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워 귀국하였습니다.

1109년 선사(禪師)가 되었고, 인종 22년(1144) 운문사에서 93세로 입적하였습니다.

 

비는 비받침, 비몸, 머릿돌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받침돌과 머릿돌이 없어진 상태입니다.

다만 세 쪽으로 잘린 비몸만 복원되어 있습니다.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만들어진 연대는 비가 깨어져 알 수 없으나, 국사가 입적한 다음해에 인종이 국사로 명하고,

윤언이에게 글을 짓게 하였다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략 1145년 이후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만세루 옆의 땅으로 길게 가지를 뻗친 500년 넘은 처진 소나무가 천연기념물 18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 사진으로는 처진 소나무의 본 모습을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소나무 안쪽을 보아야 이 나무가 왜 처진 소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온몸으로 기도를 올리는 오체투지를 하는 양,

모든 가지가 땅으로 치내려 마치 엎드려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입니다.

 

멋지지요?

 

 

 

 

이 나무는 매해 음력 삼월삼짇날 막걸리 12말을 받아 먹고 기운을 보충한다고 합니다.

소나무 앞에 자리한 바위, 거북이처럼 보이네요.

여행자의 눈에만 그런가요?

 

 

 

 

그리고 처진 소나무 옆에 자리한 만세루..

 

"청도 운문사 만세루(淸道 雲門寺 萬歲樓)"는 청도 운문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정면7칸, 측면 4칸의 "一자형" 겹처마 팔작지붕으로서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입니다.

 


 

 

만세루는 1,105년(고려 숙종 10년) 원응국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하며,

건립 시기는 최근 대웅전 해체수리 시 발견된 기와 명문과 상량문을 분석한 결과

적어도 1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만세루를 바라보고 있자니 여수의 진남관이나 통영의 세병관을 떠올리게 됩니다.

 

 

 

 

만세루 너른 마루에는 여승들의 겨울 양식이

햇살 아래 말라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곳 만세루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곳으로

절집에서 이런 규모의 누각을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운문사가 넓은 평지사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만세루에 그려진 불화...

 

최근에 그려진 듯, 부처님을 둘러싼 아이들의 복장이 요즘 아이들이로군요.

아이들에 둘러싸인 부처의 모습도, 아이들의 모습도 평온해 보입니다.

 

 

 

 

운문사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빠졌지요?

 

운문사의 역사는 6세기 신라의 대작갑사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가 뒤늦게 불교문화를 꽃피우며 삼국통일을 위해 국력을 신장시킬 무렵 세워진 오갑사,

(오갑사는 다섯 개의 사찰로 동쪽에 가슬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습니다)

 

다섯 개의 사찰 중 대작갑사가 바로 지금의 운문사입니다.

7세기 초 중국에서 구법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원광법사는 이곳 사찰을 중창하고 대중을 교화한 것으로 전합니다.

그 뒤 930년에 보양국사가 크게 중창하고

그 후 한때는 폐사지가 되기도 하였었지만

현재는 국내 비구니 사찰로는 유일하게 강원, 선원, 율원을 갖춘 체계적인 승가교육의 장으로 발전했습니다.

 

 

 

 

만세루가 건너다 보이는 곳에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응진전..

산자락과 어우러진 응진전의 모습이 가을을 느끼게 합니다.

 

저 산자락에 북대암이 위치하고 있어

북대암에 오르면 운문사가 한눈에 보입니다.

 

 

 

 

운문사를 이야기 할 때, 대웅보전이 두 개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곳 만세루 앞의 대웅보전은 1994년에 새로 신축한 전각이고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조선 숙종 연간에 중창된 건물입니다.

 

운문사에서는 대웅보전을 신축하면서 옛 대웅보전의 현판을 비로전으로 바꿔 달았습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마침내 비로전으로 바로 잡은 것입니다.

현판을 바꾼 것은 또한 한 절에 본전이 두 개 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구요.

그런데 문화재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고 하지요.

옛 대웅보전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것이 문제였다고 합니다.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지만 비로자나불의 제작 연대가

대웅보전보다 앞선다는 증거가 없으니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로전 현판이 떼어지고, 다시 대웅보전 현판이 걸렸습니다.

한 절에 대웅보전이 두 개가 되어버린 연유입니다.

 

 

 

 

점심 예불을 마친 여승들이 대웅보전을 나서고 있습니다.

 

 

 

 

까치밥으로 남은 붉은 감 몇알과 대웅보전의 처마..

그리고 아직 가을 풍경을 품고 있는 산이 어우러지니

가을 풍경이 완성됩니다.

 

 

 

 

대웅보전 앞에 올라 바라본 운문사 전경..

 

만세루 옆에 위치한 전각이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입니다.

 

 

 

 

새로 지은 대웅보전 주위를 조금 더 맴돌아 봅니다.

정갈한 전각의 모습도 담아보구요.

 

 

 

 

대웅보전 뒤쪽의 후원의 모습도 담아봅니다.

국화가 만개한 후원은 가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금 더 옆으로 가보면

계곡을 따라 운문사가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곡 위에 놓인 다리..

극락교..

 

이 아래가 이목소라 불리우는 곳으로

삼국유사에 실린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지요.

 

 

 

 

극락교 아래 이목소는 이제 소의 자취를 잃어가지만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의하면

이곳은 새벽 3시면 한겨울에도 어김없이 학인스님들이 낯을 씻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제 비로전으로 가볼까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지만, 대웅보전이란 현판을 달고 있는 전각말입니다.

 

비로전의 뒷자태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보물 835호인 대웅보전입니다.

 

조선 중기 사찰건물로 운문사의 불전입니다.

이 전각은 신라 진흥왕 21년(560)에 세워진 이후로 여러 차례 보수되었는데,

대웅보전을 포함한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숙종 44년(1718)에 고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있는 다포 양식으로 지어졌고,

밑동은 굵고 위로 올라가면서 가늘어지는 민흘림 기둥을 사용하였습니다.

 

단청은 오색(五色)으로 갖은 무늬를 쓴 금단청(錦丹靑)이고,

천장 가운데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습니다.


 

 

 

먼저 새로 지은 대웅보전을 설명드리며

운문사에 대웅보전이 두 개인 까닭을 이야기 하였지요.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권에 이부분에 관한 글을 옮겨보자면~


샌님여, 운문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불상은 비로자나불 맞지예?"

"그렇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으니 비로자나불이지."

"그란데 와 대웅보전이라 캅니까? 대웅보전은 석가모니가 모셔진다고 안했습니까?"

"그러니까 우습지. 조선후기 들어서면 중들이 계율보다 참선을 중시한다고 불가의 율법을 등한시 했어요.

그 바람에 저렇게 잘못된 것이 많아요. 굳이 해석하자면 본래는 석가모니 집인데

비로자나불이 전세 살고 있는 것이라고나 해야 될까보다." -

 

 

 

 

이제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고. 그 뒤에 삼신불회도가 있습니다.

보물 1613호로 지정된 것으로

1755년 수두 화사 임한의 주도로 총 19명의 화승이 모여 제작한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석가모니불, 노사나불과 함께

여러 권속들을 그린 1폭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보살형의 노사나불은 특유의 설법인을 취하지 않고 연꽃을 들고 있는데

후불도에서 표현된 예로는 유일하다고 합니다.

 

삼신불을 한 화면에 배치한 드문 형식에

안정된 화면 구성과 균형잡힌 인물표현, 차분한 색감 등에서

18세기 불화의 높은 격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개를 더 들어 천장을 올려다봅니다.

 

대웅보전 천장에는 줄 하나에 의지한 인형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악착동자'라 불리는 인형입니다.

악착동자가 악착같이 매달린 용모양의 긴 나무는 '반야용선(般若龍船)'입니다.

불교에서 반야용선은 중생을 태워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배이지요.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피안의 세계로 이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모든 이들이 그리할 수 없기에 생전에 덕을 쌓고 부처에 의지하면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갈 수 있다고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 피안의 세계로 가는 반야용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악착같이 매달린 동자의 모습입니다.

반야용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줄이라도 매달고 가고 싶어 하는 애처로운 중생의 모습.. 

바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인 듯 합니다.


 

 

 

 

자~ 이제 운문사의 네번째 보물입니다.

 

운문사 3층 석탑..

대웅보전 앞에 서 있는 석탑으로 보물 678호입니다.

 

이 쌍탑의 상층기단(上層基壇)에는 앉아 있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이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으며

한 돌로 된 옥신(屋身)에는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습니다.

 

옥개석(屋蓋石)에는 5단의 받침 층단을 새겼으며

추녀 밑이 수평을 이루어 경쾌하고 날씬한 조형미(造形美)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탑의 전체 높이는 5.4m이고 기단의 탱주가 2개이던 것이

위층에서 1개로 줄어들고 표면이 장식된 점으로 보아 9세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앞에 보이는 것이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며

오백전 앞에 탑을 하나 더 세워 쌍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대웅전이 위치한 자리의 지세가 전복하기 쉬운 작은배와 같다하여

지세를 누르기 위해 고려때 세웠다 합니다.


 

 

 

어느 곳에 서나, 너른 절집의 모습이 시원스럽게 다가옵니다.

 

 

 

 

부족한 것은

소리를 내지만

그러나 가득 차게 되면 조용해진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남은

물병과 같고

지혜로운 이는 눈물이

가득 담긴 연못과 같다. -수타니파타

이곳은 수행공간..

저기 멀리 보이는 은행나무가 운문사 은행나무랍니다.

지난 주에 아주 고왔다고 말씀하시네요.

 

 

 

 

여느 사찰과 달리 자급자족을 통해 삶과 수행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운문사.

 

손수 비질을 하고, 채소밭에 채소를 가꾸고,

예불도 드리고..

운문사 곳곳에서 스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 앞에 보이는 작은 전각으로

운문사의 또 다른 보물을 만나러 갑니다.

 

 

 

 

작갑사의 전설을 간직한 작은 불당인 작갑전..

 

 

 

 

이곳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과 사천왕석주(四天王石柱-보물 318호)가 모셔져 있습니다.

 

사천왕 석주는 석조여래좌상 좌우에 각각 2개씩 모두 4개가 돌기둥처럼 배치돼 있습니다.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 뒷쪽으로 둥근 광채를 띤 채 악귀를 발로 밟고 있습니다.



 

 

 

석조여래좌상은 높이 63cm로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있던 것을

최근 벗겨내어 화강암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 불상은 살상투가 뚜렷하며(살상투가 무엇인지 공부를 좀 해야 할 듯 합니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으로서 다소 어색한 감이 있고

결가부좌한 양 발 사이에는 부채꼴의 주름이 잡혀 있습니다.

 

부피감이 없이 불상 자체가 나약하고 위축된 점,

전반적으로 투박해진 표현기법 등에서

9세기 불상을 계승한 10세기 초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천왕은 부처를 모시는 단의 사방을 지키기 위해 두는 방위신(方位神)의 성격을 띠는데

동쪽이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이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이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이 다문천왕(多聞天王)입니다.

이 가운데 지국천왕은 칼을 잡고 있고 천의 자락이 휘날리는 갑옷을 입고 악귀를 밟고 서 있습니다.
또 광목천왕은 손에 불꽃을 들고 있고 증장천왕은 삼고저(三枯杵), 다문천왕은 탑(塔)을 들고 서 있습니다.

이 4개의 사천왕상 돌기둥은 신체가 큰 반면 돋을새김이 뚜렷하지 않아 양감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는 통일신라 후기 또는 후삼국시대인 900년경을 전후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운문사에는 보물이 이밖에도 하나 더 있는데

동호라고 하여 동으로 만들어진 항아리입니다.

보물 208호로 이곳 스님께 여쭤보니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작압전 옆의 관음전~

 

 

 

 

그리고 명부전~

 

 

 

 

명부전은 곳곳에 단청과 벽화가 아름다운 전각입니다.

 

 

 

 

그리고 칠성각을 끝으로 여행자가 볼 수 있는 곳들은

한바퀴 다 둘러보았습니다.

 

 

 

 

북대암을 오르며 주차장에서 찍은 운문사 사진 한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참 아직까지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에 관한 이야기를 다 하지 않았지요?

 

첫째는 운문사에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 항시 사미니계를 받은 200여명의 비구니 학인스님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하였지요.

둘째는 장엄한 아침예불이 있어 장엄하고 숭고한 음악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운문사 입구의 솔밭..

넷째는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

다석째는 일연스님이 여기서 삼국유사를 썼다는 것..

 

여러분도 동의하시나요?

 

다음에 운문사를 찾을 때는

운문사의 아름다움 두번째인 아침 예불을 듣기 위해 하룻밤 자고 가야할 듯 합니다.

 

운문사의 가을을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하셨다면

가을의 끝자락, 낙엽 밟는 소리 가득한 청도 운문사 http://blog.daum.net/sunny38/11775820 을 클릭해보세요

 

 

청도 운문사 찾아가는 길

 

위치: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

 

 

청도에는 이외에도 와인터널이 유명한 곳이지요?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클릭해 보세요~

와인향기 가득한 청도 와인터널 http://blog.daum.net/sunny38/11774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