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집트여행(Egypt)

신을 꿈꾸었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만든 아부심벨 대신전-이집트27

 

 

 

6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집트를 다스렸던 사람..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왕이라 불리웠던 사람..

신을 꿈꾸었던 파라오..

 

모두 람세스 2세를 칭하는 말입니다.

 

신을 꿈꾸었던 파라오..

이제는 그가 세웠던 신전만 남아 시간에 도전하는 기념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아부심벨의 신전입니다. (2011년 1월 21일)

 

 

 

 

" 아름다움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수수께끼 중 하나인 신비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이집트 예술품들은 우리의 성당이나 아즈텍 신전에 있는 조각상들,

인도와 중국의 동굴의 조각들, 세잔과 반 고흐,

가장 위대한 죽은 자들과 가장 위대한 산 자들의 작품과 이어집니다"

 

1960년 누비아의 기념물 보호를 위한 제1차 국제 캠페인 개막식 때 앙드레 말로가 이야기 한 말이라고 하지요.

 

카이로 입구의 피라미드에서 나일 계곡의 대신전- 룩소르, 에스나, 에드푸, 코옴보, 필라에, 아부심벨-에 이르기까지

이집트는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인 듯 합니다.

 

아부심벨 대신전의 람세스 좌상들의 모습입니다.

 

 

 

 

3300년 전 세워졌던 신전은 이제는 나세르 호수 위쪽으로 옮겨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부심벨의 신전은 대신전과 소신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먼저 람세스 2세를 위해 만들어진 대신전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광지에 입장하기 위해 먼저 해야하는 일

아부심벨의 두개의 신전을 볼 수 있는 티켓입니다.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280km 떨어진 나세르 호수의 서안..

 

 

 

 

나일강을 굽어보는 절벽 안에 두 개의 신전이 물과 사막 사이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스완 하이댐의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인 나세르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두 개의 신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앞쪽에 보이는 것이 대신전, 뒤쪽에 보이는 곳이 소신전입니다.

 

기원전 1260년 경에 람세스 2세는 아프리카의 입구에 암석을 파서 자신을 찬양하기 위한 대신전과

그의 아내 중 한사람인 네페르타리에게 바칠 조금 작은 신전을 만들기로 합니다.

사실 이것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왕국의 국경에 이집트의 우위를 상기시키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 자신과 아내의 영원한 삶을 원했다고 하지요.

 

대신전의 옆모습인데, 작은 부조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여러 형상들과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대개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의 머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문서나 벽화의 시작을 말해줍니다.

 

 

 

 

신전 내벽면은 카데시 전투(기원전 1274년경)가 새겨져 있으니,

바깥쪽의 이 부조들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을 듯 합니다.

 

 

 

 

3300년의 세월을 견뎌온 외부 벽화는 이제 흐릿해져 가기고 하고..

 

 

 

 

신전쪽으로 더 돌아서자

또 다른 부조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아몬신, 라 하라크티신, 프타신을 위해 바친 곳입니다.

그래서 곳곳에 신을 경배하는 람세스 2세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부조들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그리고 돌아서자 거대한 암굴 신전인 아부심벨 대신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새벽녘 수십대의 차량이 한꺼번에 아스완에서 출발하여 이곳에 도착한지라

넘치는 사람들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풍경에서 사람이 빠진 사진들을 찍을 수 없다는.. ㅠㅠ

 

 

 

 

대신전의 입구에는 22m 높이의 왕좌에 앉아 있는 4개의 파라오의 좌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쪽 귀에서 다른쪽까지는 4m가 넘으며, 입술 선만 하여도 1m가 넘는다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오른쪽부터 람세스 2세의 좌상을 살펴보자면..

 

 

 

 

좌상 아래쪽 다리 부근에는 람세스 2세의 아내와 딸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67년간 왕좌를 쥐고 있으면서 무려 110여명이나 되는 자녀를 낳았다고 전해집니다.

 

 

 

 

그중에서 후대에 알려진 사람으로는

그가 가장 사랑하였던 왕비 네페르타리가 있으며(그녀를 위해 세운 것이 아부심벨 소신전이지요)

그가 죽은 후 왕위에 올랐던 메르네프타이란 아들과

최초의 이집트 학자라고 불리는 카엠와세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두번째 좌상은 기원전 27년에 생긴 지진으로 파손 되어 있습니다.

 

 

 

 

그 좌상 발치에도 역시 그의 아내와 자식들의 모습이 부조 되어 있구요.

 

 

 

 

좌상의 다리 부분에 새겨진 낙서들이 보입니다.

 

3300여년 전 세워진 신전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모래 아래 묻히게 되었지요.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신전은 1813년 스위스의 탐험가 부르크할트에 의해 발견되었답니다.

 

그 후 많은 유럽의 관광객들이 이 신전을 보러 왔다고 합니다.

그때의 흔적이라고 봐야겠지요?

 

 

 

 

 

 

 

 

 

 

이 4개의 람세스 좌상은 람세스2세의 젊은 시절의 모습부터 나이든 시절까지의 모습을 조각해 놓은 것이라는 설도 있는데

여행자의 눈에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좌상의 한 가운데는 출입문이 있고

그 위의 벽감에는 태양신 라-하라크티신의 모습이 부조 되어 있고

더 위쪽에는 22마리의 원숭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 부조 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부조된 라-하라크티신의 모습

 

 

 

 

그리고 양옆에는 그 여신에게 경배드리는 파라오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위쪽의 춤추는 원숭이들

 

 

 

 

태양신을 경배하는 원숭이들은 태양이 솟아 오르는 것을 보며 환호하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번 째 람세스 2세의 좌상

 

 

 

 

역시 그의 아내와 자식들의 모습이 발치에 조각되어 있습니다.

 

 

 

 

람세스 2세의 선조를 살펴보면..

 

신왕국 제 18왕조의 마지막 왕 호렘헵은 귀족으로 왕좌를 차지하여 34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인물입니다.

(이집트의 왕조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지요)

호렘헵이 아들없이 죽자 왕권은 그의 재상 람세스에게 돌아갑니다.

그가 바로 제 19왕조를 연 람세스 1세입니다.

 

제 19왕조는 람세스 1세의 아들인 세티 1세에 이어 다시 그의 아들인 람세스 2세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람세스 2세는 BC 1279-1212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린 왕으로

나이 30세에 이집트의 왕으로 즉위하여 상, 하이집트를 67년 동안이나 통치하고

96세로 사망하였으며, 재위 기간 중 수많은 대외전쟁을 치른 왕으로 유명합니다.

 

 

 

 

람세스 2세의 4번째 좌상

 

 

 

 

역시 마찬가지로 발치에는 왕비와 자식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부심벨의 신전이 세계의 주목을 더욱 받기 시작한 것은

아스완하이댐 건설로 상류쪽으로 물이 불어나 수몰 위기에 쳐했을 때였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신전들을 구하기 위해 1960년 범 세계적인 운동을 전개하였고

1964년 마침내 이 신전들을 옮기는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유네스코는 아부심벨 이외에도 수몰 위기에 처한 24 개의 유적을 구조하였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 받았던 것은 이곳 아부심벨 신전의 구조작업이었습니다.

 

 

 

당시의 작업 모습입니다.

 

이 구조 작업을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

이집트, 이탈리아, 스웨덴, 독일, 프랑스에서 모인 300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 구조팀이 구성되었습니다.

구조반들은 이 신전의 조각과 장식 부분을 2000개의 조각으로 모두 잘라냈습니다.

 

조각들을 들어내고 운송하는 작업은 2년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해체된 돌은 한 개의 무게가 10-40여 톤에 달했습니다.

 

 

 

 

이 계획은 완성 될 때까지 5년이 걸렸고 4천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었습니다.

새 신전은 물길이 닿지 않는 약 200미터 위 새로운 터로 옮겨졌습니다.

 

 

 

 

그리하여 강바닥에서 60m를 높여 이곳에 다시 신전을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마침내 1968년 일반인에게 신전을 다시 개방하였다고 합니다.

 

 

 

 

자국의 문화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댐을 짓겠다는 압둘 나세르 대통령..

배짱이 좋았던 그는 세계를 상대로 을러댔다고 하지요.

 

"우리는 댐이 필요하다. 돈을 주지 않으면 신전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다" 고 말입니다.

 

결국 유네스코와 국제사회가 돈을 모아 주었고,

유적들은 댐 위로 들어올려져 다시 세워진 것이지요.

 

 

 

 

그래서 아부심벨 신전 내부에는 토막토막 잘라 내 다시 쌓은 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하지요.

좌상의 발치에서 한단을 더 내려서면,

여러 조각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쪽에 위치한 조각상들

 

 

 

 

아마 호루스신을 나타내고자 함인 듯 합니다.

 

호루스 신은 매의 형상을 한 신으로

호루스의 눈은 태양과 달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오시리스 숭배가 이집트 전역으로 퍼지자 호루스는 오시리스의 아들로 여겨지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밖의 다른 조각상들로 서 있습니다.

 

 

 

 

 

 

 

 

 

 

조각상 뒤쪽의 벽면에는 빼곡한 상형문자와 그림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아마도 여백으로 남겨 놓은 것을 싫어한 듯 합니다.

어딜가나 빼곡한 그림과 글자들을 보여주니 말입니다.

 

 

 

 

어떤 벽면들은 세월과 바람에 많이 훼손되어 있기도 하구요.

 

 

 

 

신전 앞에 날아든 새 한마리..

가만히 포즈를 취해줍니다.

 

 

 

 

 

 

 

 

 

 

누군가를 지칭하는 상형문자

 

맨 아래쪽의 구불구불한 것은 물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맨 위쪽의 세모꼴 비슷한 것은 가파른 언덕을 나타낸다고 하구요.

 

이런 여러가지 상형문자가 모여 하나의 뜻을 이루게 되구요.

 

 

 

 

이집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지판..

No Photo!

 

 

 

 

거대한 신전 앞에서 사진찍기에 바쁜 여행자입니다.

정면에서 찍고, 옆면에서도 찍고..

 

 

 

 

벽면의 상형문자들도 담고..

 

 

 

 

신전 앞쪽으로도 이렇게 부조가 새겨진 작은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전의 양 입구에는 전쟁 포로의 부조가 남아 있습니다.

 

 

 

 

시리아에서 데리고 온 포로나 아프리카 계통의 포로 등 얼굴모습이 자세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람세스 2세의 좌상 옆면에도 이렇게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반대편 좌상 옆면에도 역시 부조가 새겨져 있구요.

 

 

 

 

 

그리고 가운데 자리한 출입문..

 

 

 

 

그 입구 안쪽에는 오시리스의 얼굴을 한 람세스2세의 입상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회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쪽 회랑의 람세스 2세 입상의 얼굴들

 

 

 

 

그리고 그 뒤로 세 개의 방이 있고

좌우로 뚫린 여러 개의 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방들에는 3000년의 세월을 지나 여행자의 앞에 선 고대 이집트 벽화가 벽면 가득 펼쳐져 있습니다.

 

 

 

 

그 방들의 끝, 가장 안쪽에는 지성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성소에는 라 하라크티신, 람세스 2세, 아몬신, 프타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의 신인 라 하라크티신, 테베의 주신이며 땅의 생식 본능을 지배하는 아몬신, 어둠을 솟아나게 하는 프타 신..

그 사이에 신격화한 람세스 2세가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은 매년 춘분과 추분에 입구로부터 약61m 떨어진 이곳 지성소까지 햇빛이 들어 신비감을 자아냈다고 하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굴 안에 들어온 햇빛이 약 20분 동안 라 하라크티, 람세스 2세, 아몬신의 얼굴을 발게 비쳐주었다고 합니다.

네개의 조각상 가운데 맨 마지막에 위치한 프타신의 어깨만 비추다 돌아간다고 합니다.

어둠의 신인 탓인가 봅니다.

 

이 신전을 옮길 때, 공사 기간 5년 중 1년 동안은 이 네개의 신상에 빛이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

적당한 위치를 탐색하는데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신전 내부는 여러가지 부조와 상형문자들로 채워져 있는데

 

 

 

 

 왕비가 파라오에게 연꽃을 바치는 그림과 상형문자들..

 

 

 

 

람세스 2세가 카데슈(현재의 시리아)에서 히타이트와 싸우는 장대한 전투 장면을 묘사한 부조들로 가득합니다.

 

 

 

 

람세스 2세가 적을 향하여 활을 당기는 역동적인 모습도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기원전 1274년 카데쉬를 향해 약 5000여면의 군사를 거느리고 원정을 떠난 람세스 2세는

아문신의 도움을 받아 홀로 싸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일 밝혀진 기록들로 볼 때, 람세스 2세는 승리는 하지 못했던 전투인 듯 한데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 이곳 아부심벨 신전 등에 자신의 승리를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부조들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대의 몇몇 학자들은 람세스 2세를 자기현시욕이 강하고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기록을 이용해

현실을 지배하려고 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린시절의 람세스 2세의 모습

 

내부의 벽화와 조각상들의 모습은 사진촬영 금지인 관계로

이곳에서 사온 엽서 사진에서 모셔온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람세스 2세를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대탈출한 파라오로 보기도 하고

그의 아들 메르네프타를 그 시기의 파라오라고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마 많은 유대인들이 이 시기에 왕릉이나 신전을 건설하는데 동원된 듯 하다고 합니다.

 

 

 

 

신전 주변에서 간간이 포즈를 취해주는 새들에게 눈맞춤도 하는 시간..

 

 

 

 

람세스 2세의 오랜 통치 후 이집트는 많은 외부 침략으로 혼란에 빠졌었습니다.

람세스 3세의 지배하에서 잠깐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오랜 시간 이집트는 많은 혼란의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람세스 2세..

그는 이집트인들에게 영광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의 시간들이

나세르 호수 위에 자리한 아부심벨의 대신전에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진들~

보시고 읽어 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