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하면 떠오르는 이름들..
최순우 선생이 지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와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글을 올리며, 그 책들을 다시보기 위해 찾아봐도 보이질 않습니다.
창고의 책 박스 안에서 잠자고 있는 모양입니다. 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님은 이길을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라고 극찬을 하였지요.
이 길에서 부석사는 시작됩니다. (2010년 11월 3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그 앞의 석등..
부석사는 세월에 따라 조금씩 모습이 변해갑니다.
부석사를 향해 달리던 좁디좁은 2차로의 은행나무 터널길은 이제 사라졌으며, 입구에는 못보던 분수대가 생겨났지요.
조금식 변해가는 부석사의 모습 중에서 변치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부석사를 향해 오르는 은행나무 길과 부석사 무량수전...
여기에도 부석사 사진을 부석사 입구 쪽부터 올려보겠습니다.
부석사 은행나무를 햇살이 좋을 때 찍느라, 나중에 찍었지만 말입니다.
부석사 은행나무길을 지나 (부석사 은행나무 길은 바로 앞에 포스팅 해놓았습니다. 맨 위의 사진 한장으로 대신하고 갑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사람들..
뒷짐 지시고, 들어오시며, 얼마만한 거리를 두고 오시는 모습이 노오란 빛 아래 아스라이 잡혔습니다.
노란 은행나무 수북히 깔린 부석사를 오르는 길...
늘 소백산 부석사라고 생각하였는데, 태백산 부석사라고 일주문에 적혀 있습니다.
은행나무 길을 오르면 만나는 당간지주
이 기둥은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로 높이는 428cm입니다.
양 기둑 꼭대기에는 내면상단에서 외면으로 내려오면서 호선을 그리며 외부로 깎여있는데 1단의 굴곡을 두었습니다.
당간지주 사이에는 연꽃잎을 장식한 원형의 간대석이 놓여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우며 간결하고 단아한 수법으로 보아 부석사 창건과 함께 7세기 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간대석을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 당간은 절에서 불교 의식이 있을 때, 불(佛), 보살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이라는 깃발의 깃대를 말하며
이 깃대를 고정시켜 주기 위해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부석사의 천왕문을 지나 오릅니다.
부석사 경내로 들어서면, 단아한 3층 석탑 둘이 마주보고 서서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왼편의 3층석탑
이 탑은 통일신라 후기 3층석탑으로 쌍탑입니다.
높이는 동탑이 360cm, 서탑은 377cm으로 두 탑의 크기와 양식이 거의 같습니다.
이중기단위에 3층의 몸돌을 올린 것으로 무량수전의 동쪽에 있는 석탑과 같은 형식입니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정제된 모습으로 신라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단과 탑신부의 몸돌에는 기둥을 본 떠 새겼는데,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조각을 두었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두었습니다.
몸돌을 덮고 있는 각 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습니다.
윗부분은 없어졌는데, 지금 놓여져 있는 것은 뒤에 보충한 것입니다.
3층석탑과 요사채의 모습
부석사 3층석탑과 종각, 삼성각, 그리고 멀리 무량수전까지 보입니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의상 대사가 676년 창건한 곳입니다.
부석사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산지 가람을 하고 있으나 전체의 배치축은 서남향을 하고 있으며
무량수전과 안양루는 중간축에서 17도 정도 남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계절에 부석사에서 해돋이를 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범종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저 나무 기둥들
부석사에는 2개의 누각이 있지요.
이 범종각과 안양루입니다.
안양루는 문의 성격을 겸하고 있는 누각이라면, 범종루는 대석축단과 안양루 석축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지반에 견고하게 버티고 선 안정감 있는 건물입니다.
범종각을 올라서며 바라본 안양루와 무량수전..
화엄의 세계, 극락 세계로 가는 길입니다.
이 범종각은 그 건물의 방향이 여느 건물과는 달리 측면으로 앉아 있습니다.
건물의 지붕은 한쪽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가 쉽다고 합니다.
팔작지붕을 한쪽이 정면을 향하고 있고 맞배지붕이 뒤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부석사가 소백산맥을 향하여 날아갈 듯이 앉아 있는데 범종각이 정면을 향하고 있으면 건물이 전반적으로 무거워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범종각을 옆으로 앉혀놓고 뒷쪽을 맞배로 처리하여 건물이 전박적으로 비상하는 느낌을 주고 답답해 보이지 않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범종각 내부의 목어
부석사를 좋아하는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몸에 새기고 서 있는 누각과 가람들입니다.
서늘한 기운 감도는 새벽녘 안양루
비 맞은 뒤 청산은 씻은 듯이 선명하네
멀리 안개 속에 동네 인가 잡힐 듯하고
동남 하늘 구름은 바다처럼 연이었네
먼 하늘 아득히 나는 새 바라보고
스산한 가을 정취 매미소리 듣네
만고의 명승지 나그네 발걸음
올해 중속 밝은 달도 활처럼 기우네
성언근(成彦根, 1740~1818)선생이 쓴 시‘안양루(安養樓)’ 를 떠올리며 극락의 세계로 오릅니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씌여 있습니다.
안양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의 석등 사이로 무량수전 현판을 바라보며
보고 싶었던 무량수전을 제 눈에 실컷 담아 봅니다.
부석사의 석등은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빼어난 조각 솜씨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석등입니다.
달리 말이 필요없는 무량수전..
부석사에는 많은 국보와 보물들이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해보자면..
무량수전(국보 18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호),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조사당 벽화(국보 46호), 당간지주(보물 255호), 고려 각판(보물 735호)
조사당 (국보 19호),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삼층석탑(보물 249호)
에구~ 숨차^^
그중에서도 부석사의 지존~
무량수전...
목조구조 기술의 정수라고 불리우는 배흘림 기둥으로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평가되고 있지요.
우리나라 목조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건축입니다.
무량수전.. 석등... 삼층석탑...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입니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
꽃창살 하나 없는 가람의 문과 소박한 기둥이 어우러져 천년 고찰을 실감케 합니다.
공민왕이 직접 썼다는 무량수전 현판
무량수전과 안양루 그리고 그 사이의 석등..
아름다운 가람입니다.
무량수전의 동쪽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3층석탑의 모습이 보입니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입니다.
탑은 원래 법당 아래 건립되는 것이 통례이나 이 3층석탑은 무량수전의 동쪽 언덕에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끕니다.
무량수전 아미타불이 동쪽을 향해 있는 것이 극락왕생자를 맞이하는 형상이라고 볼 때,
이 탑은 곧 동쪽 사바세계를 상징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다른 석탑과 달리 비틀려 있는데, 그 방향이 숲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 조사당으로 발길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건실하고 장중한 느낌의 탑입니다.
탑과는 반대쪽인 무량수전의 왼편에 위치한 부석이라 적힌 바위
아래 위가 붙지 않고 떠 있다 하여 뜬돌, 곧 <부석>이란 이름이 붙여 있습니다.
부석사의 창건에 얽힌 당나라 처녀 선묘와의 애틋한 사연이 깃든 바위입니다.
3층 석탑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조사당과 선비화 그리고 취현암
조사당은 무량수전에서 동북쪽으로 100m
조사당에는 의상대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습니다.
1918년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377년(고려 우왕3년)에 지어진 순수한 고려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조사당 벽면에는 6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조사당 벽화라 불리웁니다.
현재는 벽면 전체를 떼어 유리상자에 담아 현재는 보장각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사당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선비화의 모습입니다.
철망 아래 가려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란 전설이 있습니다.
조사당을 지나 위로 조금 더 오르면
자인당과 응진전이 있습니다.
자인당에는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온 석불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석조 삼존여럐 좌상으로 가운데는 석가여래이고 좌우는 비로자나불(보물 220호)이 모셔져 있습니다.
단아하면서 인간적인 형태, 평행의 옷주름선, 몸의 자세 등에서 당대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양식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부석사 입구의 분수대에 무지개가 떴습니다.
환한 가을날을 알리는 듯 합니다.
김삿갓 시인이 부석사에 올라 남겼다는 시를 마지막으로 올리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간에 내 한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번이나 이런 경관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있네
부석사 찾아 가는 길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중앙고속도로 풍기 ic - 931번 국도로 부석사, 소수소원 방면 - 부석사
'경상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오란 그리움, 하야안 설레임, 은사시나무를 만나다 (0) | 2010.11.14 |
---|---|
거북바위 위에 얹혀진 정자-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 (0) | 2010.11.12 |
분분한 낙화, 그 황홀한 낙엽- 부석사 은행나무 (0) | 2010.11.11 |
해는 더디 뜨고, 그 기다림의 시간마저 아름다움이 되는 곳- 부석사 일출 (0) | 2010.11.11 |
옛것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영주 선비촌 (0) | 2010.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