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경기권

흥선대원군이 거처하던 곳, 운현궁- 노안당

 

 

 

서울에는 궁이 참 많지요?

거의 모든 궁을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운현궁입니다.

우리나라의 개화 시기에 자주 등장하던 이름,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곳,

고종이 12살때까지 살았던 운현궁을 찾아 갑니다.(2010년 8월 6일)

 

운현궁의 대문..

이제 운현궁으로 들어가 봅니다.  

 

 

 

 

운현궁으로 들어서면 먼저 눈길을 끄는 것..

너른 마당입니다.

마당 한켠에 수직사가 위치해 있고,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기획전시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12월 9일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입니다.

운현궁은 철종 때 옛 관상감 터였던 운현궁에 왕기가 있다는 내용의 민요가 항간에 유행하였으며.

고종이 등극한 후 대원군이 운현궁 터를 다시 확장하였습니다.

운현(雲峴) 이란 당시 서운관이 있는 그 앞의 고개이름이었으며,

서운관은 세조때 관상감으로 개칭되었으나, 별호로 그대로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서운관의 명칭인 운관과 운관 앞의 고개를 가르키는 운현이라는 말이 그대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대문에서 오른편으로 위치한 수직사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햇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입니다.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궁에서 관리와 경비가 파견되면서 거주 인원이 많았다고 합니다.

 

 

 

 

수직사를 지나 담을 따라 들어서면, 운현궁의 사랑채에 해당하는 노안당으로 들어서는 중문이 나옵니다.

 

 

 

 

문을 들어서며 왼펀을 바라보면, 길게 늘어선 담이 노안당의 규모를 짐작케 합니다.

그리고 노락당으로 들어서는 문도 보이네요.

 

 

 

 

운현궁의 사랑채인 노안당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한식 기와집입니다.

 

 

 

 

노안당 전경

 

 

 

 

노안당 내부의 모습

 

노안당의 상량문이 1994년 5월 보수공사 당시 발견되었는데,

당호의 유래와 대원군의 호칭을 전하 다음의 존칭어인 <합하>라고 하였으며, 지위는 모든 문무백관의 으뜸이라고 하였습니다.

 

 

 

 

노안당은 이렇게 대청과 온돌방이 이어져 있습니다.

대청 부분

 

 

 

 

단청을 입은 문관의 모형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문관은 흑색 문사로 된 단령포를 입는데, 안감은 홍색으로 합니다.

이 문관은 당상관이기 때문에 학 두 마리를 수 놓아 가슴과 등에 부착하는 장식인 쌍학홍배를 답니다.

 

 

 

 

그리고 대청에 이어진 온돌방..

두루마기를 입은 대원군 아들이란 제목으로 역시 인물 모형이 전시 되어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큰 아들인 재면의 복식으로 연갈색으로 천연염색을 한 명주로 된 두루마기를 입고,

흑색 갓을 썼는데 갓끈은 밀화로 된 패영입니다.

 

 

 

 

노안당의 중심이 되는 방에는 학창의를 입은 대원군이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아침에 운문단 바탕에 깃, 고름, 거단, 수구에 흑색 선을 두른 학창의를 입었는데,

이 학창의는 두리소매이며 목판깃으로 되어 있고 넓은 동정이 달린 포입니다.

 

 

 

 

노안당은 대원군의 일상 거처였으며 파격적인 인사정책, 중앙관제복구, 서원철폐, 복식개혁 등 국가 주요정책을 논의했던 곳입니다.

 

노안당이란 현판은 노자를 안지(安之)하며 에서 딴 것으로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으로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년을 살게 되어 스스로 흡족하다는 뜻으로

흥선대원군이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것입니다.

말년에는 정권에서 퇴진하고, 청나라에 납치 되는 등 이곳에서 79세의 나이로 눈은 감았다고 합니다.

 

 

 

 

누마루인 영화루

 

 

 

 

영화루의 열린 창으로는 후원의 대나무들이 보입니다.

한옥의 닫혀 있으면서도 열려 있는 공간..

이 창을 통해 바깥의 풍경들은 어느새 집의 일부가 됩니다.

 

 

 

 

노안당의 후경

 

처마끝에 각목을 길게 대어 차양을 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전면과 동서양측면의 남쪽 일부에 모두 차양을 달아 놓았습니다.

 

 

 

 

굴뚝 위의 기와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1864년(고종 1년)에 노락당과 노안당을 짓고, 고종 6년에는 이로당과 영로당을 세웠다고 합니다.

창덕궁을 쉽게 드나들도록 고종 전용 경근문과 흥선대원군을 위한 공근문을 두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다음에 소개할 노락당은 안채, 이로당은 별당으로 쓰였던 곳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세상을 떠난 후 큰 아들인 이재면을 거쳐 손자 이준용에게 상속되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상당부분이 팔리면서 집의 규모가 크게 줄어든 상태입니다.

 

 

운현궁 찾아 가는 길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 114-10

 

관람 시간은  09:00 - 18:00 (동절기) , 19:00(하절기)

 

관람료는 어른은 700원, 청소년은 300원, 군인은 300원 이라고 합니다.

 

주차 시설은 없습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하차 후 4번 출구로 나오시면 운현궁입니다.

또는 5호선 종로3가 역에서 하차 후 5번 출구로 나와 운현궁 쪽으로 걸어 가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