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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Turkey)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의 소재가 되었던 트로이 목마-터키 49

 

 

 

에게해와 마르마라해가 만나는 곳 다르다넬스 해협에 위치한 차낙칼레

시가지 서남쪽에 위치한 트로이 유적은 유명한 트로이 목마로 전세계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트로이 유적의 입구에는 이렇게 트로이 목마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2010년 7월 4일)

 

 

 

 

차낙칼레 남서쪽 30km에 위치한 대규모의 고대 유적

트로이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인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도시국가로 트로이 전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일리아드 혹은 일리아스는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입니다.

이름은 트로이인들의 왕성인 <일리온>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일리아스란 이름은 일리온의 노래란 뜻입니다.

오디세이아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와 후대 서양의 문학예술과 문화의 전범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호메로스라고 알려져 있으며,

주제는 그리스의 전설적인 전쟁인 트로이아 전쟁을 배경으로 51일간의 사건을 노래한 것으로 그리스의 장군인 아킬레우스가 중심이 되어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비극을 다뤗습니다.

 

 

Homer Ilias Griphanius c1572.jpg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위의 글과 사진의 출처는 다음 백과 사전입니다-

 

 

 

 

트로이 유적지 앞에 재현해 놓은 트로이 목마는 안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트로이 목마 앞의 마당에는 트로이 목마와 비슷한 크기로 트로이 목마를 그려놓았습니다.

어떤 뜻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목마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목마는 2층으로 되어 있구요.

 

 

 

 

1층과 2층에는 여러개의 창문이 있어, 이렇게 밖을 볼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마당 앞으로 트로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2층 창문으로 바라본 풍경

2층에서 바라보니 앞의 마당에는 확실히 트로이 목마가 그려져 있네요.

넓은 평원에 위치한 트로이 유적지..

 

 

 

 

2층 내부의 모습

 

 

 

 

2층에서 바라본 아래층의 모습.

위 아래 층이 이런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트로이 목마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크기만 컸다 뿐이지, 마치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 말의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목마의 머리 위로 새가 날아갑니다.

 

 

 

 

이렇게 1층과 2층에 창문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트로이 목마는 실제로 있었을까요?

 

그리스 작가들은 그리스와 트로이인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B.C 12세기 혹은 13세기에 벌어진 전쟁으로 추측하였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의하면 전쟁의 발단은 인간이 아닌 신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펠리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이 열리던 날..

초대받지 못한 여신 에리스(에리스는 분쟁의 여신, 불화의 여신. 그래서 초대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는 분한 마음으로 결혼식을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에리스는 분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고 쓰인 황금사과를 결혼식장에 던집니다.

에리스의 의도대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등 세 여신이 자신이 진정한 사과의 주인이라 주장하게 됩니다.

제우스를 비롯한 다른 신들은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한 채 싸우는 세 여신을 보다 결국 트로이 출신의 목동 파리스에게 판정을 의뢰합니다.

세 여신은 파리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헤라는 유라시아 대륙의 왕, 아테나는 전쟁의 승리,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신붓감을 주겠다고 합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 주었고 다른 두 여신으로부터 미움을 사게 됩니다.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그리스 최고의 미녀인 헬레네를 소개해주지만, 그녀는 이미 그리스의 왕 메넬라오스와 결혼한 상태입니다.

그리스로 건너간 파리스는 그녀를 트로이로 데리고 오는데 성공합니다.

영화 트로이에서는 파리스가 트로이의 왕의 둘째 아들로 나오지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메넬라오스가 그의 형 아가멤논을 총 사령관으로 트로이 공격에 나서는데, 그리스 최고의 용사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도 함께 출정합니다.

(참고로 아킬레우스는 사건의 발단이 된 펠리우스와 테티스 사이에 난 아들입니다)

생각보다 튼튼했던 트로이의 성벽은 쉽게 함락되지 않고, 전쟁은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끌게 됩니다.

무력으로 트로이를 점령할 수 없겠다 생각한 오디세우스는 거대한 목마를 남겨놓고 퇴각합니다.

그리스군이 물러간 것이라고 판단한 트로이인들은 목마를 전리품으로 성 안으로 들이고..

그 후의 일들은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데로..

목마안의 그리스군이 나와 성문을 열어주고.. 트로이는 초토화 되고.. 긴 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그런데 과연 트로이의 목마는 실제로 있었을까요?

현대 사학자들은 상상력이 만들어 낸 허구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당사자인 그리스와 트로이, 주변의 도시국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까지 군대를 보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에게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는 요지에 위치하고, 그리스와 아나톨리아의 중요한 관문이었던 트로이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국제적인 전쟁을 몰고가지 않았나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세계 1차 전쟁 때, 겔리볼루 반도 상륙작전은 터키군과 연합군의 최대 격전지가 되어 사상자만 50만 명이 생긴 곳이니

차낙칼레와 겔리볼루 반도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신빙성 있는 견해로도 받아들여 지고 있습니다.

 

 

 

 

 

트로이의 목마 앞에는 트로이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출처- 다음 영화 트로이 중에서-

 

 

브래드피트가 나왔던 트로이 영화 중에서

트로이 목마를 성 안에 들여놓고 승리를 기뻐하는 트로이인들의 모습을 담은 장면입니다.

이 목마가 트로이 유적 앞에 세워진 트로이 목마보다는 더 사실적인 듯 합니다.

 

 

 

 

 

 

 

 

트로이 유적지를 다 보고 나오니, 트로이 목마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단순, 소박한 트로이 목마

 

 

 

 

트로이 유적지 입장권 인증샷~

 

이제 목마의 오른편에 자리한 작은 박물관부터 시작하여

트로이 유적지를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