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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Turkey)

또 다른 터키의 세계문화유산, 트로이 유적-터키 50

 

 

 

이제 네 번째로 소개하는 터키의 세계문화유산입니다.

트로이 전쟁과 트로이 목마로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트로이 전쟁의 무대가 된 곳..

이곳도 터키의 세계문화유산 중의 한 곳입니다.

 

유적지 중의 트로이의 제단의 모습입니다.(2010년 7월 4일)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서 다시 하기로 합니다.

 

 

 

 

트로이 목마에서 오른편으로 보면, 작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트로이를 발굴한 슐리만과 유적의 시대별 전개 과정을 전시한 곳입니다.

 

 

 

 

박물관 안에 전시된 시대별 트로이 유적 개념도 입니다.

보시다시피 트로이의 역사는 B.C 2500년 경에 시작되었으며, 이곳 트로이 유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 시대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시대의 유물이 뒤 섞여 있습니다.

모두 9개의 다른 시기의 유적들이 섞여 있습니다.

지진과 화재, 전쟁 등의 이유로 소실된 도시 위에 또 다른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6번째 시기의 호메로스의 트로이아 시대의 성벽을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모형만 보아도, 견고하였을 듯 합니다.

이 유적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독일의 사업가였습니다.

 

 

 

파일:Heinrich Schliemann.jpg

 

사진 출처- 다음 위키 백과 사전

트로이를 처음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의 모습

 

 

19세기까지 트로이는 역사적 실재가 아닌 전설 속의 도시로만 알려졌는데, 독일의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으로 인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그는 어릴 때 들은 일리아드를 전설이 아닌 사실로 믿었던 인물..

그는 무역사업으로 돈을 모았으며, 49세 때인 1871년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나섭니다.

그로부터 2년 후 1873년 드디어 히사를륵(지금의 트로이 유적 자리)언덕 아래서 황금 목걸이, 항아리, 잔 등을 발굴해 트로이가 전설이 아닌 실재 도시임을 입증하였습니다.

이후 발굴 작업은 1894년에 중단되었다가, 1932년 칼 블레겐이 이끄는 미국 신시내티 고고학 팀에 의해 재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2차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중단되었다가, 1988년에 다시 재개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100년이 넘는 발굴 작업 결과 트로이 유적은 한 시대의 것이 아니라, 청동기 시대부터 여러 시대의 유물이 중복되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트로이는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여기서 하인리히 슐리만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그가 발굴한 9,000점의 유물을 독일로 다 가지고 가서, 터키에서 보자면, 제국주의적 약탈자로 보고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도굴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독일에서 보자면, 국민 영웅 대접을 받고 있지는 않을까요?

어쨌든 고고학계에서는 그를 선사고고학의 시조라고 칭한다고 합니다.

 

 

 

 

 

작은 박물관을 나와 이제 본격적으로 트로이 유적을 둘러보도록 합니다.

처음 볼 수 있는 Patio 가든

 

 

 

 

이곳에서 출토된 황토관(에페스에서 보면 수로로 쓰였던 수관이었지요)과 토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걸어들어가 보면, 견고한 트로이 성의 외벽을 볼 수 있습니다.

 

 

 

 

수천년의 세월이 이땅에서 흐르고..

엉겅퀴 꽃은 그 사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고...

오래된 돌은 남아 그 시절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성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유적지의 안쪽으로 들어가 봅니다.

 

 

 

 

어찌보면 그냥 돌무더기처럼도 보이는 트로이 유적들 

 

 

 

 

트로이아 VI  (트로이 6기)

Northeast Bastion (동북쪽의 성체)

 

트로이 6기는 B.C 1,800- B.C 1250년의 것으로 미케네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도자기가 발굴되었습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한 요새가 갖추어졌고, 인구도 증가했던 시기로 보입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전의 유적과는 성의 축조 방식과 집터가 사뭇 달라 이민족이 세운 도시로 추정됩니다.

B.C 1200년 경 화재와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발굴 당시의 모습과 상상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곳에 서서 바라본 풍경

원래는 이곳이 바다였다고 합니다.

트로이 앞마당이 당시에는 바다였는데, 오랜 세월동안 지형의 변화로 지금은 이렇게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트로이 유적을 찾던 사람들이 트로이를 바닷가로 생각하였기에 현재 바다에서 몇 km나 떨어진 이곳이 트로이 유적지일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하지요.

그래서 오랫동안 트로이 유적을 사람들이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바다였던 곳에 들어선 평야..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다.

바다가 땅이 되고, 땅이 다시 바다가 되는 세월..

그 세월을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안내문이 없는 곳에는 이렇게..

표지판으로..

트로이 1기, 8기, 9기의 유적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란 뜻입니다.

 

 

 

 

길가의 작은 이정표

아테네 신전을 알리던 신전표식이라는데, 신전은 찾을 길이 없고...

 

 

 

 

안내도는 없고, 트로이 1기라고 표시된 표지판을 따라 들어간 곳입니다.

오래된 집터인 듯...

 

트로이아 I (트로이 1기)

B.C 3,000- B.C 2,500 년 사이의 것으로 청동기 시대의 유적입니다.

세게체서 가장 오래된 좁고 길다란 모양의 메가론(사각형 모양의 집터)이 발견되었는데,

큰 방과 불을 피우던 흔적, 빗살 형태로 쌓아올린 특이한 형태의 성벽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이 도시는 큰 화재를 겪으면서 파괴 되었습니다.

 

 

 

 

이곳 또한 집터인 듯 합니다.

앞에 바다가 면해 있었을 터이니, 성벽터라고 해야 할까요?

 

 

 

 

갑자기 천막이 위에 쳐져 있는 곳이 나옵니다.

돌벽들이 세워져 있네요.

아마 유적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닐련지요...

 

 

 

 

이곳의 성벽을 보시면, 트로이 유적이 여러 시기가 혼재 되어 있음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아래쪽의 벽은 더 오래된 것이며, 위로 갈 수록 현재에 가까운 시대의 벽입니다.

 

안내판에는 트로이아 II  /  III  (트로이 2기와 3기) 라고 적혀 있습니다.

커다란 집터 였나 봅니다. (아래의 안내판으로 보아서..)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들과 집터의 사진이 나와 있습니다.

 

트로이 2기와 3기에 대한 설명을 하도록 하지요.

 

트로이 2기

B.C 2,500년 경의 것으로 일곱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퀴와 도기가 만들어진 시기였으며, 금,은으로 된 장신구도 출토되었습니다.

트로이 1시대보다 좀더 확장된 형태의 집터와 경사로, 성문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성곽을 갖춘 비교적 발달된 형태의 도시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트로이 3기, 4기

 

B.C 2,500- B.C 2,100년 경의 유적

다른 시기에 비해 특별히 주의를 끌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체기 혹은 이민족의 침입기로 추정되며 성곽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무너진 성벽...

남은 성벽...

그 사이로 풀은 자라고.. 나무도 자라고...

 

 

 

 

트로이아 I  Fortification Wall

 

트로이 1기의 요새의 벽입니다.

 

 

 

 

 안내도에는 추정되는 성벽의 모양과 돌 위에 새겨진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위쪽에는 야트막한 전망대가 있어, 올라 서서 사방을 둘러볼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바다와 맞닿아 있었을 자리..

여러 종류의 야생화들이 앞 다투어 피어 있습니다.

 

 

 

 

트로이아 I- IX (트로이 1기부터 4기까지 유적이 혼재 되어 있는 곳)

 

유적에다 1기, 3기 이런 식으로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트로이 유적지 중에서 유물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왔다고 합니다.

보물의 골짜기라고 불러야 할 듯...

 

 

 

 

앞의 안내도

그림을 보면, 아래쪽 깊이까지 여러 시대의 유적이 혼재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길게 난 성벽(?)을 따라 걷고 싶어집니다.

물론 들어 갈 수 없습니다.

나무 사이로 난 길이 어쩐지 눈길을 끕니다.

 

 

 

 

그리고 또 트로이의 성벽

이 길게 뻗은 마차길로 트로이의 목마가 들어오지 않았을까하고 추측들을 한다고 합니다.

 

 

 

 

이 마차길의 크기와 넓이로 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유적의 시기와 트로이 목마의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트로이아 VI 

Palace House Vim

 

이곳도 트로이 6기입니다. 

 궁전이 있던 자리인 듯 합니다

 

 

 

 

 추측하여 그린 안내도

 

 

 

 

 

 

 

 

트로이아 VIII - IX  

Sanctuary

 

트로이 7기부터 9기까지의 유적으로 성전, 성역입니다.

 

트로이 7기

 

B.C 1250- B.C 1025 년 경으로 트로이 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시기입니다.

트로이 6기와 동일한 민족이 건설한 유적이며 지진으로 파괴되었던 도시를 복구했지만, 큰 화재를 겪으며 또 다시 무너졌습니다.

 

 

트로이 8기

 

B.C 900- B.C 85 년에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식민도시로 일리온이라 불리웠습니다.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가 다녀가기도 했던 이곳에는 두 개의 제단을 갖춘 거대한 아테나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의 신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아테네의 신전의 앞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한다 합니다.

제물의 피 빼는 우물과 식수로 쓰는 우물, 이렇게 두 우물이 위치해 있습니다.

 

 

 

 

대리석 부분이 제단이 아닐까 하고 추측들을 한다고 합니다.

시대가 워낙 오래되다보니 추측을 할 뿐... 정확히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

 

 

 

 

누구의 신전터인지는 모르지만, 꽤 넓고 큰 신전이었을거라고 추측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트로이아 IX (트로이 9기)

Odeion and Bouleuterium (오데온)

 

B.C 85- A.D 500 년 로마 시대의 유적, 원형극장, 목욕장, 신전 등이 건설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아테나 신전과 오데온입니다.

지진으로 무너진 채 방치되었었습니다.

 

 

 

 

오데온은 로마시대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오데온은 오늘날의 광장의 역할을 해내던 곳이기 때문이겠지요?

 

 

 

 

 

 

 

 

작지만 제 역할을 다 할 것 같은 오데온의 모습입니다.

 

 

 

 

 

 

 

 

 

트로이아 VI (트로이 6기)  남문

 

남문을 끝으로 트로이 유적은 끝이 납니다.

 

 

 

유적은 워낙 오래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세월이 바다를 육지로 변화시키고..

사람들에게 잊혀진 땅이 되고..

하지만....

이곳에는 살아 숨쉬는 역사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