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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350년 된 집성촌-고령 개실마을

 

 개실마을~

원래는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골이라 하여 개화실이라 하였는데, 그 후  줄여 개실마을이라고 불리우는 곳..

조선 중엽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이 350년간 모여 살고 있는 곳..

2010년 5월 17일, 이곳을 다녀왔습니다.

 

개실마을 입구. 여러나라 말로 인사를 해 놓았습니다.

 개실마을에 가면 꼭 들러보아야 할 점필재종택입니다.

이 건물은 선산 김씨, 문충공파의 종택으로 1800년 경에 건립되었습니다.

호인 점필재의 뜻은 <책을 엿보는 집>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종택은 마을 뒷산을 등지고, 완만한 경사를 이룬 터네 남동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안채, 사랑채, 중사랑채, 고방, 대문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튼ㅁ자 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 종손이 고택을 지키며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약간 경사진 곳에 세워진 고택은 바닥에 돌들을 다른 높이로 쌓아서 평형을 맞춘 듯 합니다.

 사랑채는 앞으로는 대문을 내다 볼 수 있게 되어 있고, 뒤쪽의 문을 열어놓으면 안채도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중사랑채에 해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안채의 모습입니다.

안채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하니, 그러라고 하시지만 안채를 멀리서 한컷만 찍고 나옵니다.  

 다시 바깥 사랑채로 나옵니다.

김종직은 (1431-1492)은 조선시대 성리학, 영남 사림파의 종조로서 성리학에 근거한 개혁 정치를 펼쳤습니다.

성종시대에는 도승지, 형조판서를 지냈으나, 후일 연산군 시대의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후 연산군이 축출되고 중종 때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사랑채에는 문충세가라 적혀 있습니다. 문충공파의 고택을 뜻함이겠지요?

 사랑채에서는 안채의 뜰과 집의 일부가 보입니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바라보면, 앞산마루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듯하고..

 대문 가의 보라빛 자주 달개비는 봄 햇살 속에 찬란히 피어납니다.

 종택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도연재가 있습니다.

점필재 김종직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방 유학자들이 조선 고종 원년에(1886)에 건립하여 유생을 가르치고 제사를 모시는 곳입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ㅡ'자형 맞배 지붕입니다.

 도연재 앞에 세워진 이 비석은 합천에서 고령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진상품을 서로 인수인계한 곳에 세운 것으로 합천군수와 고령 현감이 진상품의 인수인계 장소를 확정하고 서로 잊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고령현감 권영규는 1838-42년 사이에 제임한 인물로, 이 비석은 신축년인 1841년 정월에 세운 것입니다.

원래 개실마을 앞으로난 옛 도로변에 있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고 합니다.

 마을은 80% 정도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곳곳에 한옥을 짓고 있기도 하구요.

한옥에서 하룻만 묵을 수도 있는 곳도 여러곳 있습니다.

 담장 밖으로 손내민 나무가 눈길을 끕니다.

 들어오라고 손짓하시던 이집의 주인 할머니

널찍한 대청마루에 혼자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전통혼례장인 화산재도 볼 수 있습니다.

 

한옥의 담들을 끼고 돌며 어느새 마을 한바퀴를 돌았습니다.

돌담과 어우러진 한옥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

 

이곳에서는 도자기, 짚공예 등 만들기 체험과

전통 음식인 엿, 유과 두부 만들기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몸도 마음도 한박자 느려 질 수 있는 곳..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골~

개실마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