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모래톱이 살포시 쌓이는 곳..
낙동강가에 자리한 병산서원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설레입니다.
그 설레임이 두배가 되는 때, 바로 배롱나무 붉게 피어 서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요즈음입니다.(2010년 9월 4일)
사실 병산서원은 서원 자체만 보아도 좋기 때문에,
어느 계절에 와도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누각에 올라서면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곳이지요.
하지만..
오래전에 배롱나무 붉게 물든 때에 왔던 기억이 오래오래 남아 있습니다.
꼭 배롱나무 활짝 피었을 때, 다시 가봐야지하고 생각하던 곳입니다.
병산서원의 입구..
배롱나무 활짝 핀 이 길 너머에 서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길로 올라가면, 서원의 정문 쪽은 아니고, 고직사 쪽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꽃 너머로 보이는 만대루의 지붕..
병산서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
배롱나무 양 쪽에 가득 핀 이 길이 병산서원의 정문인 복례문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서애 류성룡(1542-1607년) 선생이 선조 8년(1575)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이었습니다.
류성룡은 선조 때 도제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 타계한 뒤
1614년에 선생을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세웠습니다.
이로써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 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 서원이 되었으며, 철종14년(1863)에 <병산> 이라는 사액을 받았습니다.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존속된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의 하나입니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과 만대루를 지나면 강당과 동재, 서제가 있습니다.
동재 뒤편으로 서 있는 것은 서원 관리인이 살았던 고직사이고 입교당의 서쪽 편에 서 있는 것은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입니다.
입교당의 동쪽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과 사당인 존덕사가 있고, 내삼문 동쪽에는 전사청이 있습니다.
열려 있는 복례문 앞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거나, 서원 안에서 만대루를 통해 만대루를 통해 바깥을 내다보면 어디하나 막힘이 없이 탁 트여 있어
건물과 건물 밖의 자연이 하나인 듯 느껴집니다.
병산 서원은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 점에서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이름나 있습니다.
연분홍꽃 배롱나무 뒤에 서서 바라본 복례문..
복례문 안으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누각 만대루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만대루 뒤로 병산서원의 입교당, 동재, 서재가 한 눈에 보입니다.
만대루 쪽으로 올라서서 뒤돌아보면, 들어왔던 길과 그 길을 지나 낙동강까지 보일 듯 합니다.
병산서원 현판이 걸려 있는 입교당.
자세히 보면, 병산서원의 현판 뒤로 입교당이라고 적힌 현판을 볼 수 있습니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뜻의 입교당
원장과 유생들이 모여서 강론을 했던 곳입니다.
강당은 서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강당의 동쪽 방인 명성재는 원장이 기거하던 곳입니다.
서쪽 방인 경의재는 교수와 유사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현대 학교의 교무실에 해당합니다.
강당의 앞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학문을 닦으며 기거하던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고, 만대루가 입교당의 대칭점에 서 있습니다.
만대루 너머로 서원의 출입문과 낙동강, 산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유생들 간에도 위계가 있어 나아가 많은 유생들이 동재에 기거했습니다.
서교의 작은 방은 장서실로 책의 보관을 위해 온돌을 놓지 않고 마루를 깔았습니다.
입교당의 대청마루 한 가운데 앉아 만대루를 통해 병산을 바라보면 강과 산으로 수놓은 일곱 폭의 병풍을 펼쳐놓은 듯 아름답습니다.
강당 정면에 서 있는 석조물은 밤에 불을 밝히던 정료대입니다.
입교당과 서재, 만대루의 모습
입교당은 이렇게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뒤에서 바라보면, 멀리 낙동강과 산이 다 보입니다.
이런 곳에 앉아서 공부를 하면, 공부가 절로 될 듯 합니다.
우람한 기둥..
손때 묻은 마루..
이곳에 오면, 입교당 마루에 앉아 앞에 펼쳐진 경치를 바라보거나, 만대루에 올라 앉아도 좋고..
땀도 식히고, 경치에 푹 빠져보거나...
이곳 서원의 마루에 올라가지 말라는 문구가 곳곳에 있습니다. 만대루도 올라갈 수가 없구요.
이 두 곳에 오르지 못하면, 서원을 반 밖에 안보는 것과 같을진데... ㅠ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에 화회마을과 같이 등재되고 나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녀가는 탓이겠지요?
어쨋든 안타깝습니다.
입교당의 뒷모습
아~ 배롱나무 꽃 피는 시기에서 한참을 지나 제가 온것이네요.
몇백년을 됐을 듯한 아름드리 배롱나무가 붉고 환하게 꽃피었을 터인데..
꽃은 다 지고, 몇 송이만 남아 있네요.
그래도 이번 태풍의 바람에 남은 것도 다 졌을 터인데, 이때라도 왔으니, 다행이다 하고 혼자 생각해봅니다.
입교당 뒤쪽으로 제향영역인 사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내삼문 존덕사
제향 영역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과 이를 준비하는 공간입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서애 류성룡과 그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가 있습니다.
류진이 이곳에 추가로 배향된 것은 현종 3년입니다.
사당은 신성한 공간이며, 위엄을 갖추어야 하기에 내삼문의 좌우로는 담장을 둘렀습니다.
경사진 지형에 서원을 짓고 가장 높은 곳에 사당을 배치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입니다.
또한 강학 공간은 선비 정신에 따라 검소하고 단아하게 꾸며 놓은 반면, 제향 공간은 단청도 하고, 태극문양으로 장식하고 있어 대조를 이룹니다.
내삼문 앞에 서서 바라본 서원의 모습
사당 오른편의 전사청의 모습입니다.
전사청은 제사를 지내기 전날에 제수를 보관하던 곳으로 평상시에는 제구와 제기를 보관합니다.
사당과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서원의 전사청은 별도의 담장을 두르고 내삼문의 동쪽에 있습니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 정일(음력 1일-10일 사이의 날 중 천간이 정(丁)으로 된 날)에 향사를 지냅니다.
사당의 왼편에 위치한 장판각
사원의 유물과 목판을 보관하던 공간입니다.
동재 뒤편에 위치한 고직사
서원 관리인이 살았던 곳입니다.
현재도 누군가 살고 계십니다.
고직사의 모습
고직사에서 바라본 만대루와 동재
아껴두었던 만대루...
만대루는 휴식과 강학의복합 공간입니다.
200여명을 수용하고도 남음직한 장대한 이 누각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습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굽이 도는 강물의 형상을 닮은 대들보의 모습은 건축물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가했던 조상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 중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 이름처럼 해질 무렵에 2층 누각에 올라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는 이곳의 경치 중 으뜸이라고 합니다.
다음에는 해질 무렵에 와 봐야겠습니다.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계단..
이 아름다운 누각에 올라설 수 없으니, 계단 끝에만 올라서서 바라봅니다.
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
올때 마다 더욱 아름다워지는 이 누각...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 들보와 이 넓디 넓은 마루는 올때 마다 더 퇴색하고, 바래갑니다.
세월에 따라 마치 표백되는 것처럼 맑은 흰빛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 마루에 올라 앉아 봐야하는 건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길..
배롱나무 꽃들이 괜찮다고 위로를 합니다.
주차장 쪽에서 바라본 병산서원은 푸름과 붉음의 묘한 대조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병산서원의 배치도..
배치도는 잘 올리지는 않는데, 이 서원 구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올려봅니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다시 가본 병산서원은 여전한 아름다움으로 절 맞아 줍니다.
병산서원 앞 낙동강에 4대강 사업을 알리는 붉은 깃발 꽂혀 있다가 사람들의 항의로 뽑혔다는데,
내년 여름 배롱나무 환하게 꽃 피울 때 다시 가면, 똑같은 모습으로 절 맞이해 줄까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아름다운 우리의 유산...
지켜주세요~
이 아름다움들,
우리뿐만이 아니라, 후세에도 다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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