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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권

서운산 자락의 작은 절집-청룡사

 서운산 산행의 마지막은 이곳 청룡사입니다. 4시간 반 정도의 산행을 마치고 서운산 자락에 기대어 서 있는 이곳 청룡사를 둘러봅니다.

청룡사의 일주문

일주문 앞에는 황매화가 활짝 피어있습니다.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기도 하구요.

                                           

 여백의 미라고 할까요?  절집의 담을 끝까지 막아두지 않고, 담을 띄워두고, 그 사이에 장독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청룡사 대웅전   -보물 824호

 

청룡사는 원래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국사가 세워 대장암(大藏庵)이라 불렀던 곳이다. 공민왕 13년(1364) 나옹화상이 크게 넓히면서 청룡사라 이름을 고쳤는데 청룡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광경을 보고 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절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건물로 추측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 윗몸에 연꽃과 연꽃봉오리를 화려하게 조각해 놓아 장식이 많이 섞인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인다. 기둥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세운 것이 눈길을 끈다. 건물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으로 꾸몄다.

이 대웅전은 안쪽에 조선 헌종 15년(1674)에 만든 범종을 보관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과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청룡사 소개 글 중에서-

                                              

 대웅전 내부의 붉은 등... 그리고 소박한 돗자리

 청룡사 삼층석탑  -대웅전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청룡사 앞뜰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4장의 판돌을 세워 4면을 이루게 한 뒤, 판돌을 얹어 마무리하였는데,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과 지붕돌이 교대로 올려진 탑신부는 몸돌의 모서리에 기단에서와 같은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다. 몸돌의 크기는 2층에서부터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이로 인해 전체에 흐르던 비례감이 약간 흐트러지고 있다. 급한 경사를 이루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들려 가벼움을 실었으며, 윗면의 네 모서리선이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기단과 지붕돌 모서리의 일부가 깨져 나가고,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없어지긴 하였으나,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석탑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은행 나무도 잎을 내고 있습니다.

단풍나무.. 은행나무... 철쭉... 그리고 꽃들... 하늘...

이곳 서운산은 규모는 작은 산인 듯 하나 계곡이 깊은 곳이더군요. 사방에 계곡이 조그맣게라도 자리하고, 그곳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더군요.

 안성 청룡사 동종  -  보물 11-4호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준다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에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새겨져 있다. 또한 종의 어깨와 아래 입구 부분에는 연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어깨 띠 아래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을 세웠다.
또한, 검은빛이 감도는 큰 종으로서 원래는 1674년에 종루의 종으로 만든 것이다. 현재도 매일 행해지는 예불의식 때마다 종을 치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종의 모양을 보면 소리를 좌우하는 음통(音筒)이 맨 위에 있고 그 옆에는 용 모양의 종을 거는 고리(용뉴)가 있다. 그 아래에 배가 불록한 포탄 모양의 종이 있다.
종신의 표면을 보면 위쪽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과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을 1줄씩 새기고 그 아래 사다리꼴로된 4개의 유곽(乳廓)이 있고 그 사이에는 연꽃 가지를 든 4구의 보살입상과 4개의 위패(位牌)가 한 쌍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같은 구성법은 17세기 전반기에 정통 승장계(僧匠系)장인들이 주로 썼던 방식이다. 이 종은 숙종 대에 활동했던 승장 사인(思印)이 30대 중반에 지준(智俊)·태행(太行)·도겸(道兼)·담연(淡衍)·청윤(淸允)과 함께 만든 통일신라 때부터 보이는 전통 계열의 종이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후기 종들 가운데서도 우수한 작품으로 17세기 범종의 연구와 승장들의 사회 및 사원경제구조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유곽 : 종의 윗부분에 붙어 있는 사각형의 무늬부분으로 유두(乳頭)를 둘러싸고 있다.

 청룡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황매화 - 작년 계룡사에 일부러 황매화를 보러 갔던 일이 생각나네요.

 서운산 산행 안내도

산행은 석남사에서 시작해서 정상으로, 좌성사를 거쳐, 은적암을 지나 청룡사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다녀왔지요.

산행 후에 안성목장과 서일농원으로 향합니다.

서운산 산행과 안성목장, 서일 농원으로 이어지는 안성의 하루~

뿌듯한 하루가 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