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떠돌던 방랑시인 김삿갓의 흔적을 찾아 떠나다-화순동복 김삿갓 초분지

 

 

 

시인의 맹세

   -김삿갓.1

 

시란

시인에게 굴레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씌워진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떠나는 괴로움과

떠도는 외로움

시인은 출발부터가 외로움이다

 

불행하게도

방랑은 시인의 벼랑이요

벼랑을 맴돌며 노래함이

시인의 숙명이라면

기꺼이 그 숙명에 동참하겠다고

맹세하마

 

-이생진 선생님의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 15쪽/우리글/2004

 

화순 동복 구암마을

비오는 가을날 오후 그곳으로 향합니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떠돌던 방랑시인,

김삿갓의 흔적을 찾아 떠납니다.

화순 동복 초분지와 구암마을입니다.(2013년 9월 6일)

 

이생진 시인은 2004년 가을,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를 펴내셨지요.

 

-마음속에서는 늘 떠나라 떠나라 한다. 떠나면 보일 거라고

내가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그 사람이 보일 거라고.

이것은 시를 쓰며 내가 나를 보는 방법이다.

나는 시를 쓰면 누군가를 뒤쫒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난고 김병연이다.

시인이라면 무조건 김삿갓 같은 사람이었으면 한 적이 있다-

라고 시인의 말을 쓰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생진 선생님은 담양 명옥헌을 둘러보시고

김삿갓이 운명하신 화순 동복 구암마을과 초분지를 둘러보러 가자고 하시네요.

선생님의 발걸음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사진은 구암마을 풍경입니다.

 

 

 

 

구암마을 지나 뒤로 가면

 

초분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은 비석에는 초분지라 적혀 있고

지명 유래비에는 이곳에 관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 동산은 동뫼동(동산이란 뜻)에는 극빈자나 무연고 행여 사망자가 발생하면 이곳에 매장해 왔으며

1863년 난고 김병연이 사망하였을 때도 정씨 문중에서 마을을 사람들의 협조를 받아

이곳 남쪽 기슭에 초장을 한 후 3년 뒤에 후손들에 의하여 영월로 이장해가고

파묘터만 남아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비오는 가을 오후

세월은 이곳에 흔적만 남겨놓고 그리 흘러갔건만,

비 맞은 강아지풀은 무얼 아는지,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작은 들꽃들과도 눈맞춤하며 초분지로 향합니다.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 선생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다가 끝내 객사한 조선시대 시인이지요.

 

이생진 선생님은 그런 그의 그림자를 따라 그의 무덤이 있는 영월 와석리에서 시작해서

태백산, 정선, 동강, 금강산, 무등산 , 지리산, 하동, 광양, 순천, 보성,

그리고 화순 동복, 그가 숨져 누웠던 이곳, 초분지까지 찾아 다니셨다고 합니다.

 

 

 

 

초장지라 적힌 누운 비석

 

 

 

 

비석 위에 술을 한잔 붓습니다.

 

 

 

 

외롭기 짝이없는 무덤이고 묘비로군요.

 

 

 

 

술 한 잔

 -김삿갓.78

 

외롭단 말 할 염치조차 없으면서

재갈을 씹듯 입 속에 든 돌을 씹어대네

 

목구멍이 사슬인가

詩가 힘줄인가

 

'등불은 적막하고 고향집은 아득한데

달빛이 쓸쓸하여 나 홀로 처마를 바라보네

종이마저 귀한지라 분판에 시를 쓰고

소금을 안주 삼아 탁주 한 잔 마셨네'*

 

-이생진 선생님의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 116쪽/우리글/2004

 

*김삿갓의 시 <즉음卽吟> 중에서

 

 

 

 

초분지 앞에 술 한잔 따라놓고

선생님의 시낭송이 이어지고

다시 구암마을로 내려옵니다.

 

김병연 선생이 운명하신 집을 보기 위함이지요.

 

 

 

 

구암마을 정씨집..

57세의 일기로 비운의 일생을 마친 이곳에는

김삿갓 시비가 쓸쓸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돌담 옆에는 비에 젖은 봉숭아꽃들이 피어 있고

 

 

 

 

전선 위에 앉은 새는 구슬픈 울음소리 내는 곳..

 

 

 

 

오래된 은행나무 높게 자리하고 있는 곳..

 

 

 

 

기와집 처마는 고개를 마주대고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처마끝에 비 닿는 소리를 들으며

내부로 걸어 들어가봅니다

 

 

 

 

낮은 굴뚝에도 눈맞춤을 하며 걷습니다

 

 

 

 

시는 떠돌며 써야 제맛이라고 하신 이생진 선생님

비오는 처마 끝에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걸까요?

 

 

 

 

시인아 바람아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바람처럼 나는 간다

 

너의 눈엔

가볍게 보이지만

천 근 만 근 무거운 시름

부평초처럼 떠돌며 얻어먹기 30년

본래 이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데

세월에 업혀 그렇게 가고 말았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이생진 선생님의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 133쪽/우리글/200

 

 

 

 

그가 운명하신 집 안쪽에 자리한 우물

그 우물 안에는 작은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물 고인 우물..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을 듯 하여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드는군요.

 

 

 

 

난고 김병연 선생은 다섯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열살 전후에는 사서삼경을 통달하는 수준이었다고 하지요.

 

 

 

 

시를 짓는 재주가 남달리 특출하고 고금의 시서와 사서를 닥치는 대로 섭렵하였다고 하지요.

20살이 되던 해에 과거를 보았는데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보라'라 시제였다고 하지요.

 

홍경래의 난에서 선천방어사였던 김익순은 반란군이 쳐들어오자 즉석에서 항복했던 사람이지요.

김병연 선생은 김익순을 백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 이르고 탄핵하는 글을 거침없이 쓰고

그 시로 장원을 차지하고 집에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가 기쁜 맘으로 어머니에게 자랑을 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이제껏 숨겨왔던 집안내력을 가르쳐 주시니

반역자 김익순이 바로 김병연의 할아버지였던 것이지요.

 

역적의 자손인데다 그 조부를 욕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탔으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여 삿갓을 쓰게 되었고

이름도 김병연 대신 김삿갓이라 스스로 부르고 평생을 떠돌았던 김삿갓..

 

이생진 선생님은 김삿갓에 대해 말씀하시고

다른 이들은 듣고..

 

 

 

 

1800년대에는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살펴보며 수많은 시를 뿌려놓으신 방랑시인 김삿갓 선생이 있었다면

이 시대에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며 노래를 하시는 가객 현선생님이 계신 것은 아닐련지요? ㅎㅎ

 

 

 

 

마지막 날

 -김삿갓.105

 

결국 그 자리에 누운 것은

소박한 인동초 때문

인동초는 입이 가볍지 않으니

개구리가 나불거리는 것보다야

느티나무 아래 김삿갓 초분지初墳地가 말하듯

나 이제 갈 데로 갔으니...

 

 

 

 

그가 마지막 누웠던 사랑채 마루 밑에서

낡은 짚신 곰팡이 슬고

그 집 노인이 집고 다니던 지팡이엔

고추잠자리가 잠깐 앉아 있네

이보다 양지에 쪼그리고 앉아 숨을 거둔 자리에

엎드려 머리 숙인 나도

그 수 밖에는...

허탈감에

수줍은 인동초를 보다가

떠났으니

그 후로는 아무도 모를 일일세

 

-이생진 선생님의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 114쪽/우리글/2004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어쩌면 이곳은 비오는 날에 오는 것이 맞을련지도 모르겠네요

 

 

 

 

초분지와 구암마을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

죽장을 들고 삿갓을 쓴 방랑시인은

슬픈빛으로 여행자를 배웅해줍니다.

 

화순 김삿갓 초분지 찾아가는 길

네비게이션에 화순동복중학교를 입력하고 가시면 됩니다.

동복중학교를 지나 822번 국도를 따라 조금만 더 가시면 구암마을 이정표, 또는 김삿갓 초분지란 이정표가 길가에 세워져 있습니다.

 

화순의 김삿갓 초분지를 보았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물염정입니다.

김삿갓이 이곳 경치에 반해 자주 올랐다던 곳에 세워진 정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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