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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깊은 숲 맑은 물을 품은 길을 따라 오르다-해남 대흥사

 

 

 

눈을 조심하여

남의 잘못을 보지 말고

맑고 아름다운 것만을 보라

입을 조심하여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착한 말, 바른 말,

부드러운 말, 고운 말만 하라

 

-숫타니파타-

 

해남 대흥사의 푸르름이 가득한 연못가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글귀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해남 대흥사..

그 푸르름이 가득한 봄날을 만끽하고 왔던 날이었습니다. (2012년 4월 28일)


 

 

 

대흥사에 이르는 길..

대흥사까지 이르는 숲길과 계곡이 이리 좋았나 싶습니다. 

굽이굽이 아홉 굽이 숲길이라 하여

‘구림구곡(九林九曲)’이라 이름붙은 십리 숲길이 여행자의 눈앞에 펼쳐집니다.

 

 

 

 

깊은 숲 맑은 물을 품은 길을 따라 오릅니다.

 

초록빛 가지들 바람에 손 흔드는 오후..

 

 

 

 

고개를 들면 하늘은 온통 초록빛..

그 빛이 너무 좋아 한참을 올려다봅니다.

 

대흥사의 숲길이 이렇게 품이 컸었나 싶습니다.

절의 크기만큼 숲길의 길이도 길고 짙은 숲터널입니다.

 

대흥사의 숲길은 촘촘합니다.

그러나 나무 잎과 가지들은 햇빛이 지나는 길을 완전히 막지 않고

날실 씨실 처럼 적당히 얽혀 드는 빛과 그늘이 아른합니다.


 

 

 

숲길엔 쭉 뻗은 삼나무와 나도밤나무, 동백나무 군락 등이 차례 차례 기다립니다.

지난 겨울 꽃을 피운 붉은 동백나무..

이 화사한 봄에 그 붉은빛을 더하고 있습니다.

 

 

 

 

나무 사이 부는 바람이 청량하게 살갗에 닿습니다.

이름모를 새가 푸드득 날아가는 소리 또한 청량하게 귀에 와 닿는 길입니다.

 

 

 

 

숲길 따라 타박타박 걷다보면 숲길의 끝 자락

긴 돌담을 가진 기와집을 만납니다. 

 

 

 

 

유홍준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되었던 여관 유선관..

이 여관의 길 안내를 한다던 누렁이가 소개되었었지요.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 더이상 누렁이는 보이지 않고..

 

 

 

 

이제 이곳은 봄꽃들 만발하여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이곳 대흥사는 여관이 많아 시민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당시 시민들 탑승차량 7~8대가 광주여관, 안흥여관(지금은 없어짐), 유선여관에 도착

이곳 주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으며

이곳 주민들은 5월22일 아침 광주로 향하던 시민들에게 김밥, 음료수 등을 지원하기도 하였답니다.

 

지금은 대흥사 입구에 당시의 이야기를 담은 비석 하나 남아 있습니다.

 

 

 

 

손때묻은 장독대들, 계곡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 유선관은 예약제로 숙박은 물론 식사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화 061-534-2959)

 

 

 

 

조금 더 위로 오르자 '두륜산 대흥사' 라 이름붙은 일주문을 만납니다.

그 뒤로 아름다운 바위 봉우리들을 가진 두륜산이 그 얼굴을 보여줍니다.

 

두륜산의 옛 이름은 우리말로 큰 산이라는 뜻의 ‘한듬’이었는데

앞말을 한자어가 대신하며 ‘대듬’이 됐다가 읽기 편하게 대둔산으로 불렸습니다.

현재는 백두산과 곤륜산에서 한 자씩 채용해 두륜산이 됐다고 합니다.

산의 이름의 변천에 따라 대흥사도 한듬절이라 불리웠다가 대둔사라고 불리웠다가

일제시대에 대흥사로 명칭이 굳어졌다고 합니다.

 

 

 

 

일주문을 지나자 대흥사 부도밭을 만납니다.

서산대사, 초의선사의 부도를 비롯해 13대 종사, 13대 강사의 비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 부도밭에는 총 56기의 부도가 자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부도에는 용부터 다람쥐까지 재밌는 표정의 동물들이 부도에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의 부도도 볼 수 있는데

거북이·게·다람쥐 문양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라는 말을

자신의 영정 뒷면에 마지막으로 적은 후 서산대사는 결가부좌한 채로 입멸하였다지요.

 

서산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독 화려하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미리 공부를 하고가지 않은 여행자는 이 많은 부도들 중 서산대사의 부도를 찾을 길이 없었답니다.

대흥사에서 표지판으로 살짜기 알려주셨다면

더욱 즐거웠을 여행이 되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이곳 부도밭에는 해양생물들이 새겨져 있기도 하는데

이는 바다와 인접한 곳이기 때문이랍니다.

 

 

 

 

신심깊은 어머니들 지팡이 짚고 오르는 길..

 

 

 

 

해탈문 안에 서서 기도하는 모정을 뒤에서 담습니다.

 

 

 

 

해탈문 안을 들어서니 사천왕상이 모셔졌을 줄 알았던 여행자

코끼리 위에 앉아 있는 보살을 만납니다.

 

정확히 무어라 부를지 모르겠네요.

해남에서 만난 문화해설사님께 자세히 여쭤볼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를 해봅니다.

 

 

 

 

동다실, 세심당, 정진당..

 

대흥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초의선사..

초의스님은 속세 성명은 장의순이었으며

1786년 나주 삼향면에서 태어나 16세에 남평 운흥사에서 중이 되었습니다.

 

그후 월출산,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 등 명산을 유람하며

선지식을 찾다가 대흥사 조실 완호스님의 법맥을 이어받았습니다.

 

맥이 끊어져가던 차 문화를 일으켜 <동다송> 지었으며

자신의 명성이 차츰 세상에 알려지자 은거에 뜻을 두고

이곳 대흥사에서 두륜봉 쪽의 산중턱에 일지암을 짓고 그곳에서 40년을 정진하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들르지 못한 일지암..

다음 기회에는 꼭 들러보고 싶은 암자로군요.

 

 

 

 

초의스님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추사 김정희 입니다.

 

"나는 스님을 보고 싶지도 않고 또한 스님의 편지도 보고 싶지 않으나

다만 차와의 인연만은 차마 끊어버리지도 못하고 쉽사리 부수어버리지도 못하여

또 차를 재촉하니 편지도 필요없고 다만 두 해의 쌓인 빚을 한꺼번에 챙겨 보내되

다시는 지체하거나 빗나감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거요..."

 

장난기어린 투정까지 부리면서 이처럼 막역한 우정을 나누었다는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

그래서 추사는 그의 명작 <명선-차를 마시며 참선에 든다>을 남겼다지요.

 

 

 

 

맑은 차 한잔 기울이며

겨드랑이 바람일어

몸은 맑고 가벼워져 하늘올라

노니는 듯

댓잎소리 솔바람이

소슬하고 청량하여

뼈속깊이 맑은 정신

오장육부 깨어나네

 

-초의선사의 동다송 중에서-

 

 

 

 

여행자가 찾은 날은 대흥사에서 초의문화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초의선사를 기리며, 차문화를 알리는 축제..

이곳에서 직접 차를 덕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증구포..

아홉번 덕고 아홉번 말린다는 차..

 

처음에 푸르던 차는 250도가 넘는 가마솥에 들어갔다 나오고

다시 비비면서 말려주고, 털어서 널어주고..

 

다시 가마솥, 말리기를 반복합니다.

직접 해볼 수도 있습니다.

 

차향기에 취해보는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대흥사 순례에 나섭니다.

 

 

 

 

마음의 멍에를 벗고 들어가세요”


대흥사 천불전. 천 가지 불상의 얼굴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들어가는 길.

가허루의 짧은 통로를 지납니다.

 

소의 멍에처럼 생긴 문턱..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구속에서 벗어나 한결 가벼워진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마음을 비우고 천불전 앞마당에 발을 내딛습니다.

 

 

 

 

깔끔해진 꽃살문이 봄볕을 쬐며 사방연속무늬의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멋을 뽐내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보면

이 꽃살문을 내소사 창살문과 함께 손꼽히는 명품이라고 소개하였었지요.

 

 

 

 

천불전 안의 천가지 얼굴을 한 불상들..

모두 다른 얼굴을 한 불상 중에 자신을 닮은 불상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천불전 앞에 나란히 선 도자기 등..

이곳에 소망을 밝히고 소원을 올립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돌담의 담쟁이..

그 초록빛의 어여쁨이란..

 

 

 

 

뿌리가 서로 붙은 연리근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천년의 인연, 만남, 약속이라 적힌 글귀..

 

오늘 등불 하나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 속 깊은 사랑변치 않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 하나

참 고운 등불 하나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대웅보전을 향해가다 돌아보니

연리근이 그 우람함을 드러내보입니다.

 

 

 

 

대흥사는 조선시대 명필들의 서예 전시장이라고 불리우지요.

이곳 대웅보전의 현판은 조선후기의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 선생의 글씨입니다.

획이 바싹 마르고 기교가 많이 들어 갔지만 화강암의 골기가 느껴진다고 하지요.

 

 

 

 

그리고 대웅보전 옆에 위치한 백설당에 걸린 무량수각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입니다.

추사의 글씨는 획이 기름지게 살지고 구성의 임의로운 변화가 두드러져 있습니다.

 

대웅보전과 무량수각 현판..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 사이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주도 귀양길에 추사는 해남 대흥사에 들려 초의선사를 만납니다.

귀양살이 가는 길에도 추사는 그 기개가 살아 있어 대흥사의 현판글씨들을 비판하며 초의에게 하는 말이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놓은 것이 원교 이광사인데, 어떻게 안다는 사람이 그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버젓이 걸어놓을 수 있는가"

라며 있는 대로 호통을 치며 신경질을 부리자 초의는 그 극성에 못이겨 원교의 현판을 떼어내고

추사의 무량수각 현판을 달았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7년 3개월..

추사는 63세의 노령으로 귀양지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추사는 서울로 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러 초의를 만나 회포를 풀던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에 내가 귀양길에 떼어내라고 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이 지금 어디 있나?

있거든 내 글씨를 떼고 그것을 다시 달아주게.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어"

 

추사 인생의 반전이 그렇게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합니다.

법도를 넘어선 개성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그는 외로운 귀양살이에서 체득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지금 대흥사 대웅보전에는 원교 이광사의 현판이 다시 걸리고

그 왼쪽에 있는 승방 백설당에는 '무량수각' 현판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대흥사편에서

원교와 추사의 글씨를 비교하여 한 말이 있는데 여기 옮겨보자면

 

"쉽게 말해서 원교체는 손칼국수의 국숫발 같고, 추사체는 탕수육이나 란자완스를 연상케 하는 그런 맛과 멋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귀양살이 이후의 글씨인 <명선>에 와서는 불필요한 기름기를 제거하고

자신의 기와 운을 세우게 되는 그런 경지란 원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높은 차원이었던 것이다."

 

 

 

 

푸르른 나무 우람한 모습으로 서서

그 긴그림자를 드리우는 시간..

 

여행자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할 시간입니다.

 

고산 윤선도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아름다운 남도 길 위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해남 대흥사 찾아가는 길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

 

서해안고속국도 종점인 목포 ic-목포에서 국도 2호선과 13호선을 이용해 해남읍-지방도로 806호선으로 남쪽으로 10㎞-대흥사

 

대흥사에서는 1박2일 산사체험을 할 수도 있으며

많은 산내암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안내를 원하시면 클릭해 보세요~ http://www.daeheung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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