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라북도

눈길 닿는 곳마다 보물들이 가득한 완주 송광사

 

 

 

완주 송광사를 가기 전에 미리 자료를 살펴보니,

봄날 송광사에 이르는 벚꽃 길이 아름답다고 되어 있더군요.

 

봄날 다시 와야할 절집이겠구나.. 하는 마음..

그러나 절집 앞에 내리자마자 여행자를 반겨주는

화사한 연꽃들..

 

여름날의 송광사는 이 연꽃들로 인해

특별하게 기억될 듯 합니다.

 

아름다운 연꽃들이 맞이해주던 송광사는

또한 많은 보물들을 가지고 있는 절집입니다.

 

눈길 닿는 곳마다 보물들이 가득한 절집..

 

소박한 모양새의 절집이지만,

귀한 볼 것들이 참 많은 절집입니다.

 

대웅전, 대웅전 삼세불상, 사천왕상, 십자형 종각,

나한전 삼존불과 오백나한상, 지장보살상 등등...

이들 모두 보물이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연꽃 활짝 핀 완주 송광사의 모습입니다. (2011년 8월 2일)

 

 

 

 

송광사의 예전 이름이 백련사라고 하더니..

 

비록 백련은 아니지만, 홍련이 가득피어

절집을 찾은 여행자의 마음과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겠지요? ㅎㅎ

 

 

 

 

완주 송광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의선사가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이름은 백련사였고, 규모 또한 커서 일주문이 3㎞나 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폐찰이 되었다가

1622년(광해군 14)부터 응호·운쟁·덕림·득정·홍신 스님 등이 다시 세우기 시작해

14년 만인 1636년(인조 14) 완공되었다는 기록이

전주부 송광사 개창지비(사적비)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 때부터 절 이름도 송광사로 바꾸어 불렀다고 하지요.

 

 

 

 

연밭을 지나니 능소화 핀 담장길을 따라서

송광사로 향합니다.

 

여름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여행자를 즐겁게 해주는 계절입니다.

 

 

 

 

일주문으로 들어서기 전,

담장 너머로 절집을 살~짝 들여다보니,

보살장승의 모습과 전통찻집의 모습이 보입니다.

 

 

 

 

종남산 송광사라 적힌 일주문.. (One pillar gate in songgwang Temple)

 

이곳부터 완주 송광사의 보물을 만나는 일이 시작됩니다.

일주문은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4호라고 합니다.

 

일주문은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는 첫 관문으로 조선 중엽에 세운 것입니다.

원래는 이곳에서부터 남쪽으로 3km 떨어진 '나드리'라는 곳에 있었으나

절의 영역이 축소되면서 점차 안쪽으로 옮겨지다가

1944년 해광스님이 이곳에 세웠다고 합니다.

 

문의 좌우 측면에는 위아래의 굵기가 같은 중심 기둥을 세우고,

그 앞뒤에 연꽃을 조각한 보조 기둥을 세운 것이 특징입니다.

 

용머리 등으로 장식한 처마가 화려하며

건물이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어 단아한 멋을 풍깁니다.

 

일주문에는 '입차문래자 막존지해' 라는 글이 걸려 있는데

이 일주문을 들어오는 사람은 세속적인 생각,

분별하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한마음으로 진리를 생각하여

불법에 귀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일주문에는 자신이 간직한 불성의 씨앗을 개발하여

스스로 부처의 길에 이르고 동시에 모든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는 대승불교 사상의 핵심인,

일불승(一佛乘)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정교하게 깎은 보살장승이

양쪽에서 어여쁜 미소로 반깁니다.

 

관세음보살상을 닮은 보살장승이로군요^^

 

이어 금강문, 천왕문, 종루가 차례로 나오며

종루 옆으로 대웅전을 지나면 뒤쪽에 나한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위치해 있습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는 일자(一字)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금강문은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로 인왕문이라고도 부르며

문 양쪽에는 손으로 권법을 짓거나 금강저 또는 칼, 창을 손에 든

금강역사를 모셨습니다.

 

왼쪽에는 밀적금강,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을 모셨는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우금강역사라고도 부릅니다.

 

이 금강문을 지나면서 금강의 지혜로

모든 번뇌를 쳐부수어 완전한 행복의 세계,

즉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뜻이 있습니다.

 

금강문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73호입니다.

 

 

 

 

금강문을 지나니, 당간지주가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자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고 어여쁜 당간지주로군요.

 

 

 

 

공사중인 천왕문을 돌아 들어서니

포대화상이 넉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절집 풍경을 만납니다.

 

종남산 아래 평평하고 너른 대지위에

대웅전, 관음전, 종각, 지장전, 삼성각, 나한전 등이 펼쳐져 있습니다.

 

 

 

 

 

대웅전 오른쪽 마당에 선 종각은

독특하게도 십자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유일한 십자형(또는 아(亞)자형이라고도 부릅니다) 종각입니다.

 

수많은 기둥과 빼곡한 공포들로 이루어져 있어 화려한 느낌을 주며

크지 않은데도 웅장한 힘과 규모가 느껴집니다.

 

 

 

 

이곳의 종루는 조선 세조 때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철종 8년(1857년)에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건물의 꾸밈이 화려한데

특히 처마 장식이 비길 데 없이 화려합니다.

 

종루 안에는 그보다 140년쯤 앞서 만든 범종을 가운데 두고

그 둘레에 물고기형 나무조각과 북, 구름무늬 철판을 매달았습니다.

 

이것들은 불당 앞에 있어 불전사물이라고 합니다.

'불전사물'은 보통 아침, 저녁 예불 전에 올립니다.

 

북은 땅 위에 사는 네 발 짐승을,

범종은 땅속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목어는 물속에 사는 생명체를,

운판은 창공을 나는 날개 달린 짐승을 위해 울리는 것입니다.

 

이 각각의 울림을 듣고서 몸과 마음의 번뇌를 잊고

영원한 해탈의 마음을 내어 모든 중생이 자유와

한없는 평화와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발원한 것입니다.

 

이 송광사 종루는 보물 1244호입니다.

 

 

 

 

이 절집 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목장승들..

미소가 어찌나 어여쁜지..

자꾸 자꾸 보게 되더군요^^

 

 

 

 

그리고 만나는 대웅전..

 

 

 

 

이 대웅전 안에 모셔진 부처님은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있기 전 이틀씩이나 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1984년 개금을 하고나서부터 생기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그간 몇 차례 땀을 흘려 세상의 변고를 알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좌불로 사천왕상처럼 흙으로 빚어졌습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 아미타여래가 있으며

각각의 부처가 삼세(전세, 현세, 내세)를 상징하며

이 삼세불은 모두 조선 인조 19년(1641년)에 흙으로 빚었습니다.

 

이 불상은 석가여래의 화현이라 여겨지던 진묵 스님이 점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불상 복장에는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두 왕세자의 무사 귀국을 비는 발원문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이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복장유물은 보물 1274호라고 합니다.

 

이 삼존불은  KAL기 폭파사건, 12·12사태, 서해 훼리호 침몰사건, IMF 한파 등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예견하고

그 고통에 동참하는 눈물과 땀을 흘린 것으로 이름나 있습니다.


그래서 참배, 기도객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삼존불상 사이에는 나무패 세 개가 있는데

이는 17세기에 만든 것으로

이 삼전패는 목패, 원패라고도 합니다.

 

뒷면에는 가각 '주상전하수만세' '완비전하수제년' '세자전하수천추' 라고 적혀 있는데

인조 임금과 왕비, 그리고 소현세자, 봉림대군의 안녕을 빌어드린 조각입니다.

 

인조는 병자호란을 맞아 어지러운 민심과 피폐해진 재정을 회복하고자

최고 승병대장인 16도 총섭 벽암 스님과 승병을 보내

송광사를 대대적으로 복원하고 이 절을 호국원찰로 삼았다고 합니다.

 

연꽃과 구름 그리고 왕을 상징하는 용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목조삼전패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70호입니다.

 

 

 

 

대웅전 앞마다에 핀 연꽃 한송이..

대웅전과 어우러져 더욱 고아해보입니다.

 

대웅전은 송광사의 중심 법당으로

신라 말기에 보조 스님이 처음 지었다고 전합니다.

 

원래 이층 법당이었는데 조선 철종 8년(1857년)에 재봉스님이

일층건물로 다시 세웠습니다.

 

송광사 대웅전은 보물 1243호라고 합니다.

 

대웅전 천장에는 부처의 진리를 찬탄하며 부처에게 음성과 춤 공양을 올리는

11점의 비천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다른 사찰의 벽화와 달리 채색과 선이 완벽하게 살아 있는

한국 최고의 아름다운 천장 벽화라 불리운다고 합니다.

 

 

 

 

 

 

 

 

 

 

 

 

 

 

또한 대웅전 뒤쪽의 벽화들도 빼놓지 말고 둘러보아야 합니다.

 

 

 

 

대웅전은 바깥쪽에도 아름답고 섬세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여행자의 눈길을 붙듭니다.

 

 

 

 

 

 

 

 

 

 

 

 

 

이곳의 지장전과 나한전의 부처님 역시

영험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의 지장전은 4대 지장기도도량에 든다고 합니다.

 

 

 

 

평지사찰인 송광사에

자그마한 언덕이 자리하고 그 위에 세심정이 있습니다.

 

마음을 씻는 정자라..

송광사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시원스런 쉼터가 되겠군요.

번잡한 마음들도 내려놓을 수 있는...

 

 

 

 

이제 대웅전 뒤에 위치한 나한전으로 향합니다.

 

 

 

 

나한전은 불법 수호와 중생 제도의 서원을 세운 나한들이 있는 곳이지요.

 

이곳에 모셔진 500나한은 크기도 앉은 자세도 생김새도

모두 달라 그 자체로 한 세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한전의 불상들은 조선 효종 7년(1656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가운데에 석가여래를 두고 그 좌우에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배치하였습니다.

 

 

 

 

나한전의 화려한 처마..

 

나한전도 조선 효종 7년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17세기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낮은 받침부 위에 커다란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위아래의 굵기가 같고 반듯한 둥근기둥을 세웠습니다.

 

이곳 또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72호입니다.

 

 

 

 

절집을 한바퀴 둘러보고 돌아나옵니다.

 

절집 입구의 고인돌이

무심한 세월을 안고 여행자를 배웅해주는군요.

 

 

 

 

송광사 안내도를 보시면

평지사찰인 송광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전남 순천에 위치한 송광사와 이름은 물론

한자까지 똑같은 절집, 완주 송광사..

 

규모는 순천 송광사에 비해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으며,

아기자기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곳인 듯 합니다.

 

거기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는

보물찾기...


즐거운 절집 순례였습니다^^

 

 

완주 송광사 찾아가는 길

 

위치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2번지 

 

호남고속도 익산IC∼799번지방도∼봉동∼17번국도∼26번국도(진안 방면) 741번 지방도 ~송광사

 

 

 

 

부근의 다른 여행지를 보러가시려면~

 

 

숲과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이 무더위를 식혀주는 곳-고산 자연휴양림 http://blog.daum.net/sunny38/11775652 

 

경기전에 봉안한 태조의 위패를 모셔서 위기를 모면케 한 사찰-완주 위봉사 http://blog.daum.net/sunny38/11775642

 

경기전에 봉안한 태조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축성된 산성-완주 위봉산성 http://blog.daum.net/sunny38/11775645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준 시원스런 폭포-완주 위봉폭포 http://blog.daum.net/sunny38/11775648

 

색다른 추억과 맛을 만나고 싶다면, 완주 창포마을로 오세요-감자삼굿구이 http://blog.daum.net/sunny38/11775649

 

평균 연령 75세, 전국 최고령 연주단인 다듬이 할머니 연주단-완주 창포마을 http://blog.daum.net/sunny38/11775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