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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여행(Egypt)

부활을 꿈꾸었던 파라오가 잠든 땅, 왕가의 계곡-이집트44

 

 

 

룩소르는 예전에 테베라고 불리웠으며

중왕국, 신왕국, 그리고 말기 왕조 시대에 수도로서 번영하던 곳입니다.

 

룩소르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서안과 동안으로 나뉘는데

먼저 서안을 소개할까 합니다.

 

룩소르 서안은 태양이 지는 곳..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있어서 죽은 자들을 위한 장소이며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룩소르 서안의 대표적인 곳, 왕가의 골짜기입니다. (2011년 1월 23일)

 

주차장에서 바라본 왕가의 골짜기입니다.

왼편에 보이는 건물 안의 검색대를 통과하여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은 열차를 타고 안쪽으로 이동합니다.

 

카메라는 아예 반입금지!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ㅠ

 

 

 

 

왕가의 계곡을 설명하자면,

이집트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집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 하네요.

 

이집트 역사를 살펴보자면,

 

기원전 3200년 경

 상, 하 이집트로 나뉘어져 있던 이집트는 통일이 됩니다.

 

기원전 2778년-2200년 경 고왕국 시대로

수도를 멤피스로 정하고

이 시기에 앞서 포스팅한 기자의 피라미드들을 건설하였습니다.

파라오의 치하에서 이집트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 하였습니다.

 

기원전 2260-2160년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외세의 침투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기원전 2160년-1785년

중왕국 시대로 테베의 호족에 의해 이집트는 다시 통일이 되고

테베를 수도로 삼습니다.

 

기원전 1580년-1085년

신왕국 시대로 제 2의 황금기가 돌아옵니다.

이 시기에 앞으로 설명해드릴 룩소르 신전, 카르나크 대신전, 그리고 이곳 왕가의 골짜기의 무덤들이 건설됩니다.

 

그리고 1085년부터는 말기 왕조 시대로 통일 이집트의 종말이 옵니다.

 

그 이후에는 페르시아에 정복 되었다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 되었다가

로마에 합병되기도 하고, 아라비아에 정복되기도 하는 부침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왕가의 계곡

 

 

 

 

왕가의 계곡을 향해 가는 길..

길 양쪽으로 수 많은 바위산들이 산재해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있어, 그 길을 달립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쉽게 차로 접근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바위가 많은 깊은 계곡 사이에 고립된 좁은 계곡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룩소르 대표 여행지답게

수많은 버스들이 주차장에 가득합니다.

 

버스 뒤로 왕가의 계곡이 보입니다.

 

 

 

 

계곡을 향해 가는 출입구에 해당하는 곳

 

고왕국 시대의 피라미드들이 도굴되는 것을 본 파라오들은

도굴을 피하기 위해 사막지대에 암굴을 파서 묘지를 만듭니다.

즉 왕들의 공동묘지인 셈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견된 64개의 무덤 가운데

도굴을 면한 것은 겨우 하나~

투탕카멘의 묘 뿐이라고 합니다.

 

 

 

 

핸드폰 카메라로 몇 장 찍어본 사진입니다.

 

앞쪽의 계곡들이 묘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왕가의 계곡 묘지 중에는

일반에게 몇군데 공개되어 있으며

왼편을 보시면, 아직도 발굴 작업 중인 곳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 황량하고 황량한 사막..

이런 공간에 왕의 묘지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빛의 돌"을 보면

왕가의 계곡 근처에서 머물며

왕의 무덤을 만들고, 그 무덤을 장식하는 일로 일생을 보내는 장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요.

 

실제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골짜기 사이에 있는 데이르 엘 메디나라는

마을이 있는데, 바로 파라오의 장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람세스 6세의 무덤 입구

 

무덤들은 이러한 입구를 가지고 있으며

입구를 들어서면

길지만 때로는 구부러거나 넓혀진 통로는 전실로 이어집니다.

 

현실에는 석관이 있고

그 안에는 파라오의 미이라가 있습니다.

 

옆의 방들에는 파라오가 저승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들어 있구요.

 

 

 

 

보통 통로 입구로 들어서면

대부분 이러한 부조를 먼저 볼 수 있습니다.

 

옆에 날개가 달린 코브라와 원형의 태양으로 장식된 처마도리 벽입니다.

이 문양들은 앞서 콤옴보 신전이나 에드푸 신전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던 장식들입니다.

 

 

 

 

벽면에는 주로 죽음의 서에 관한 내용들이 많이 부조 되어 있습니다.

 

람세스 9세의 묘에 새겨진

하토르와 호루스가 함께 태양의 나룻배에 올라 있는 모습

 

 

 

 

 

위에서 말씀드렸던 현실

 

아몬 오피스 2세의 묘의 현실로

왕의 석관이 있고, 벽면은 두아트에 관한 책의 장면들을 묘사해 놓았다고 합니다.

 

 

 

 

개머리 신 토트가 묘사된 벽면

 

 

 

 

무덤 안에는 죽음에 관한 묘사뿐만 아니라

당시의 이집트의 생활 상들을 엿볼 수 있는데

농사 짓는 것, 가축을 이용한 농사를 짓는 것,

이집트에서 자라던 나무들 등등

많은 것들을 벽화로 남겨 놓았습니다.

 

 

 

 

세티 1세의 무덤의 기둥에 새겨진 부조

 

세티 1세가 서쪽 사막의 여신 하토르와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하토르의 왼손은 그녀의 매니트 목걸이를 잡아서 죽은 왕에게 건네고 있고,

왕은 손을 올려 그 목걸이를 만지려 하고 있습니다.

 

하토르에게 바쳐진 이 목걸이는 이 장면의 상황에 어울리게

재탄생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물건입니다.

 

하토르의 치마는 왕의 관직과 이름으로 꾸민 독특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투탕카문의 무덤에서는 왕과 하토르의 피부색이 확연히 차이가 나게 그려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하토르의 피부가 세티의 것과 같은 짙은색입니다.

 

왕의 투명하고 주름진 옷을 표현한 솜씨가 돋보입니다.

석회암에 회반죽을 입혀 채색한 것으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람세스 4세 무덤의 벽화

 

 

 

 

제 18왕조의 무덤들은 전실과 현실이 직각으로 꺾여 있고

제 19왕조 이후에는 직선으로 놓아진 것이 많다고 합니다.

 

람세스 1세의 무덤 벽화

 

입구에서 산 엽서인데, 상태가 그리 썩 좋지는 못하군요.

 

 

 

 

람세스 1세의 무덤 벽화

 

왕은 호루스신과 야누비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곳 왕가의 계곡에 자신의 시신을 안치하려고 한 최초의 파라오는

합세수트 여왕의 아버지 투트모스 1세였다고 하지요.

 

투트모스 1세는 지난 1700년간 전통으로 내려온 피라미드가 도굴범들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도굴 당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도굴범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고립된 계곡의 바위산에

땅굴 같은 통로를 만들어 그곳에 무덤을 만들고

입구를 아무도 알지 못하게 봉한 것입니다.

 

 

 

 

 

투트모세 4세 무덤의 벽 장식으로

하토르, 오시리스, 아누비스가 왕에게 생명을 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회반죽에 채색을 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람세스 6세의 무덤 천정화

 

 

 

 

람세스 4세의 벽화

 

 

 

 

람세스 9세의 묘의 현실

 

 

 

 

세티 2세 무덤의 벽화

 

투트모스 1세의 바램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신왕국 시대 파라오의 무덤은 조직적인 도굴범들에 의해 파헤져졌으며

심한 경우는 파라오가 묻힌 직후부터 파헤쳐지기도 하였답니다.

 

 

 

 

세티2세의 무덤벽화

 

60개의 묘 중에서 공개되고 있는 것은

투트모스 3세, 투탕카멘의 묘소, 세티 2세, 메렌프타, 람세스 1세, 4세, 9세의 묘 등 인데

사정에 따라 공개를 하기도 하고, 아니하기도 하고^^

 

 

 

 

왕가의 계곡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투탕카멘의 묘소

 

발굴 당시의 모습이라고 하는군요.

 

 

 

 

왕가의 계곡에서 유일하게 약탈당하지 않은 무덤

화려한 부장품들과 함께 1922년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굴 된 곳이지요.

 

몇년 밖에 살지 못한 소년 왕의 무덤 속 부장품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2층을 다 채웠었지요.

 

도굴 당하지 않았다면, 다른 왕들의 무덤 속 부장품은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할 수 없다고 하지요.

 

투탕카멘의 무덤은 또한 투탕카멘 무덤의 저주란 이름으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곳입니다.

 

무덤을 발굴하고 오래되지 않아

이집트학 학자인 하워드 카터와 함께 무덤에 들어간 카나번 경이 모기에 물려 사망했고,

저주를 조사하던 플레처 로빈슨이라는 기자가 비명횡사했으며,

고대 유물 수집가였던 조지 제이 굴드는 카터에게 무덤을 보여 달라고 설득한 지

24시간 만에 급사하는 등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했다고 하지요.

 

 

 

 

이곳 사막지대는 내리쬐는 햇빛을 피할 곳이 전혀 없습니다.

모두들 스카프를 두르고, 모자를 씌고..

 

 

 

 

왕가의 계곡을 뒤로 하고 나가는 길..

 

부활을 꿈꾸었던 파라오들..

그들의 바램은 과연 이루어졌을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