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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여행(Egypt)

댐 건설로 인해 잃어버린 낙원, 아스완 하이댐- 이집트33

 

 

 

예부터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범람을 축복이라고 생각하였다지요.

매년 6월말 상류에 내린 엄청난 비 때문에 정기적으로 범람하였던 나일강..

상류에서 쓸려온 유기질이 풍부한 검붉은 흙..

그 흙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나일강이 이제는 더 이상 범람하지 않고 있지요.

이유는 바로 이곳~

아스완 하이댐이 건설되면서 이집트는 나일강의 범람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 잃어버린 낙원이 되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 해보도록 합니다. (2011년 1월 21일)

 

 

 

 

댐 위를 가로지르는 도로입니다.

 

 

 

 

아스완 하이댐은 아스완 시내에서 남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댐 근처에 다다르자 여기저기 송신탑들이 보입니다.

 

 

 

 

별 모양을 하고 있는 송신탑이 신기하여 카메라 안으로 모셔옵니다.

 

 

 

 

아스완 하이댐 입구의 표지석..

심플함으로 시선을 붙드는데 성공한 듯 보입니다. ㅎ

 

 

 

 

발전소 시설이 먼저 눈에 띄는군요.

 

 

 

 

이곳 하이댐도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는 곳입니다.

이집트 돈으로 20파운드..

 

 

 

 

댐을 지나 흐르는 물이 먼저 보이는군요.

나일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고 합니다.

 

멤피스에서 아스완 근처 1폭포까지의 나일강 유역의 남부 이집트를 상류 쪽에 있다는 뜻에서 상 이집트라고 하고

북쪽의 멤피스에서 삼각주에 이르는 지역은 하 이집트라고 하였답니다.

즉 나일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고 합니다.

 

 

 

 

"우리는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우리는 사드 엘 알리(댐)을 건설할 것이다"

나세르 대통령이 소련의 재정 지원으로 아스완 댐 건설을 시작하며 한 말이라고 합니다.

 

아스완 댐 건설을 알리는 첫 번째 화약을 폭발시킨 것은 1960년이었다고 하지요.

 

 

 

 

아스완 하이댐을 알리는 표지석

 

 

 

 

매년 6월말이면 상류에 내린 엄청난 양의 비 때문에 정기적으로 범람하였던 나일강은

상류에서 유기질이 풍부한 검붉은 흙 케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범람이 끝난 후 케미는 그대로 침전되어 농사짓기에 적합한 퇴적층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즉 케미가 가라앉은 농토는 매우 비옥하여 특별히 거름을 주지 않더라도 농작물이 잘 자라주었을 뿐 아니라

작물을 수확할 때까지 적당한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물을 주지 않아도 항상 풍년을 가져다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나라 이름을 나일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를 일컫는 말인 케메트(검은색)이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이집트란 이름은 그리스어에서 온 이름으로

최근에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매년 범람으로 이집트에게 많은 것을 주었던 나일강이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도시가 커지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게 되면서

나일강의 범람은 걱정거리가 되게 됩니다.

 

 

 

 

그래서 이집트를 위임통치한 영국은 1889년부터 강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댐을 쌓기 시작합니다.

1901년 그렇게 만들어진 댐이 아스완댐입니다.

아스완댐은 후대의 하이 댐과 구분해 로우 댐이라고 불리웁니다.

아스완댐 사진은 맨 아래쪽에 올려두었답니다.

 

 

 

 

인구는 계속 늘었고, 물을 더 많이 더 안전하게 쓸 방법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52년 혁명을 일으켜 이집트 공화국을 출범시킨 가말 압둘 나세르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아스완에 더 크고 더 높은 댐을 쌓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나세르와 사이가 좋았던 미국, 영국이 돈을 댔다고 하지요.

 

하지만 나세르가 아랍사회주의를 내세워 아랍권을 규합하려 하자 두 나라는 원조를 끊고 등을 돌렸답니다.

나세르는 60년 소련의 도움을 받아 다시 건설을 시작하였답니다.

 

 

 

 

아스완 하이댐의 기념탑이 멀리 보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상징이었던 연꽃을 형상화 한 것이랍니다.

기념탑에는 소련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아랍어와 러시아어가 나란히 쓰여 있다고 합니다.

 

 

 

 

아스완 하이댐은 이집트 전력의 30%를 공급하며

요르단까지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1970년 7월 21일 마침내 아스완 하이댐이 완공되었습니다.

높이 11m, 길이 3830m,  공사비는 10억 달러

 

 

 

 

 

 

 

 

 

 

 

댐이 완공되어 생겨난 드넓은 호수에는 '나세르호'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거대한 인공호수가 생겨난 것입니다.

 

 

 

 

둑 길이 3.6km

 

 

 

 

댐 한쪽에는 선착장도 자리하고 있으며..

 

 

 

 

건너편에는 신전도 보입니다.

 

저 신전도 유네스코에서 위쪽으로 옮겨온 24개의 신전 중의 하나는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나일강은 청나일과 백나일이 합쳐지며

수단 카르튬 지역에서 만납니다.

 

수단, 에디오피아 지역은 유속이 매우 빠르며

폭포들을 지나며 유속이 약해지고, 이집트에 다다를 때쯤에는 매우 약한 유속을 지니게 되었다고 하지요.

 

아래에서 위로 흐르던 나일강이 나세르 호수에 갇히고

그 아래 아스완 하이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스완 하이댐의 구조와 전력 생산에 관한 안내도가 되어 있네요.

 

터번의 최대 파워 175,000 K.W

댐 저장 공간 6,000km

 

 

 

 

아스완 하이댐의 관광 경찰과 검색대

 

저장된 물을 이용해 연간 이모작의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관개 농지에서 흔히 나타나는 흙의 염화현상과 토양 침식이 심해지고

토양에 공급되는 것들은 오폐수들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나일강 하구는 이제 세계에서 비료를 가장 많이 써야 하는 지역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인류의 유산들은 그대로 물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댐 건설로 9만명의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터전을 옮겨야 했으며

나일강의 수량의 변화를 가져와 기후와 환경을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는 식물들, 수련 로투스와 파피루스를 사라지게 했으며

나일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따오기, 하마, 악어 같은 동물들도 강가를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나일강의 범람을 받지 않게 된 지 40여년..

나일강 주변의 풍요로운 낙원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스완 하이댐에서 아스완으로 향하는 길..

 

이집트의 상징 중의 하나인 오벨리스크를 광장 중심에 세워 두었네요.

아주 밋밋한.. 오벨리스크..

 

 

 

 

하이댐 근처의 전력회사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는 여행자입니다.

 

 

 

 

영국이 세웠다는 아스완 댐을 가로질러 아스완으로 향합니다.

 

 

 

 

이곳도 넓은 호수처럼 보이는군요.

 

 

 

 

 

 

 

 

 

 

 

이곳도 발전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댐은 강으로 이어지고..

 

 

 

 

 

 

 

 

 

 

 

고대 이집트를 있게 하였던 나일강..

현대 사람들에게도 생명줄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득보다는 실이 많은 듯한 것을 보는 일은

언제나 씁씁한 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