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전라남도 담양을 이야기할 때, 한국 정자문화의 산실이라고 하지요.
담양 땅에는 많은 가사문학을 배출한 정자문화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지요.
담양의 소쇄원, 면앙정, 환벽당, 취가정, 식영정, 송강정, 명옥헌 등등 많은 정자들을 둘러보는 일은 언제나 기대감을 갖게 하지요.
눈을 찾아 떠나는 남도 여행..
아름다운 남도의 정자, 물염정, 환벽당, 취가정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먼저 물염정을 소개하도록 하지요. (2011년 1월 6일)
물염정이 자리한 곳은 정확히는 전남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화순의 정자라고 하여야 하지만, 담양의 고서와 화순의 이서의 경계에 서 있는 물염정을 저는 심정적으로 담양의 정자에 넣어 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경남의 끝자락에는 겨울에도 눈을 보기 힘든 곳이지요.
이번 겨울에도 딱~ 한번.. 한낮의 잠깐 내리던 눈이 전부인 곳이니..
눈을 찾아 길을 나서봅니다.
많은 눈이 내리는 남도의 서해안.. 으로 향합니다.
물염정을 향해 가는 길..
추수를 끝내고 황량하였을 논밭 위로 눈이 솜이불처럼 쌓이고..
낙엽이 다 지고,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는 이제는 조금은 덜 외로워 보입니다.
눈이 없는 동네에서 눈이 가득한 동네로 오니, 차가 문제이군요.
꽁꽁 얼어붙은 길들이 군데군데..
한숨이 절로 나오는 물염정을 찾아 가는 길..
중간에는 도로 위에서 차가 쭉~ 미끄러져 반대 차선으로 그냥 넘어가 버리더군요.
십년감수^^
반대편에 차가 없기에 다행이라 생각하고..
5일간의 남도 여행 끝에는 눈길도 저속 기어를 넣고 슬슬 기어가는 노하우가 생기기도 하였었지요. ㅎㅎ
물염정 입구에 차를 세우고 약간 경사진 길을 걸어 오릅니다.
원래는 보이는 이곳이 물염정의 주차장인 듯 합니다.
밟으면 제 무게만큼 꺼지며 생기는 눈 발자국..
물염정의 모습보다 눈에 먼저 환호하는 여행자입니다. ㅎㅎ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어보니, 저만큼에 자리한 물염정..
물염정은 중종, 명종 대에 성균관 전적 및 구례, 풍기 군수를 지낸 물염 송정순(1521-1584)이 건립한 정자입니다.
청렴결백하고 후덕한 정치가로 이름이 높았던 송정순은 권력에 염증을 느끼고
'세상 어떤 티끌에도 물들지 않고, 속되지 않게 살겠다'고 선언하고는 고향에 돌아와 세운 정자입니다.
후에 외손 금성나씨 나무송, 나무춘 형제에게 물려 주었고, 그후 수차례 증수를 거친 곳입니다.
물염정이 있는 주변 경관은 빼어난 산수를 자랑하는 적벽이 있는 지역으로
당대의 명사들인 김인후, 권필, 이택당, 김농암, 김창흡, 이식 등이 자주 올라 시를 지어 읊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물염정 내부에는 물염정과 물염적벽을 노래한 시 23기가 걸려 있습니다.
눈길을 끄는 물염정의 기둥..
다른 기둥과 달리 살아있는 나무의 굴곡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울퉁불퉁한 모습의 기둥..
1966년에 물염정을 중수할 때, 마을 사람들이 물염정의 풍류를 살리기 위해 마을에서 가장 멋지게 자라던 배롱나무를 베어 내 세운 것이랍니다.
건축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 세워진 기둥이랍니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붉은 칠을 하지 않고, 나무 그대로의 결들을 볼 수 있게 놔두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 봅니다.
물염정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
굽이굽이 도는 강물은 겨울 바람에 꽁꽁 얼어 붙고..
반대편을 바라보면, 강 건너 적벽이 벚나무 사이로 보입니다.
눈 쌓인 기와지붕에 눈 맞춤을 하고..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포근해 보이는 기와~
광주전남 8대 정자로 지정되었다는 안내판도 보입니다.
이곳 화순 물염정이 1호 정자이고, 담양의 식영정, 완도 세연정, 광주 호가정, 곡성 함허정, 나주 영모정, 영암 회사정, 장흥 부춘정이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담양의 식영정 말고는 가본 곳이 없네요.
주변 경치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 http://blog.daum.net/sunny38/11775004
제 다른 글이니 궁금하시면 눌러 보셔요~
기회가 되면, 찬찬히 둘러보고 싶어집니다.
물염정 주변에는 이백살이 넘은 벚나무가 네 그루 있어, 봄이 되면, 그 화사함을 한껏 뽐내는 곳이라고 하지요.
그 벚나무들.. 이 겨울 눈을 이고.. 서 있습니다.
눈 사이로 빛나는 푸르른 이끼들..
물염정을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
바로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난고 김병연이 이곳의 경관에 반해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는 이야기이지요.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머리가 좋고 글재주가 뛰어났던 김병연..
그는 향시에 나가 '홍경래의 난 때 농민군에 붙잡혀 목숨을 구걸한 선천 부사 김익순의 죄를 탄하라'는 향시의 시제에
'한 번 죽어서는 그의 죄가 가벼우니 만 번 죽어 마땅하다'고 거침없이 써내려간 글로 장원 급제를 하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김익순이 그의 친 할아버지였는데, 집안에서 숨겼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선조를 욕보인 그는 그 죄를 씻을 길이 없다하여, 집도 처자도 버리고 머나먼 방랑길에 오르게 되지요.
타고난 글재주가 좋아 가는 곳마다 시문을 지어 숱한 예화를 남겼던 그..
평생 삿갓으로 해를 가리고, 죽장에 의지한 채 전국 곳곳을 방랑하였던 그..
그는 쉰일곱의 나이에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숨을 거두었지요.
그런 그가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는 물염정..
그 앞에는 그의 시비와 그의 동상이 남아 쓸쓸한 시인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저절로 가슴 아파
짚신에 대지팡이 천리 길을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 천지 집 삼았네
남의 탓도 못하고 하늘 원망도 못하니
세모에 서글픔만 가슴에 가득하네
- 난고평생시 중에서 -
김삿갓의 발치에는 반짝이는 눈 위에 지난 가을의 흔적이 쓸쓸함을 더해주고..
새벽에 군루에 올라
종일토록 돌아오지 못했네
저녁빛은 가을을 느끼게 하고
소슬바람 달빛을 보내오네.
김삿갓을 기리는 시비에 적힌 시 한편을 옮겨 적어 봅니다.
네다리 소나무 소반에 한그릇의 죽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
그렇다고 주인은 무안해하지를 말게 나는
청산이 거꾸로 물에 비치는 것을 사랑하니..
- 김삿갓의 시비 중에서-
물염정 앞의 적벽을 보러 가는 길에 돌아보니,
물염정도, 김삿갓도..
눈 속에 서 있는 풍경은 어쩐지 쓸쓸합니다.
물염정 앞의 물염적벽..
적벽은 이름 그대로 붉은 때깔의 절벽..
화순에서 적벽은 모두 네 군데라고 하지요.
노루목 적벽, 이서 적벽, 창랑적벽, 그리고 이곳 물염적벽..
노루목 적벽은 조선 10경에 들었을만큼 절경이었으나, 지금은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접근이 차단되어 있다고 하지요.
물염 적벽을 제대로 보려면, 가을에 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약초길에 붉은 소엽 우거지고
산창에 푸른 기운 가득하네
부렵구려 그대 꽃아래 취하여
꿈속에서 나비되어 나는것이..
-김삿갓 시비 중에서-
나무 위를 덮었던 눈이 햇살에 반짝이며 조금씩 녹고 있습니다.
초록의 빛깔이 이 겨울에 따스해 보입니다.
물염정을 뒤로 하고 나서는 길..
봄 벚꽃 가득 할 때, 다시 오리라는 아쉬움을 살짝~ 남겨 두고 돌아섭니다.
눈 덮힌 겨울 들판의 겨울 나무는 말없이 여행자를 배웅해줍니다.
김삿갓의 시비에 적힌 시로 마무리를 합니다.
하늘이 높으니 가잡을수 없고
꽃이 늙으니 나비 찾아오지 않네
국화나무 찬모래위에 피어
그림자 반쯤 땅에 드리웠네
강변정자를 가난한 선비 지나다가
크게 취하여 소나무 아래 업드렸네
달 기울고 산그림자 바뀌니
장사치들 돈 벌려 저자에 오네..
화순의 동복 구암 마을에 가면 김병연이 운명하신 집도 있고, 초분지도 있다고 하지요.
따스한 봄이 되면, 물염정, 구암마을, 초분지로 이어지는 여행길을 떠나볼 만 할 듯 합니다.
물염정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장성 JC - 고창- 담양간 고속도로 - 담양 JC - 창평ic - 좌회전한 뒤 - 고서 우체국에서 우회전 -
87번 지방도로를 따라 담양군 남면 소재지를 지나고, 이서면 사무소쪽으로 가다보면 물염정 이정표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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