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정자는 자연과 사람의 손이 만나 더 아름다워지는 곳인 듯 합니다.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어, 각자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평범한 풍광 속에 속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곳이지요.
물염정을 둘러보고 나서, 환벽당, 취가정으로 향합니다.
지난 여름에 꽃무릇 가득한 환벽당에 탄성을 지르다, 환벽당에서 50여m 떨어진 취가정을 못 보고 돌아섰었지요.
그래서 환벽당을 지나, 취가정을 먼저 둘러보기로 합니다. (2010년 1월 6일)
겨우내 눈을 이고 서 있을 취가정의 모습..
취가정은 환벽당에서 약 50여m..
눈 쌓인 오솔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곳..
다른 계절에 왔더라면, 차로 그냥 지나쳤을 거리를 이렇게 걸어갈 수 있으니 좋습니다.
취가정은 입구에 문도 없이, 길에서 돌계단으로 이어지고..
자그마한 언덕 위에, 그 돌계단의 끝에 정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취가정은 엄밀히 말하면, 담양의 정자가 아닙니다.
취가정과 환벽당은 광주시 충효동에 속해 있는 정자입니다.
마주보이는 가사문학관은 담양군 남면에 속해 있으며, 가사 문학관에서 다리 하나 건너오는 이곳은 행정구역상 광주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 속으로는 담양의 정자라고 우겨봅니다. ㅎ
또한 취가정은 엄밀히 말하면, 가사문학과 관련된 정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아예 무관하지도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인데,
김덕령 장군은 인근 환벽당에서 송강 정철 선생을 가르쳤던 김윤제 선생의 종손이기 때문입니다.
취가정의 소박한 굴뚝..
벽돌로 쌓아 놓은 작은 굴뚝이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취가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김덕령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고종 27(1889)년 김만식 등이 세웠는데,
1950년 6.25때 불타버린 것을 그 후손들이 1955년 다시 세웠습니다.
김덕령 장군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공을 세웠지만,
결국 모함을 받아 억울한 죽음을 맞은 인물이지요.
권필이라는 인물의 꿈에 김덕령 장군이 술에 취한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노래를 부르자, 권필이 시를 지어 원혼을 달랬다는 이야기입니다.
취가정의 열린 창문 밖으로는 사철 푸르른 소나무가 보입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충장공 김덕령이 송강 정철의 제자인 석주 권필(權鞸, 1569~1612)의 꿈속에 나타나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술에 취해 부르는 노래
듣는 이 아무도 없구나
꽃과 달에 취한들 무엇하리
공훈을 세운들 무엇하리
공훈을 세우는 것도 뜬구름이요
꽃과 달에 취하는 것도 뜬 구름이라
술에 취해 노래해도 내 마음 알아주는 이 없구나
다만 긴 칼 잡고 임금께 보은할 수 있기만을 원하노라
권필은 꿈에서 깨어난 뒤 너무도 서글퍼 다음의 노래를 불러 김덕령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장군께서 예전에 칼을 잡으셨으나
장한 뜻이 중도에 꺾이니
이 또한 운명이로고
지하에 계신 영령의 한없는 원한이여
분명 이 노래는 취시가로다
취가정, 이 정자의 이름은 권필의 꿈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충장공 김덕령이 읊은 취시가(醉時歌)에서 따온 것입니다.
쓸쓸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겨울 취가정은 더욱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는 바깥의 자연을 안으로 끌어 들이고 서 있습니다.
저 넓은 대청마루에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 올라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정자와 어딘지 모르게 잘 어울리는 듯한 취가정 현판
정자의 지붕을 올려다보니, 세모꼴의 지붕 아래에 벽돌을 쌓아 놓았습니다.
다른 곳들도 저러 했는지.. 혼자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취가정을 오랜시간 지켜왔을 아름드리 나무..
취가정 앞에서 바라보면, 앞쪽으로 작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무등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아름다운 시간...
임진왜란 때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김덕령 장군은 전국 의병 총사령관이 되어 크게 이름을 떨쳤었지요.
장군이 명성을 크게 떨치자, 이를 시기한 사람들이 1595년 이몽학의 반란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씌워서 선조에게 국문을 당하게 됩니다.
유성룡 등이 그의 무고함을 변명하였으나, 20여일 동안의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29세의 젊은 나이에 옥사합니다.
이것이 김덕령 장군이 권필의 꿈에 나타나 취시가를 부른 이유이겠지요.
65년간 김덕령 장군은 역적이었으나, 현종 대에 누명을 벗고 병조참의에, 숙종 때는 병조판서에 추증됩니다.
그리고 정조는 충장이란 시호를 내립니다.
현재 광주의 번화가인 충장로는 김덕령 장군의 시호를 빌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취가정 아래로 내려가, 들판쪽을 향해 갑니다.
길게 뻗은 가로수들..
누군가 만들어 놓았을 눈사람이 이 겨울..
추위속에 떨고 있습니다.
뒤를 보니,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한 취가정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함께 간 언니..
눈사람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하얀 개는 눈밭 위를 어슬렁대며 다닙니다.
환벽당으로 다시 나아가는 길..
해질녘 하늘은 붉은 빛을 띄어가고..
긴 담장을 두른 환벽당의 모습이 저만치에서 절 손짓하며 부르는 남도의 겨울...
그 겨울 위를 저는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취가정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장성 JC - 고창- 담양간 고속도로 - 담양 JC - 창평ic - 좌회전한 뒤 - 고서 우체국에서 우회전 -
87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소쇄원이나 가사문학관 이정표가 나옵니다. - 가사문학관 바로 앞에서 반대편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 하면 환벽당이 나옵니다.
환벽당에서 다시 50여m 를 들어가면 취가정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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