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상림숲을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상사화 가득할 때, 단풍이 그윽할 때, 가려고 했는데..
상림숲의 연밭에 연꽃이 가득하다길래, 일찍 나선 길입니다. (2010년 7월 26일)
상림 숲길의 모습..
산책하기 너무 좋은 길이지요.
이른 아침, 이제 막 해가 뜨고, 상림숲의 나무도 풀들도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입구의 작은 개울에는 잉어들이 살고 있구요.
입구에 머루터널이 있네요.
전에는 못보던 곳인데...
가까이 가보니, 머루란 녀석이 이렇게 생겼습니다.
포도와 비슷한 듯도 하고, 아닌 것도 같기도 하고..
중간에 사진 찍기 좋게 포토존이라고 해서 설치해놓은 조형물
뒤로는 연꽃밭이 펼쳐져 있네요.
상림을 길게 놓고 봤을 때, 왼쪽에는 상림숲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는 길게 연꽃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먼저 왼편의 상림숲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사랑 나무 연리목이 있습니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목이라 하고
가지가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지라고 하지요.
연리목과 연리지는 부부간의 금슬이나 남녀간의 애정이 깊음을 비유하지요.
이 연리목은 수종이 서로 다른 느티나무와 개서어 나무의 몸통 전체가 결합되어 있어 상서로운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년의 숲 상림에서의 약속은 천년약속입니다> 인상적인 말이지요?
작년 내 발자취가 저 멧부리 더렵혔거니
망악루(함화루의 옛이름)에 올라서 다시 보니 무안하구나
산신령도 (내가) 다시 더럽힐까 두려워하여
흰구름시켜 곧 문을 굳게 닫는구나
영남의 대 유학자 김종직이 망악루를 주제로 남긴 시라고 합니다.
상림 숲 안에는 누각, 함화루..
원래 이 누각은 조선 시대 함양 읍성의 남문이었다고 합니다.
일제 시대에 도시계획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철거하려고 하자 1932년 함양고적 보존회의 대표 노덕영 선생이 사재를 들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본래의 명칭은 남문에서 지리산이 보이기 때문에 망악루라고 하였는데, 옮기면서 이름도 함화루로 고친것이랍니다.
원래 성의 문루였던 것을 전혀 다른 장소로 이전하였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누각의 아랫부분이 윗부분보다 높아 문루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에 별다른 장식을 사용하지 않은 소박한 누각입니다.
상림은 한창 축제중~
작년 여름에 왔을 때도 뭔가 축제중이어서, 입구에 차를 주차하기도 힘들더니..
이날은 다행이 평일 아침이라 아침 운동하시는 분들만 보이시더군요.
축제 중의 상림은 고즈넉한 맛이 떨어진..
어쩐지 산만한 모습입니다.
인삼축제중이라..
심마니 움막을 재현해 놓았네요.
심마니들의 기도처
상림숲과 연꽃 밭의 경계에 세워진 정자
위에 오르면 연꽃밭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아침 숲길을 걷습니다.
이 숲은 지금으로부터 약 1,100년 전 신라 진성여왕(887-897) 때 당시 함양태수를 지내던 최치원 선생이 호안림으로 조성한 인공림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고 있어서 해마다 홍수로 인한 피해가 컸다고 하네요.
그것을 막기위한 방책으로 이곳에 둑을 쌓아 강물을 돌리고 둑 위에 나무를 심어 가꾸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숲을 대관림이라 이름 짓고 잘 보호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중간이 파괴되어
지금과 같이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졌으며 현제는 면적 188,358제곱미터, 100여종, 20,000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이지요.
이은리 석불
상림을 몇 번이나 왔는데, 석불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상하지요?
최근에 옮긴 걸까요?
이 석불은 1950년 무렵, 함양읍 이은리 냇가에서 출토되어 현재 위치로 옮겨 놓은 거랍니다.
아마 홍수 때 사찰이 유실되면서 물에 쓸려 내려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답니다.
출토 지역으로부터 약 300m지점에 망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이 절의 유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광배와 받침대를 모두 갖추고 있는 이 불상은 두 손이 떨어져 나가고 없으며, 훼손된 가슴 아래 부분은 시멘트로 복원하였습니다.
머리는 민머리이며 상투 모양은 단정한 편입니다.
얼굴 표정은 소박하며 두 귀는 길고, 목에는 세 겹의 주름이 선명합니다.
양쪽 어깨에 걸친 옷 주름은 V 자형으로 두텁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타원형의 광배는 이중의 원형선을 두른 두광과 신광으로 이루어졌고, 머리 부분에는 연꽃무늬를 돋을새김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조각 기법으로 보아 고려 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연리목이 여기에도 또 있네요.
상림에는 연리목이 많은 듯합니다.
또 다른 정자, 사운(?)정..
정자 앞에는 소원을 적어 걸어 놓는 곳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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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어 한컷~
정자 옆으로는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치원이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숲을 만든 공적을 기려 세운 비석.
최치원은 자(字)는 고운 또는 해운으로 당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고 중국에서 문명을 떨쳤다고 하지요.
신라로 돌아온 뒤 당시 국정의 문란함에 실망하여 대산, 천령, 부산 등의 태수를 지내다가
마지막에는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다가 종적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시호는 문창..
이 비석은 1923년 문중에서 세운 것이랍니다.
상림은 울창한 숲과 함께, 작은 물줄기들을 곳곳에 안고 있습니다.
커다란 나무의 푸르름과 작은 개울이 어우러진 곳을 징검다리로 건너봅니다.
큰 나무 아래는 햇볕이 잘 들지 않아, 버섯도 많고 이끼들도 많이 보입니다.
친구는 이 이끼에서 고슴도치가 떠오른다는데, 무엇이 떠오르세요?
역사 인물 공원이란 이정표를 따라가 보니,
열녀학생임술증처유인밀양박씨지려 라고 적힌 비가 있습니다.
아전 임술증의 아내 밀양 박씨의 열을 기려 세운 정려비라고 합니다.
박지원이 쓴 열녀함양박씨전의 실제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 비문은 일두 정여창의 7대손인 청하현감 정덕제가 짓고 썼다고 합니다.
1797년에 처음 세웠고, 200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하네요.
옛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리고 있지요.
그만큼 함양은 영남의 대표 선비고장이라고 할만하지요.
최치원, 조승숙, 김종직, 양관, 유호인, 정여창, 노진, 강익, 박지원, 이병헌, 문태서 등 열한 분의 흉상이 조각된 공원입니다.
익숙한 이름도 있고, 낯선 이름도 있고...
흉상 뒤 쪽에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구요.
함양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제가 좋아라하는 숲길로 걸어 갑니다.
이른 아침 운동하는 사람 중에서 함양 사시는 아는 분을 만나기도 하구요.
바깥에서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일이 거의 없는데, 뜻밖이네요.
아침부터 기분 급 좋아집니다. ~
상림의 거의 끝자락에 물레방아가 있습니다.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중국을 다녀와 국내에 물레방아를 처음 소개하였다고 합니다.
물레방아가 아주 오래된 우리의 것 아니었나요?
연암은 1792년 함양군 안의 현감으로 부임하여 용추계곡 입구의 안심마을에 국내 최초의 물레방아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상림 숲길을 걸었으니, 이제 연꽃을 보며 걸어 나가기로 합니다.
길게 펼쳐진 연꽃밭
연꽃밭은 상림숲과 어우러져 더욱 풍성해집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연꽃이 활짝 피지 않았다는...
경기도의 관곡지나 세미원은 올해 연꽃이 활짝 만개하여 화사하더니,
이곳 연꽃은 조금씩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고 있다합니다.
지나가는 분들이 말씀하시기를..
어떤 분은 연꽃이 이미 졌다고 하고, 어떤 이는 아직 피지 않았다고 하고..
비가 많이 온 탓일까요?
상림 입구 쪽으로 가면 연못에 다양한 연꽃을 볼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그 뒤로 홍련지도 있구요.
참고로 상림 옆의 연꽃은 대부분 백련입니다.
천년의 숲..
그 울림이 참 좋습니다.
그 숲길을 걷는 일도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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