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을 갈 때면 늘 느끼는 것이, 도심 속의 자그마한 궁궐...
창덕궁처럼 넓게 느껴지지도 않고, 아담한 공간이 주변의 빌딩의 숲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어떤 위안을 주는 곳입니다.
덕수궁 사진은 두 번째이지요. 지난 번에 빠졌던 몇 곳을 올려봅니다.
정관헌- 함녕전 뒤뜰 동산에 자리한 1900년에 지은 최초의 조선과 서양의 절충식 궁궐건물입니다.
고종이 이곳에서 다과를 들며 쉬거나 외교관의 연회장소로 이용되던 곳이라고 합니다.
정관헌 내부의 모습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조석 기둥들이 줄지어서 내부를 감싸고 있으며, 동남서 세방향에 베란다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이 한국과 서양식이 절충된 이국적 건물안에서 고종은 커피를 마시며 외교사절들과 연회를 하였다고 하네요.
정관헌에는 청룡, 황룡, 박쥐, 꽃병 등의 한국적인 문양을 볼 수 있습니다.
석어당.
임금들이 임진왜란의 상황을 상기하는 선조임금의 추모처이자 인목대비 유폐처.
1904년에 불타 그 해 다시 지은 중층집. 단청을 하지 않은 것이 특징인 곳입니다.
우리 궁궐에 가보면, 마루의 문을 이렇게 올려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지요.
여름에 앞 뒤로 열어두어 통풍을 생각한 지혜가 돋보입니다.
즉조당과 준명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옆으로 석조전의 모습도 보이구요.
왼쪽의 건물이 즉조당입니다. 광해군과 인조의 즉위처이자 임금의 집무처로 1904년 불타 그 해 다시 지은 곳입니다.
뒤에는 고종의 후비이자 의민황태자 영왕의 모친 엄비의 침전. 현판 즉조당은 고종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합니다.
오른 쪽의 준명당은 신하와 사신 접견처로 다락집 복도(운각)로 즉조당과 연결, 역시 1904년 불타 그해 다시 지었으며, 뒤에는 고종, 순종 어진 봉안처 및 덕혜옹주 유치원으로 씌였다고 합니다.
석조전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집무실 및 접견실로 1900-1910년 지어진 서양 신고전주의 양식의 3층 돌집.
광복후 미소공동위원회장,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을 거쳐 1992-2004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지난 15일에는 이곳 상부에 일장기가 그려져 있던 사진이 공개되어 논란이 되었던 곳이지요.
석조전의 건축은 한국 정부의 재정고문으로 있다가 러시아의 압력으로 물러난 후 다시 복직한 바 있는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설계는 영국인 기사인 하딩에게 맡겨졌고, 내부소속의 건축 기사 심의석(沈宜錫)이 전체적인 공사를 감독하였습니다. 1904년 이후로는 영국인 데이비슨이 심의석을 대신하여 공사감독을 맡았구요. 당시 건립된 양식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큰 석조건물이었으며 완벽한 좌우대칭으로 우아함을 자랑하는 석조전은 고전주의 양식을 채택, 상부를 떠받치고 있는 섬세한 이오니아식 기둥은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석조전 2층에 올라가서 바라본 덕수궁의 모습
담장에 낙엽이 쌓이며, 겨울이 깊어만 갑니다.
덕수궁 미술관
중화전
즉위식과 조회를 비롯한 주 행사를 치르는 덕수궁의 정전. 본래 중층이었으나 1904년 불타 새로 1906년에 단층으로 지은 곳입니다.
함녕전
덕수궁 동쪽에 자리한 고종의 생활처인 침전이자 승하처(1919.1)
함녕전 건너편 벽면에 마지막 황실. 대한제국과 덕수궁 특별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 시절의 기록들이 사진으로 남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918년 1월 21일 촬영. 황실 가족 사진
좌로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 순정효왕후, 덕혜옹주를 담고 있는 이사진은 영친왕의 일시귀국을 기념하는 가족사진이라고 합니다.
고종황제의 장례식 사진들이 이어집니다.
성복제 치르는 내곡반
재궁을 현궁에 봉안하기 위해 대여가 홍릉을 오르고 있다.
함녕전 앞쪽에 세종대왕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한문
현재 덕수궁의 정문으로 원래는 대안문이었는데, 1906년 대한문으로 고침. 현판은 한성판윤 남정철의 글씨라고 합니다.
수문장 교대식의 뒷모습을 보게 됐네요.
교대식이 끝나고 퇴장하는 모습입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네요.
수문장 교대식이 끝난 후 대한문 앞.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다니고, 일상이 다시 자리합니다.
덕수궁은 저녁 9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네요.
늦은 시간까지 관람이 되는 줄은 처음 알게되었지요.
이곳은 임진왜란 때 모든 궁궐이 불타
1593년 선조는 성종의 형 월산대군 댁이었던 여기를 행궁으로 사용하였지요.
1608년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를 하면서
1611년 경운궁이라 이름하며 정식 왕궁이 된 곳입니다.
1615년 광해군이 정궁을 창덕궁으로 옮겨 별궁이 되었고
1623년 반정으로 광혜군이 폐위되고
이곳 즉조당에서 인조가 즉위합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옮겨와 다시 정궁이 됩니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 황궁이 됨.
1907년 양위받은 순종이 창덕궁을 정궁으로 삼아,
고종상왕이 머무는 덕수궁으로 이름 바꿔 오늘이 이르렀다고 합니다.
1919년 고종,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
지난 시간의 이야기가 있는 고궁...
긴 이야기를 듣고 돌아서 오는 길.
서울은 여전히 바쁘고 환한 불빛아래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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