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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물과 국보가 가득한 속리산 법주사 그리고 정이품송

 

 속리산 등산 전에 둘러본 법주사 사진을 나중에 올리게 됐네요. 속리산을 향해 가다보면 맨 처음 만날 수 있는 것이 정이품송이지요.

천연기념물 103호로 나이가 약 8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오래된 소나무라고 합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는 세조(1455-1468)가 속리산에 행차할 때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이 나무 가지에 걸리어 지나가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소나무 가지에 연 걸린다"하고 말하자 밑가지가 저절로 들려 그 밑을 통과하게 되어 이를 신기하게 여긴 왕이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소나무는 <연걸이 소나무> 또는 <정이품송>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법주사를 향해 걸어갑니다. 조각 공원이 있네요.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 나올 것 같은 깡통 로봇들이 보입니다. ㅎ

 법주사 일주문

독특하게 호서제일가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계곡에는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낙엽이 떨어져 물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속리산에는 국보 3점, 보물 6점, 천연기념물 1점, 도지정 문화재 13점 등 문화재가 많은 곳이지요. 법주사를 들어서면서부터 만나게 되는 보물과 국보들을 소개해보기로 하지요.

속리산사실기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67호로 속리산의 내역을 기록한 것으로 현종 7년에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써서 법주사 입구에 세운 것이랍니다.

내용은 속리산이 명산임과, 세조가 이곳에 행차한 사실 등을 적고 있다 합니다. 특히 수정봉 마루에 있는 거북 바위에 대해서는 머리를 서쪽으로 두고 있는데 중국인들이 중국의 재물이 우리나라로 들어온다고 하여 그 머리를 자르고 거북의 등에 10층의 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것을 효종 4년(16530에 옥천 군수 이두양이 다시 머리를 잇게 하였는데 그 후 충청병마절도사 민진익이 관찰사 임의백에 일러 탑을 헐어버렸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법주사 벽암 대사비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 71호로 조선 현종 5년(1664)에 건립된 벽암대사의 비로 높이 213cm, 폭 110cm, 두께 35cm 라고 합니다.

이 비는 자연석 암반 위에 홈을 파서 세운 것으로 법주사 정문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벽암대사(1575-1660)는 보은 출신의 고승으로 인조 2년에 법주사를 중창하였고, 남한산성을 쌓을 때 팔도도총섭으로 승려를 동원하여 축성작업을 감독하였다고 합니다. 병자호란 때에는 남도에서 승병 수 천명을 모집 북진하다가 전쟁이 끝난 것을 알고 승병을 해산하였고, 입산수도 하다가 �종원년(1660)에 화엄사에서 입적하였다고 합니다.

 금강문을 들어서면 법주사 경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천왕문을 향해 가는 길 - 커다랗고 잘 생긴 나무 두 그루가 그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려보면 당간지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당간지주를 두 번쯤 본 적이 있는 듯 합니다. 한 번은 서산의 폐사지에서였고, 칠장산의 칠장사에서 였지요. 참 부석사 입구에서도 본 적이 있네요. 그 때는 당간지주가 절 밖에 있었는데 법주사는 당간지주가 경내에 서 있습니다.

당간이란 달리 찰 또는 찰주(刹柱)라고 불리고 일반적으로 절을 사찰이라 말함을 절에 당간 즉 찰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 위에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당간이란 솟대와 같은 기능를 갖게 되어 신성 구역임을 표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합니다. 현재 법주사 당간지주는 고려 목종 7년(1006년)에 조성된 것으로서 조성 당시의 높이는 전체 약 16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 고종 3년에 국가재정마련을 위한 당백전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이 수거되어 당시 이곳의 철당간 역시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곧이어 순종(1910년경) 당시 철당간이 22m의 높이로 복원되었으며 다시 1972년에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법주사 마애여래의상  - 높이가 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볼록과 오목으로 새겨진 조각들이 있습니다.

 

 법주사 마래여래의상 보물 제 216호

큼직한 바위에 볼록 새겨진 이 여래좌상은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의상으로 옆에 조각된 지장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상으로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이라고 합니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 길고 큼직한 코, 둥근 눈썹, 뚜렷한 눈두덩, 꽉 다문 두꺼운 입술 등은 길다란 귀, 삼도의 표현 등과 함께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적인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절집 담장에 담쟁이 덩쿨에도 붉게 가을이 찾아와 있습니다.

 석연지 국보 제 64호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 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 무늬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연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전체적인 조형 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며 특히 동지주의 형태는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의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연꽃은 더러운 흙탕물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듯이 우리의 현실은 서로가 시기하고 모함하는 연못의 흙탕물과 같은 세상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착하게 생활하면 내세에는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적인 교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법주사 팔상전 - 국보 제 53호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그후 임진왜란 때 불타버러 조선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어졌고 최근(1968)에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합니다. 이 팔상전은 법주사의 5층 목조탑 건축으로 1984년 4월 30일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화재로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내부 기둥과 기둥 사이 4면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3장면의 그림으로 묘사한 팔상도가 모셔져 있으므로 이 5층 목탑을 팔상전이라고 부르게 된 듯 하다합니다.

전체 높이 22.7M 로서 현존하는 한국의 탑 중에 제일 높은 것이라고 합니다.

 법주사 금동미륵 대불

10여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 금동미륵이 아니라 청동 미륵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금동미륵이 되어 있습니다. 크기는 앞쪽의 사람과 비교해보시면 짐작하실 듯 합니다. 원래 신라 혜공왕 12년(776년)에 진표율사가 조성한 것인데 조선 고종때 당백전을 주조하기 위해 불상을 몰수해 갔다고 합니다. 그후에 시멘트미륵으로 만들었다가 1990년 청동미륵을 다시 조성했다고 합니다. 200년에 청동녹을 벗겨내고 개금불사를 시작하여 2002년에 본래의 금동미륵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개금방법은 습식전기도금공법으로 순금 3미크론 두께로 연도 금면적 900제곱미터에 황금 80kg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법주사 쌍사자 석등 - 국보 5호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 (720)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등은 부처의 자비로 명랑한 생활을 하며 여러가지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하여 창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석조 유물에 사자를 조각한 것은 삼국시대 이래 많은 예를 볼 수 있으나 현존하는 석탑, 석등에 조각된 사자상 중 법주사 쌍사자석등이 가장 뛰어난 솜씨를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석등에 비해 불을 켜는 화사석과 그 위를 덮는 지붕돌이 큰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대웅전을 오르다 돌아본 법주사 경내

넉넉한 마당에 미륵대불, 석등, 팔상전이 안겨 있습니다.

 법주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 915호, 그리고 대웅보전 앞의 사천왕석등은 보물 제 15호라고 합니다.

석등은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혜공왕 때 법주사를 다시 고쳐 지을 때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화사석(불을 켜놓은 부분)은 8각으로 4면에 창을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였고 지붕돌 정상에는 보주를 받치고 있는 받침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사천왕이란 불교에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뜻한다고 합니다.

 

대웅보전은 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 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축물입니다.

내부에는 앉은 키가 5.5m, 허리둘레 3.9m 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는 3신불이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중앙에 불상은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상이고, 좌측에 안치한 불상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 노사나불(아미타불)상이며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화신으로 나투신 석가모니불상이라고 합니다.

즉 법당의 가운데 부처님은 마음을, 왼쪽 부처님은 덕을, 오른쪽 부처님은 육신을 뜻한다고 합니다.

 법주사 뒷마당에도 붉게 물든 단풍이 곱게 자태를 뽑내고 있습니다.  

 법주사 철확 -보물 1413호

철확이란 무쇠로 만든 솥입니다. 신라 성덕왕 때 조성한 것으로 당시 법주사가 한창 번성하여 3000 승도가 운집하여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크기는 높이 120cm, 직경 270cm, 둘레가 1080cm, 두께는 10cm 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솥 중에서 가장 큰 솥이라고 합니다.

 

법주사의 보물, 국보 순례는 여기까지 입니다.

보은 여행도 여기까지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