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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중원 미륵리사지

 

 월악산을 가기 전에 중원 미륵리사지를 먼저 갑니다. 미륵리석불 입상의 모습입니다. 보물 제 96호라고 합니다.

 충주 월악산을 찾아가는 길..

월악 나루에 서 보았습니다. 아침 충주호는 고요히 하늘을 품고 있습니다. 나루터의 배들은 아직 출항 전입니다.

 월악 나루에서 바라보이는 월악산 영봉의 모습입니다.

 중원미륵리사지를 찾아가는 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갑니다. 월악의 중봉, 하봉의 모습이 보입니다.

 충주의 사과입니다. 가을을 환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붉고 탐스러운 사과에 저절로 눈이 갑니다.

이 절터는 동쪽으로 하늘재, 서쪽의 지릅재 사이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고, 삼국시대 이래 조선시대 이전까지 남북의 중요한 길목에 있어 불교 사찰의 역할 뿐 아니라 군사, 경제적으로도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는 곳입니다.

1970년대 말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미륵당> <미륵당초> <원주> <명창3년 대원사 주지 승 원명>이라 적힌 기와들이 발견 된 점으로 미루어 절이름은 미륵대원으로 미륵 대원터는 본존불, 석등, 오층석탑이 일직선상에 놓인 배치로서 삼층석탑, 사각석등, 당간지주, 미완성 석불, 건물지, 돌거북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다른 절과 달리 특이하게 북쪽을 향해 절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 한 후 고구려 땅을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석굴사원을 조성하고 불상을 세워, 동생인 덕성공주가 송계계곡으로 남향한 암벽에 새긴 마애불(덕주사 마애불)과 마주보게 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미륵리 사지 귀부

사찰의 남북 종축선에서 약간 좌측에 위치하여 북향하고 있는 길이 605cm, 높이 180cm의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거북모양 비석 바침돌입니다.

귀부의 배면은 거북등의 껍데기 모양을 생략하였으며 좌측 어깨 부분에 작은 거북 두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형태를 양각하였고, �쪽의 발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형식화 되었습니다.

귀부의 등에는 비좌가 있으나 비신을 꽂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어서 실제 비가 존재했는지는 의문이며 수차례 발굴조사 결과 비신을 찾지 못했음을 볼 때 원래 석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미륵대원터에서 발굴 된 석조의 일부인 듯 합니다.

 

 미륵리5층 석탑 -보물 제 95호

높이 6m의 석탑으로 그 자리에 있던 바위로 받침돌과 1층 기단을 만든 후 몸돌을 올려놓았습니다. 바위 안쪽을 파내어 만든 기단 면석 한 면이 직각을 이루지 못하고 일그러져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일반적인 탑의 모습과 비교할 때, 지붕돌의 너비가 몸돌에 비해 아주 좁으며 각 부분의 조성기법이 형식적이고 각 층의 체감률도 고르지 못해 투박하고 둔중한 감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석불입상과 5층 석탑 사이에 있는 석등으로 균형이 잘 잡힌 석등입니다. 받짐돌은 4각형으로 윗부분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의 간주석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8각형의 돌기둥으로 상대석에는 양련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미륵리 석불 입상

미륵리 절터의 주존불로 특이하게 북쪽을 향해 서 있으며 본래 석굴식 법당을 이루고 있었으나 석굴의 목조 건축물이 불탄 후 석측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석불의 거대한 원통형 몸체, 소박한 조각 솜씨, 머리의 갓, 엉성한 옷주름 표현 등을 볼 때 고려초기 충청도 지방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온달장군 공기돌이 있었네요. 아는만큼 보인다고.. 놓친 부분입니다.

 미륵대원터

중원미륵리사지의 창건 후에 지리적 여건과 역원제도의 정비로 동쪽에 별도로 역의 기능을 담당하는 원을 세우고 미륵대원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미륵대원계립령동령야> 라 한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사찰과 원터의 기능이 같이 이루어진 고려초기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미륵 대원터의 사진과 실제 모습을 조금 다르네요.

 

함께 간 친구의 말로는 전에는 이곳에 절이 없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지금은 중원미륵리사지 바로 옆에 절집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날도 석불 입상 앞에 재를 올릴 준비를하고 있더군요.

투박한 석불과 어울리는 소박한 절집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