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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권

불심과 효심이 어우러진 용주사

 

 융,건릉을 들렀다면 근처의 용주사를 들러야겠지요. 정조대왕은 부친의 묘를 이곳 화산으로 옮겨온 후 7개월 만에 용주사를 건립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고 합니다. 대웅보전 낙성식 전날 밤 정조대왕이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라 하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용주사는 본래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갈양사로 창건된 곳이었는데, 병자호란 때 소실 되었다가 정조 때 다시 지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용주사의 사천왕문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높다란 소나무 사이의 길을 걸어 갑니다.

 용주사 홍살문 - 절집에 홍살문이 독특합니다.

원래 홍살문은 왕실의 능, 원, 묘, 궁전 관아 등의 정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붉은 칠을 한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연결한 보에 붉은 살을 쭉 박은 형태로 세워 경의를 표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문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찰과 달리 용주사에 홍살문이 있었던 이유는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을 건립하여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용주사에서는 사도세자와 경의황후(혜경궁 홍씨), 정조대왕과 효의황후의 위패를 모시고 일년에 여섯 번의 재를 모셔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1907년을 끝으로 일제 강점기 대 이후로 중단 되어 왔다고 합니다.

오른편에 자리한 효행박물관- 천일홍이 가득 피어 있습니다.

정조가 하사한 부모은중경을 비롯, 보물 1095호 봉림사 아미타불 복장 유물, 정조의 친필인 봉불기복게, 김홍도의 사곡병풍등 문화재를 전시해 놓은 곳이랍니다.

늦은 시간 탓에 문을 닫아 두었더군요.

                                             

효행 박물관을 지키는 솟대

전라도에서는 <소주> <소줏대> 함흥 지방에서는 <솔대> 황해도, 평안도에서는 <솟댁> 강원도에서는 <솔대> 경상도 해안 지방에서는 <별신대>라고 불리운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솟대가 이렇게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네요.

삼한 시대에 신을 모시던 장소인 소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소도에 세우는 솟대가 그것이며, 소도라는 발음 자체도 솟대의 음이 변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솟대는 대체로 마을 입구에 세워 마을 안의 신성과 질서의 세계, 마을 밖의 부정과 무질서의 세계가 경계 지워져서 외부와의 접촉 공간이기에 보다 강한 신성으로 마을 밖의 부정을 막으며 마을의 신성을 지키려 했던 의미가 크다고 합니다

 

 삼문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궁궐 양식의 문입니다.

좌우에 7칸의 행랑을 지닌 맞배 지붕 양식으로 동서의 옆문과 중앙의 대문에 각각 문이 나 있어 삼문이라고 불리운다고 하네요. 

 .

 삼문 가는 길의 한켠에 꽃을 가득 심어 놓았네요. 국화, 마가렛, 천일홍....

 작은 돌들을 올리며 무엇을 기원하였을까요?

삼문을 지나 들어서면 천보루와 5층 석탑을 만나게 되지요.

용주사가 건립된 조선 정조 14년에 같이 세워진 이 누각은 대웅보전의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누각으로 목조기둥 아래에는 석조 기둥과 같은 높은 초석이 건물을 받들고 있는데, 이는 궁궐 건축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대웅보전 쪽에서 보면 단층 건물로 느껴지며 좌우의 요사체와 함께 마당의 윤곽을 단정하게 정리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5층 석탑에는 부처님의 사리 2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웅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전각으로 특히 내부에 봉안되어 있는 삼세여래후불탱화는 조선 중기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입구에 사진촬영 금지라는 팻말~ 참아야겠지요. 탱화는 눈에만 담고 왔습니다.

 대웅보전에서 바라본 마당과 천보루

 범종 - 범종각 안에 종이 있습니다. 종각에 모셔놓고 자물쇠 채워놓고.. 이제는 더이상 울리지 않는 종이 아닐까 싶네요.

 

국보 120호로 총 높이 1.44m, 입지름 87cm로 통일 신라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범종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종의 모양을 보면 종의 소리를 좌우하는 음통이 맨 위에 있고 그 옆에 용 모양의 종을 거는 고리가 있으며 종의 몸통에는 위, 아래 띠에는 구슬문과 여의두문으로 장식된 반원 모양의 문양과 다초문이 조각되어 있으며 윗부분의 띠아래에는 4개의 유곽이 각각 9개의 돌기가 있다고 합니다.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이 종을 만들었다는 명문이 있으나 이 종의 형태와 일치하지 않아 신라 시대의 동종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호성전과 부모은중경탑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와 효의 왕후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라고 합니다.

 

 용주사는 산 속에 위치하지 않고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는 절집입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바라보는 용주사는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들어서고 나면 아늑한 느낌의 절집이지요.

대웅보전 앞에는 정조가 직접 심었다는 회향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하지요.

용주사에 가시거든..

그 회향나무와 김홍도의 후불탱화를 찾아보시는 것도

재미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