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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꽃 곽성숙

시가 있는 풍경-길갓집 길갓집/차꽃 곽성숙 지나는 사람들이 만만하게 들여다보는무궁화 울타리 낮은 집에 살았다해질녘 마루에 앉은 엄마는,한숨이 들락대는 바가지 옆에 끼고새끼 마늘을 누런 양재기에 담아 까곤 했다 오른쪽 무너진 담 위에 까만 기와를 얹어보수공사를 대신했던 담장이 어설프게 모여먼지를 마시곤 했다어느 해 태풍에, 와르르 주저앉자 엄마는 아, 참 잘됐다며 성한 곳도 밀어내고 말았다벽돌 대신 무궁화를 촘촘히 심었다 담장으로 자리해 활짝 핀 무궁화는길갓집으로 건너보기 더 만만한 집으로 만들어때때로 사진기들이 기웃기웃했다여전히 마루에 앉은 엄마는, 사진기의 물음에 이런저런 대답을 내주었다 어쩌면 쓸쓸만 감돌았을 해질녘이 그윽해지고버석버석 마른 낙엽 같았던 엄마의 일상도 조금씩 촉촉해졌다 길갓집이어서,              .. 더보기
시가 있는 풍경-꽃등 꽃등/차꽃 곽성숙 나무의 새순에, 고목의 매화에, 꽃들의 꽃그늘에, 달콤한 저녁노을에, 저녁노을의 풀꽃에, 풀꽃을 어루만지는 바람에도 사랑이 꽃처럼 늘어나는 봄날입니다 순자씨는 이른 저녁을 먹고 동무의 손에 굽은 허리를 의지하며 꽃길을 갑니다. 순자야, 꽃보러 가자 참꽃 피면 흙담장에서 부르던 내 동무, 그립습니다 수만 송이 꽃등을 밝힌 꽃길이 환합니다 꽃이 나이고 내가 꽃이 되는 순간입니다 화전 짓던 동무들과 꽃길에 앉아, 당신이 눈을 깜박일 때마다 꽃등이 켜지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아름다운 시가 되는 순간입니다. 수만 송이 꽃등이 밝힌 꽃길... 걸으시는 봄날 되시길 바래봅니다. 더보기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차꽃 곽성숙님의 출판기념회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곽성숙 선암사 해우소의 맞배지붕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 어느 시인이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어 와송의 등굽은 허리에 기대던 그가 어깨를 들썩이다 무릎을 꿇고 곧 소리를 내었지 삶이 통곡을 하는 건, 해우소에 앉는 것과 같아 가벼워지는 것이니 난 묵묵히 내려다 보는 것으로 그를 위로 했지 시옷이란,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는 것이기에 그의 어깨를 안고 따라 울면 되지 소리없이 손길만 주면 되지 가만히 등만 내어줘도 되지 옆에 말없이 서 있어만 줘도 통곡은 빛이 나고 할 일을 다하는 것, 박공널의 시옷이 되는 것은 내게 기대도록 너에게 곁을 주는 일이야 *박공지붕의 양쪽 끝면에 ‘ㅅ’ 자 모양으로 붙인 널빤지 1집 '날마다 결혼하는 여자'를 펴낸 차꽃 언니, 지난 봄에 2집 '박공널의 시옷.. 더보기
사무치는 마음으로 가고 또 가는 정자-환벽당 겨울 환벽당/곽성숙 '푸르름이 두른 집' 환벽당*을 풀어보는 이 말, 좋아서 몇 해가 되도록 오고 또 왔건만 여지껏 그 이름값을 몰랐다 나, 이 겨울 환벽당에 와서 비로소 무릎을 친다 봄에는 홍매에, 여름엔 꽃무릇에, 가을엔 스산한 내 기분에 눈을 빼앗겼구나 모두 다, 오던 곳으로 보내고 저만 혼자 발가벗고 남으니 비로소 이름값하는 겨울 환벽당을 본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오니 이토록 환하고 푸르른 것을 내가 가리고 네 탓을 하였구나 아하, 그랬구나! 아직 제 마음 찾지못한 사람아, 겨울 환벽당으로 가라 푸르름 둘러친 환벽당 서늘함이 대숲에서 나와 스민다. *환벽당(環碧堂): 무등산 자락인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 (날마다 결혼하는 여자/지혜출판/2016) 차꽃 언니의 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