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도 여행(india)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죽은 '붓다의 열반지'-쿠쉬나가르의 열반당-인도3

 

 

 

“헛되이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붓다는 열반에 들기 전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들려준 마지막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붓다는 무우수 아래에서 태어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사라나무 아래에서 입멸했습니다.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를 똑같이 겪으며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었습니다.

 

붓다는 이곳 꾸쉬나가르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죽은 '붓다의 열반지' 꾸쉬나가르..

 

그래서 꾸쉬나가르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으나

불교의 4대 성지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붓다가 열반에 든 곳에는 열반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2012년 2월 13일)

 


 

 

열반당에는 오른 팔로 머리를 괴고

옆으로 누운 6.1m짜리 열반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붓다가 입멸지로 선택한 꾸쉬나가르는

예나 지금이나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꾸쉬나가르가 너무 협소한 곳이라

입멸지로 적당치 않다고 했을 정도라고 하지요.

 

열반당 입구에 도착한 여행자~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붓다의 열반 후에 쿠시나가르에도 수많은 스투파와 절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래 전 폐허가 돼 지금은 벽돌더미만 남아있습니다


“헛되이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고 말한 붓다의 마지막 가르침처럼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열반당 한쪽에 매달린 종,

우리나라 절집의 법고에 익숙한 여행자의 눈에는

어쩐지 초라해보이기까지 한 종이로군요.

 

 

 

 

폐허가 된 벽돌 더미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열반당에 다다릅니다.

 

붓다는 바이샬리의 벨루바 마을에서 마지막 안거를 시작하면서

제자 아난다에게 석 달 후 열반을 예고합니다.

 

그는 마지막 여행길에서 한 대장장이의 공양을 받습니다.

상한 음식인 줄 알고도 홀로 공양을 한 붓다는 심한 복통과 함께 피를 토했다고 하지요.

 

스스로 ‘낡은 수레와 같다’고 한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25번이나 휴식을 취한 끝에 자신이 입멸지로 택한 쿠시나가르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 누워 열반에 들었다는 붓다...


 

 

 

열반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올라야 합니다.

 

 

 

 

붓다가 입멸한 자리에 세워진 사원, 열반당..

 

 

 

 

열반당 안에는 6.1m 길이의 불상이 옆으로 누워있습니다.

열반 당시 붓다의 모습이라고 하지요.

 

 

 

 

머리를 북쪽에 두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댄 채,

두 발을 포개어 평화롭게 미소를 지으며 누워 있는 거대한 열반상..


 

 

 

열반상의 발치에는 수많은 공양물들이 쌓여 있고..

 

 

 

 

그 붓다의 발을 만지며, 많은 이들을 소원을 빕니다.

힌두교도인 인도인들도 붓다의 발을 만지며 소원을 빌어봅니다.

 

 

 

 

열반에 들 당시 붓다는 80세였습니다.

죽음을 예감한 붓다가 사라나무 숲에 도착했을 때, 사라나무 꽃이 비처럼 내렸다고 하지요.

 

꽃비를 맞으며 붓다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여래를 진정으로 공양하는 것이 아니다. 수레만 한 아름다운 꽃을 붓다에게 뿌린다 해도 그건 공양이 아니다.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최상의 공양이다.”


 

 

 

편안하게 누운 붓다와는 대조적으로

그 아래 새겨진 제자들은 오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열반당에서 가장 슬프게 오열하는 조각상의 주인공은

아난다 존자라고 하지요.

 

 

 

 

이 조각상이 아난다 존자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보는 여행자입니다.

 

 

 

 

 

 

 

 

 

 

 

 

 

 

 

거대한 조각상은 정말 평화로운 모습으로 누워 있습니다.

 

 


 

열반당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니,

좌정한 스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열반당 뒤쪽으로는 열반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쇼카 대왕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시기별로 조금씩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열반당 주변을 둘러봅니다.

붓다의 열반 후에 세워졌을 수많은 스투파와 절들을 그려봅니다.

 

 

 

 

붓다가 이곳 꾸쉬나가르를 열반지로 선택한데에는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이 깔려 있다고 하지요.

 

 

 

 

그의 사후에 주변 8대 강국이 사리를 독차지 하고자

전쟁도 불사할 것을 예견해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꾸쉬나가르를 열반지로 택한 것이라고 하지요.

 

 

 

 

결국 어느 국가에서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붓다의 사리는 공평하게 8등분 되어 나라별로 분배되었고

이를 계기로 주변 국가들은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살아서 중생을 구제한 붓다가

죽어서까지도 인류의 평화를 지킨 셈이라고 할까요?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죽은 붓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고

친한 사람과는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이라고 하였다는 붓다..

 

그가 열반에 들었다는 열반당을 다녀오며

삶과 죽음은 그리 멀지 않다는...

깨달음 한조각을 가지고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