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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나는세상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김주영, 구효서.. 35인 글.그림

 

 

 

바람도 머무는 섬, 아름다운 거제..

발 닿은 곳마다 이야기가 되고, 노래가 되는 거제 풍경-

우리를 달뜨게 했던 거제의 햇빛, 바람, 파도..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책 표지에 적힌 글귀 하나만으로 저절로 손이 가는 책입니다.

저 글귀들에 온전히 동의할 수밖에 없는 여행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올해 한해 동안 거제를 몇번 쯤 다녀왔나 생각을 해봅니다.

 

올해 1월 1일, 새해 일출을 거가대교가 바라보이는 유호전망대에서 보았으며

바람꽃을 담으러, 복수초를 담으러, 노루귀를 담으러 다녀왔으며

홍포의 별과 지는 해를 담으러 다녀왔구요.

해금강의 일출, 학동 몽돌 해수욕장의 일출, 홍포의 일출..

파도를 담으러 갔던 장승포 해변, 해무를 담으러 갔던 해금강과 홍포,

홍포의 일몰과 지심도의 동백과 공곶이의 수선화..

 

많이 갈 때는 한달에 서너번씩도 다녀오곤 하였던 거제도..

그 거제의 햇빛과 바람과 파도가

시가 되고, 글이 되고, 그림이 되는 책..

 

더구나 여행자가 즐겨 읽는 작가들인

김주영, 구효서, 전경린, 성석제, 정미경...

그들의 글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여지는 책입니다.

 

표지 그림은 해금강 일우/왕열

 

 

 

 

봄이 오는 다대/엄윤숙

 

거제의 물빛과 하늘빛이 어우러진 풍경화들이

글 사이사이에 있어, 그림마저 읽혀진다는...

 

 

 

 

거제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건너가는 사람들이 땅과 바다가 뒤집혀도 꿈쩍하지 않는 거인처럼 된다는 뜻은 아닐까.

또는 건너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거나,

시련을 무릅쓰고 건너감으로써 하해와 같은 마음의 큰 존재가 된다는 뜻이거나.

 

-성석제님의 거제에 갔다 중에서-

 

사진은 하늘빛과 바다빛조차 구별되지 않는 거제 홍포

 

 

 

 

"제발 두리번거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두세요.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마음을 두어야 그곳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어요.

마음을 두어야 피가 돌고 그곳에서 꽃이 피는 거예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두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는 간명한 충고였다.

욕망만 가득할 뿐 마음 두는 법을 잘 몰랐던 탓에 나는 늘 허둥대면서 바빴다.

 

자본주의의 자장에서 벗어난 소외. 소외됨으로써 오히려 빛나는 것에 나는 경외의 시선을 던졌다.

 

-해이수님의 거제 점묘 중에서-

 

사진은 거제 홍포의 해무가 가득한 날

 

 

 

 

지심도 팔색조 1/오이량

 

짐을 두고 먼 곳으로 떠나 가방을 메고 두리번거리는 여행객이란

문득 문득 존재가 종이처럼 얇아지는 법이다. .....

 

내 모든 여행의 추억에는 현지인에 대한 선망이 들어 있었다.

먼 곳까지 가서 타인들의 일상적인 풍경을 접할 때

나는 손에 익은 나의 물건들을 그리워하며 여행자의 열패감에 젖곤 했었다.

어쩌면 이 세상 최초의 여행은 패배자의 유배가 아니었을까.

 

패배란 그리 맑은 빈터를 만들어 놓는 일인가

패라고 발음해 보면 왜 내 속에서는 무너짐과 비워짐과 갈등의 해소와 같은 비세속적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일까.

 

상황이 끝난 뒤의 무의미하고 텅 빈 평화가 떠오른다

앙금이라고 없는 죽은 뒤의 세상 같이 희디흰 패배이다.

 

폐왕의 유적은 역사가 아니라 시 같았다.

 

-전경린님의 어떤 힘이 바위를 공중에 들어 올릴까-

 

폐왕의 산성을 돌아보고 쓴 글들입니다.

 

 

 

 

사진은 거제 지심도의 동백꽃 붉은 빛-

 

길을 떠난 자에게 어떤 장소는 둘로 나뉜다.

이미 가본 곳과 아직 가보지 못한 곳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 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지심도 절벽 아래 해안선을 보자 그 시가 떠올랐다.

거제 사람이 아니어도, 청마가 아니어도 바위가 되고 싶어지는 풍경이었다.

 

목재가 삭아가는 교사는 어찌나 아담하고 다정한지,

다시 못 볼 연인과 한 사흘 지내면 딱 좋을 듯했다.

 

한 3박4일 혼자서 바라보고 싶은 풍경이다.

 

-정미경님의 거제에 두고 온 가방 중에서-

 

 

 

 

파도2/박철환

 

바다는 망각을 독려한다.

 

작은 바다, 그것이 거제의 바다이다.

동해에는 섬이 드무니 더욱 그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홍포 앞바다에 떠 있는 많은 섬들이 바다의 저편을 메우고 있다.

어디, 그림 아닌 곳이 없고, 풍경 아닌 곳이 없다.

 

나는 속으로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하며 시비를 걸듯 바다에 대고 외쳤다. ...

어떤 원론적인 그림움에 기대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워서 바다에 대고 외친 것이다. 정말이지 어쩌란 말이냐고.

 

본디 예술의 본질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아니던가.

그러나 간혹 천혜의 비경이 인간을 주눅 들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 안에 속박된 인간이 갖는 조화로움을 부정해서도 안 될 일이다.

 

-백가흠님의 파도는 어쩌란 말이다 중에서

 

 

 

 

사진은 장승포의 바람과 파도-

 

이 섬은 어제의 섬이 아니다.

이 섬은 내일의 섬이 아니다

다만 오늘의, 이 순간의, 기어이 길을 잃고자 하는 자들만이,

길을 얻고자 하는 자들만이 발견하게 되는 마음의 성소 같은.

 

기억 속의 기억, 기억 밖의 기억, 기억은 흩어진다.

 

나는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는다. 어떤 말도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어떤 풍경들 앞에선 말수가 줄어든다. 지극히 평범한 풍경들 위로 어떤 숭고한 빛이 스며들 땐 더더욱 그러하다.

 

-이제니님의 정오의 나무에서 자정의 바다까지 중에서-

 

 

이 책의 어느 갈피에선가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생텍쥐베리의 <인간의 대지>를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들은 어딘지는 몰라도 어떻든 어디에든지 있어, 말이 없고 잊어버려려 있지만, 몹시도 충실하게 있는 것이다.'

 

장 그리니에는 그의 아름다운 책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와 가장 아름다운 바닷가에

무덤들이 놓여 있는 것은 우연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고 썼다.

그곳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자신들의 내부 속으로 비추어져 들어오는 그토록 많은,

넘칠 듯한 빛을 보고서 겁을 먹은 사람들이 누워 있다고도 썼다.

 

 

여행자가 좋아하는 거제는 이렇게

16명의 글작가와 19명의 그림작가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거제의 풍광들을 떠올리며

쉽게 읽혀지는 책..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