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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상남도

철의 왕국 가야, 그중 비화가야를 가다-창녕 교동고분군

 

 

 

철의 왕국 가야..

 

한반도에서 발견된 철갑옷의 90%이상이 가야지역에서 발굴되었고,

생산된 제품이라고 하지요.

 

가야는 고구려도 만들기 어려워했고,

일본으로서는 구경도 못했었던 철갑옷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설까지 갖추어놓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4,5C 한반도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양식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였다는 가야..

 

그 가야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이제 그 유물과 무덤만이 남아 쓸쓸히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가야국들은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령의 대가야, 상주 함창의 고령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고성의 소가야, 창녕의 비화가야입니다.

 

이중 금관가야, 아라가야, 대가야, 소가야는 전에 소개해 드렸었구요.

오늘은 창녕의 비화가야를 소개할까 합니다.

 

사진은 비화가야를 대표하는 창녕의 교동고분군입니다.(2011년 10월 8일)

 

비화는 '빛이 좋은 들'이란 뜻을 품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교동고분군에서는 환한 빛에 감싸인 넓은 들판을 볼 수 있습니다.

 

 

 

 

창녕 교동 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기슭의 목마산성 아래에 있는 송현동 고분군과는

현풍으로 통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남쪽에 위치한 대형 고분군입니다. 

 

서기5C-6C에 조성되었으며 현존하는 고분 36기는 복원정비된 것입니다.

 

 

 

 

신라의 왕릉도, 조선의 왕릉도 산 위로 올라간 적이 없는데

가야의 왕릉은 유독 산에 있습니다.

무덤을 높은 곳에 써서 왕의 힘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스스로도 자신의 땅을 굽어보고 싶어서였다고 하지요.

 

 

 

 

 

그래서인지 김해의 금관가야의 대성동고분군도.

고령의 대가야의 지산동고분군도, 고성의 송학동 고분군도

함안의 아라가야의 도항, 말산리 고분군도 모두 야트막한 산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창녕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다른 편으로는 논과 저수지, 그리고 산..

시원스런 풍경을 품고 있는 곳입니다.

 

 

 

 

창녕은 가히 고분군 도시입니다.

"제2의 경주, 경남의 경주"로 불릴 만큼 가야시대의 고분군과

100여점이 넘는 지정문화재가 있어 창녕을 찾는 답사객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지요.


 

 

 

 

비화가야의 교동고분군은 화왕산 서북쪽 사면의 목마산성 끝자락에서 시작돼

창녕향교를 지나 시민공원, 창녕군청, 경화회관, 직교리 당간지주 부근까지

약 3km에 이르는 북쪽 능선을 따라 수백기의 고분이 흩어져 있습니다.


 

 

 

1910년 조선을 병합한 일제는 한반도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원후 4세기에서 6세기까지 200여 년 동안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를 찾기 위해 대대적인 가야 고분을 발굴하기에 이릅니다.


 

 

 

지난 역사와 상관없이 고분에서 바라본 평야는

아름답습니다.

 

한없이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일제강점기의 발굴은 보고서조차 남기지 않은,

발굴이 아니라 도굴이나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발굴된 무덤의 부장품은 1918~19년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지고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당시 10여 기 정도를 발굴했는데

출토 유물은 마차 20대, 화차 2량에 싣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고 하지요.

 

곳곳에서 만나게되는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과거입니다.


더구나 일본은 1920년대 배고픈 백성들에게

양식과 돈으로 유혹하여, 일반 사람들까지 고분의 도굴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하지요.


 

 

 

도굴은 해방 이후에도 끊없이 이어졌으며

1980년대까지 배고픈 일반사람들에 의해 60여년에 걸쳐 자행됐으며

철저히 도굴되고 파괴되는 수난을 겪게 됩니다.


 

 

 

무덤의 봉분 뒤편에 펼쳐있는 나지막한 산의 능선조차

크고 작은 봉분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덤 한켠에는 창녕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창녕읍 교동과 송현동 일대 및 영산과 계성에 걸쳐 산재하는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고분 내부 모형등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무덤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

과거의 누군가가 이야기를 건네는 듯 느껴지기도..

 

 

 

 

부드러운 곡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위쪽의 무덤들은 봉분 둘레로 호석을 둘렀습니다.

 

 

 

 

호석을 두른 무덤들이 모여 있습니다.

아래쪽의 무덤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더이상의 안내도가 없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6가야 가운데 유일하게 낙동강 동쪽에 터를 잡은 비화가야..

신라 진흥왕은 금관가야를 점령하고 비화가야를 점령하고(진흥왕 16년 555년)

이곳을 서진의 거점으로 삼았다지요.

 

그리고 562년 대가야의 멸망으로 가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992년 2월부터 6월까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무덤 몇기를 발굴조사하였습니다.

 

이때 확인된 고분군의 특징은 이러했다고 합니다.

고분의 돌방은 세 벽을 쌓고 한 쪽 짧은 벽을 입구로 매장했던 앞트기식 돌방무덤이 대부분입니다.

봉토 언저리에 호석이 들어가는 것이 많고, 호석밖으로 나무기둥을 세워 봉토를 방사선식으로 구분하였습니다.

무덤 내부에서는 출(出)자형 금동관, 은제띠고리, 청동그릇, 금으로 글을 새긴 고리자루큰칼 등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교동 고분군은 창녕에서 밀양으로 가는 24번 국도에 의해

동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던 가을 날 오후..

 

1500년전 가야인들도 보았을 푸르른 가을 날,

그들이 품었을 낙동강과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창녕에서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창녕 교동고분군 찾아가는 길

위치: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동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ic - 창녕읍내방향 - 교동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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