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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1박2일동안 둘러봐도 다 못볼 것 같은 국립경주박물관2-고고관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

신라의 문화유산을 한 눈에 살펴보기 위해 꼭 들러야 하는 곳,

국립경주박물관입니다. (2011년 10월 12일)

 

이곳을 생각하면 맨 처음 떠올리는 것은

중학교 수학여행이 생각나는 여행자..

 

친구들과 에밀레 종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던.. ㅎㅎ

 

이곳은 여전히 학생들의 필수 여행코스인 듯 하더군요.

끊임없이 몰려든다는 표현이 딱 맞는..

 

사진은 국립경주박물관의 고고관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 한장 찍기 위해 엄청 기다렸다는..

 

국립경주박물관은 먼저 소개해 드렸던 옥외전시장을 비롯하여

상설전시관인 고고관, 미술관,안압지관이 있으며

특별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시관의 전시물이 어찌나 많은지

1박 2일동안 둘러봐도 다 못볼 것 같더군요. ㅠㅠ

 

오후 내내 박물관을 돌아본 여행자...

알면 보인다고 하였던가요?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어찌 그리 눈길을 끌고 마음을 끌던지..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시물들,

먼저 옥외전시장은 소개해드렸었구요.

 

오늘은 고고관을 소개해드립니다.

나중에 미술관, 안압지관, 특별전시관을 따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100장이 넘습니다.

찍다보니 사진도 많고, 할 말도 많은 고고관입니다^^

 

 

 

 

고고관의 대표 전시물들을 먼저 소개합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의 안내책자에도 나와 있는 전시물 네 점입니다.

자세한 안내는 아래에서 하고, 일단 사진 먼저 올려봅니다.

 

말탄무사모양토기 (국보 275호)

 

 

 

 

금관 (국보 87호)

 

황금의 나라, 신라의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입니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최초로 발견된 금관으로

전형적인 신라 금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머리띠 정면에 3단을 出자 모양의 장식 3개를 두고

뒤쪽에는 2개의 사슴뿔모양의 장식이 세워져 있습니다.

 

각 장식에는 옥과 구슬모양의 장식들이 금실에 매달려 있습니다.

 

 

 

 

과히 황금의 나라라 할만 하지요?

 

계림로 황금보검으로 보물 635호입니다.

6세기경 만들어진 것입니다.

 

 

 

 

호랑이 모양 허리띠고리

정말 멋지지요?

 

 

 

 

이제 고고관을 찬찬히 둘러보기로 하겠습니다.

 

 

 

 

전시관 바깥에는 울산 천전리 암각화의 모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천전리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부터 시베리아 동북쪽 해안에서

한반도 해안에 이르는 해로를 왕래하면서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라고 하지요.

 

천전리 암각화를 고고관 바깥에 만들어 놓은 것은

고고관이 까마득한 선사시대의 돌부터 고대왕국 신라의 금관까지 만날 수 있는 전시관인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고고관 안으로 들어섭니다.

 

고고관은 제1 전시실부터 3전시실까지 있으며

국은 이양선 선생의 기념실이 있습니다.

 

신라의 탄생과정과 번영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전시해 놓은 것입니다.

 

 

 

 

먼저 1전시실 부터 둘러봅니다.

 

신라를 건국한 사람들은 누구인지, 어떻게 건국하였는지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신라를 건국한 힘은 바로 '철'에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신라가 성장하였음을

다양한 철기와 토기, 청동기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곳이

제 1전시실입니다.

 

신라의 고대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신라의 유물들의 대부분이

이시기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실 부처님, 첨성대, 분황사...

 

 

 

 

토기와 청동기 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빗살무늬 토기와 빗살무늬 토기편.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경주 하서리 출토

 

 

 

 

돌도끼..

 

 

 

 

돌도끼..

 

여행자가 상상하던 투박한 돌도끼가 아니네요.

이리 고운 빛깔과 고운 모양을 가졌다니, 놀랍습니다.

 

이 돌도끼들은 신석기 시대의 유물로

울진 후포리 출토 유물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간석기란 부제 아래~

 

벼농사가 시작되면서 도끼, 끌, 자귀 같은 나무를 다듬는데

필요한 도구들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농사에 사용하는 도구는 거의 나무로 만든 것이었고

날이 무뎌지면 다시 갈아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검과 돌창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반달돌칼들

 

청동기시대/ 경주 황성동과 대구에서 출토된 유물들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경주란 부제 아래~

 

신라인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청동기시대부터 경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라 생각됩니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 이전의 신석기 시대와 달리

일 년 단위의 전략을 세웁니다.

이런 변화는 벼농사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교과서에 만나 볼 수 있었던

빗살무늬 토기..

신석기 시대/ 김천 송죽리 출토

 

 

 

 

빗살무늬 토기의 문양에 대해 설명해 놓았습니다.

 

 

 

 

요령식 동검

 

청도 예전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8-7세기, 청동기 시대의 것입니다.

 

길이는 34.8cm

악기 비파의 모양과 비슷하여 비파형동검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청동기로서 지배자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칼날이 날카롭지 앟아 실제 전쟁에서 사용되었다기보다는

의례나 위세품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청동꺾창과 꺾창집 부속입니다.

 

꺾창은 기원전 2세기의 것이며

꺾창집 부속은 기원전 1세기의 것으로

대구 평리동에서 출토되었습니다.

 

 

 

 

고조선 유민을 흡수하단 란 부제아래~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었습니다.

처음 나라를 세울 때의 이름은 사로국이었습니다.

 

이 무렵 외부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고조선 문화입니다.

 

신라가 건국되는 기원 전후의 무덤에서는

고조선과 관련된 것들이 자주 발견됩니다.

 

위의 사진은 청동거울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 중국 거울을 수입한 것과

이를 모방해서 만든 것들이 있습니다.

 

 

 

 

청동꺾창과 청동투겁창

영천 용전리 출토유물로 기원전 1세기

 

 

 

 

청동기 시대의 항아리

경주 구정동 출토 유물..

 

 

 

 

수정목걸이

3세기경/ 황성동 출토

 

 

 

 

맨 위에서 소개드렸던 호랑이모양 띠고리

 

영천 어은동 유적과 경주 사라라 무덤에서 공통적으로

출토되는 호랑이 모양의 띠고리입니다.

 

 

 

 

경주 사라리 유적이란 부제아래~

 

경주 사라리의낮은 구릉에서 많은 삼한, 삼국시대 무덤이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130호 무덤은 삼한시기의 널무덤 가운데 가장 독보적이었다고 합니다.

 

130호의 무덤은 길이 325cm, 너비 225cm, 깊이 90cm로 다른 널무덤에 비해 뚜렸하게 크다고 합니다.

널 안에서는 목걸이, 청동팔찌, 호랑이 모양 띠고리와 함께 청동거울, 청동검과 칼집 등이 나왔습니다.

 

청동띠고리와 '8'자 모양 띠고리

 

 

 

 

철을 바탕으로 성장하다란 부제아래~

 

신라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는

바로 '철'이었습니다.

 

철을 제련하는 것은 당시 최고의 기술이었고

철을 가진 세력들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신라 건국 초기, 큰 무덤에서는 한국식 동검, 중국 한나라의 거울과 동전,

흉노와 관련된 청동단추 등과 함께 철제품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쇠투겁창

4세기 경주 황성동, 구정동 출토

 

 

 

 

쇠화살촉

4세기 경주 황성동, 구정동, 포항 옥성리 출토

 

 

 

 

와질토기란 부제아래~

 

유물들은 대부분 무덤의 껴묻거리의 형태로 매장되었는데

묻힌자들의 권위와 지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금관을 비롯한 장신구부터 무기류, 일상생활에 사용되었던 그릇까지

다양한 형태의 껴묻거리들이 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와질토기는 밀폐된 가마에서 구워진 것으로

영남의 독특한 문화라고 합니다.

 

 

 

 

다양한 모양의 항아리들과

그것이 발견된 곳들을 적어 놓았습니다.

 

 

 

 

6부가 힘을 합치다란 부제아래~

 

신라는 여섯 부족이 힘을 합쳐 세운 나라이지요.

각 부는 독자성이 강하였지만, 전체회의를 통해 6부의 대표 중 우두머리를 임금으로 뽑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부 사이에서도 우열이 생기게 되었으며

4세기 이후가 되면 경주의 중심지역인 현재의 대릉원 주변에

대형 무덤들이 집중 분포하기 시작합니다.

 

사진은 뚜껑굽다리 항아리

3세기경/ 구어리 출토

 

 

 

 

화로모양 토기

3세기경/ 구어리 출토

 

 

 

 

새장식 뚜껑 항아리

4세기경/ 포항 옥성리 출토

 

150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항아리라는 것이

믿어지시나요?

 

소박하면서도 참으로 아름다운 항아리입니다.

 

 

 

 

무덤의 변천이란 부제아래~

 

산 사람에게 쉴 집이 있듯이 죽은 이에게는 무덤이 집입니다.

무덤은 시대와 신분에 따라 그 크기와 부장품이 달라집니다.

 

신라는 5세기를 정점으로 황금을 묻은 거대한 크기의 무덤을 만듭니다.

그러다 불교를 받아들이며 점차 크기도 작아지고 부장품도 줄어들게 됩니다.

 

무덤의 변천을 살펴볼까요?

 

널무덤, 덧널무덤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300년 사이

 

 

 

 

돌무지덧널무덤

 

4세기 무렵

 

 

 

 

돌방무덤

 

6세기 중엽 이후

 

 

 

 

독무덤

 

신석기 시대부터 근세까지 이어진 오래된 무덤

 

 

 

 

뼈항아리

 

불교와 함께 화장이 유행하였다지요.

 

 

 

 

무늬토기란 부제아래~

 

무늬토기는 토기의 겉면에 동물, 사람,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거나 점토를 덧붙인 것

또는 문질러서 채색효과를 낸 토기를 말합니다.

 

사진은 무늬뚜껑과 말무늬 뚜꼉

포항 학천리와 울산에서 출토

 

 

 

 

뿔잔

미추왕릉지구 출토

 

각배라 불리는 동물 뿔모양의 잔을 형상화시킨 토기입니다.

각배는 서역 유목민들 사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한반도와 서역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짚신모양토기

 

 

 

 

사람모양의 토우

 

 

 

 

남자상과 여인상

 

 

 

 

동물모양의 토우

 

 

 

 

등잔모양토기

 

이 토기는 신라토기를 대표하는 형태의 토기로

전형적인 무덤 껴묻거리 토기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은자가 머무는 공간을 밝혀주는

등잔의 의미를 갖고 있는 토기입니다.

 

 

 

 

찬합모양토기

 

등잔모양토기와 마찬가지로

죽은자가 사용할 제기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말탄무사모양토기

경주 덕천리 출토

 

기마인물형토기는 여러 형태로 출토되는 무덤의 껴묻거리 토기입니다.

죽은자를 형상화하거나 죽은 자와 같이 지낼 인물을 나타냅니다.

 

 

 

 

서수모양토기 (보물 636호)

5세기 미추왕릉지구에서 발굴된 것으로

길이가 17.5cm로 몸통은 거북모양을 하고 있으며

머리와 꼬리는 용모양입니다.

 

가슴에는 물을 따르는 주둥이가 있고

엉덩이에는 밥그릇 모양의 완이 있습니다.

 

 

 

 

토우장식 항아리(국보 195호)

5세기 미추왕릉지구에서 출토

 

신라 토우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높이 34cm, 아가리 지름 22.4cm로 큰 편이며 위에서 아래로 한번에 5개의 선을 그었고

 그 선 사이에 동심원을 새기고, 개구리, 새, 거북이, 사람 등으로 토우를 장식하였습니다.

 

 

 

 

토우의 다른편..

 

뱀이 개구리 뒷다리를 물려고 하고 있으며

거문고를 타고 있는 배부른 임산부와 주위의 동물들..

 

 

 

 

이제 고고관의 제 2전시실로 이동합니다.

 

신라를 대표하는 황금문화..

마립간이 사용하던 화려한 금관과 허리띠를 비롯해

다양한 황금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신라는 이러한 황금을 통해 왕권강화와 주변을 아우르는 등

다양한 정치활동을 하였음을 소개하였습니다.

 

일본서기에는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1921년 금관총에서 금관이 발견된 이래,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교동 등지에서

6개의 금관이 발견되었습니다.

 

금동신발

5세기경 유물로 황남대총 출토

 

금동신발은 크기와 형태로 보아 주검에 신기우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3매의 금동판을 못으로 박아 형태를 만든 뒤, 안에는 천이나 가죽을 덧대었습니다.

 

그리고 겉면은 각종 무늬를 맞새기거나 타출점열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습니다.

 

신라의 금동신발은 볼록한 형태의 맞새김장식을 잇달아 베풀었고

신발코는 버선코처럼 살짝 치켜 올랐으며

바닥에는 못이 없는 점이 특징입니다.

 

제작방범은 1매의 금동판은 발등을 감싸고

다른 금동판은 발뒷축을 감싸도록 만들어 발의 좌우에서 고정시켰습니다.

 

 

 

 

곱은옥

5세기경, 경주 서봉총, 황남대총 출토

 

 

 

 

금구슬

4-5세기경, 경주 월성로, 황오동 출토

 

 

 

 

금귀걸이, 금목걸이

5세기경 경주 황남대총 출토

 

 

 

 

굵은고리금귀걸이

5-6세기경 경주

 

신라의 무덤에서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금귀걸이가 출토되었습니다.

 

신라의 귀걸이는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며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과 수준높은 금속공예기술을 잘 보여줍니다.

 

귀걸이는 고리의 굵기에 따라 굵은고리귀걸이와 가는고리 귀걸이로 구분됩니다.

굵은고리 귀걸이는 금관이나 비단모자의 좌우에 매달아 장식하거나

가죽으로 고리를 만들어 귀에 걸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금귀걸이

5-6세기경 경주

 

 

 

 

말다래

6세기경 천마총

 

 

 

 

왕을 상징하는 것이란 부제아래~

 

신라에서 임금을 뜻하는 말은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왕의 순서로 바뀌었습니다.

왕이란 칭호는 22대 지증왕(재위 500-514) 부터 사용하게 됩니다.

 

왕의 몸은 어떻게 치장하였을까요?

황남대총 등 왕릉의 발굴 결과,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금제 허리띠를 찼습니다.

반지와 팔찌는 물론 금귀걸이를 달았고

여러가지 목걸이들과 금동으로 만든 신발을 신었습니다.

 

허리춤에는 용과 봉황으로 장식한 큰칼을 찼고 화려한 비단옷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치장은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주며

강력한 권위를 상징합니다.

 

금제 허리띠에 매달린 여러 가지 물건들은

말을 즐겨타는 유목민족의 성격도 보여줍니다.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 썼거나 죽어서 묻힐 때

함께 묻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은 금드리개

5-6세기경, 경주 황오동, 황남대총 출토

드리개는 귀걸이와 유사한 형태로

금관이나 금동관의 화려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관테의 둘레에 장식한 것입니다.

 

 

 

 

금굽다리 접시(보물 626호)

5세기 경주 항남대총 출토

 

토기로 만든 굽다리 접시와 비슷하지만

하트모양의 장식을 달아서 조형미가 빼어난 유물입니다.

 

 

 

 

금사발

5세기경 경주 황남대총 출토

 

 

 

 

은합

5세기경 경주 황남대총 출토

 

 

 

 

부리달린 은단지, 은국자, 은굽다리접시

5세기경, 경주 황남대총 출토유물

 

 

 

 

금동관

6세기 경주출토

 

 

 

 

나비모양 금관식(보물 617호)

6세기

 

 

 

 

금관

5세기경 경주 교통 출토

 

 

 

 

금관모 (국보 189호)

6세기경 경주 천마총 출토

 

금을 아주 세밀하게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그 원형이 아주 깨끗하게 남아 있어

마치 새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각각 모양이 다른 금판 4매를 연결하여 만들었는데

위에는 반원형이며 밑으로 내려갈수록 넓어집니다.

 

 

 

 

금맞새김장식

5세기경 경주 황남대총출토

 

 

 

 

청동자루솥

5세기경 서봉총 출토

 

자루솥은 물, 술 등 액체로 된 음식물을 데우는 그릇입니다.

이 자루솥은 뚜껑에 연꽃잎장식이,

자루끝에는 나뭇잎을 물고 있는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는 빼어난 작품입니다.

 

 

 

 

금관이 나온 신라능묘란 부제아래~

 

금관총은 금관이 발견된 최초의 신라능묘입니다.

신라금관은 지금까지 모두 6점이 발굴되었습니다.

 

1921년 금관총에서 금관이 나온 뒤, 1924년 금령총, 1926년서봉총에서 연이어 발견되었습니다.

광복 뒤 1973년 천마총에서, 1974년 황남대총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이외에 경주 교통에서 1978년 초기형태의 금관이 발견되었습니다.

 

금관의 주인은 왕뿐만 아니라 왕족도 해당됩니다.

 

금관총은 1500년 전인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머리는 동쪽으로 두었으며 묻힌이는 금관을 쓰고, 목걸이, 금제 허리띠, 팔찌, 금반지 등으로 치장했습니다.

머리 위쪽의 부장품 상자 속에는 각종 그릇, 말갖춤, 무기 등 많은 보물을 넣었습니다.

 

사진은 금동제 신발

 

 

 

 

올해는 금관이 최초로 발견된지 꼭 90년이 된다고 합니다.

1921년 9월 노서동 어느 주막의 집터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금관..

 

금관 최초 발견 90년 금관총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전시입니다.

 

 

 

 

200여점의 유물을 출토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이제 고고관의 제3전시실로 향합니다.

 

신라의 발전과 삼국통일, 대외교류,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신라인의 생활을 알 수 있도록

갑옷과 무기, 말갖춤, 토용, 십이지상을 전시하였습니다.

 

또한 황남대총 남분의 부곽을 실물대로 재현하였고

돌방무덤과 독무덤, 화장묘 출토품 및 신라,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토기도 함께 소개하였습니다.

 

사진은 황남대총 남분의 부곽을 실물대로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실물크기로 재현해 놓은 황남대총의 구조

 

땅바닥을 평평하게 고른 뒤 나무로 주곽을 만들고

그 안에 왕의 주검을 넣은 목관을 안치했습니다.

 

왕의 머리는 동쪽으로 두었습니다.

머리 쪽에는 귀중품을 넣은 사방 1m크기의 나무 상자를 놓았습니다.

 

주곽의 서쪽에 많은 부장품을 넣기 위해

커다란 부곽을 더 만들었습니다.

 

주곽과 부곽을 만든 뒤 그 둘레 강돌을 쌓아 올렸는데

무너지지 않도록 나무틀을 만들어 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흙을 단단하게 다지며

둥그렇게 쌓아 올려 완성하였습니다.

 

 

 

 

신라의 무기들, 판갑옷과 말머리 가리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4-5세기경 경주 사라리에서 출토된 유물들입니다.

 

 

 

 

은팔뚝가리개(보물 632호)

5세기경 경주 황남대총 출토

 

이 팔뚝가리개는 황남대총 남쪽 무덤 널밖 머리쪽의 껴묻거리 구덩이 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길이 35cm입니다.

 

 

 

 

쇠갑옷을 입고 영토를 넓히다란 부제아래~

 

강력한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영토를 넓혀 더 많은 사람과 생산력을 확보하여야 하였습니다.

자연히 전쟁이 자주 일어나게 되고, 전쟁에 이기기 위해 월등한 무기들이 필요해집니다.

 

신라는 철제 무기를 만들어 전쟁에 사용합니다.

쇠로 만든 긴칼과 창, 쇠로 만든 갑옷과 투구가 출토되었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치열한 기마전에서 말을 보호하기 위해

쇠로 만든 말머리 가리개와 말 갑옷을 만들고 재갈, 안장, 발걸이 등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토기와

말갖춤등을 비교하며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청동방울(5세기 금광총 출토)과 말띠꾸미개들(6세기 경주 계림로 출토)

 

 

 

 

금동 재갈멈치

5세기경 경주 황남대총남분 출토

 

 

 

 

말방울

6세기 경주 천마총 출토

 

 

 

 

문자를 사용하다 란 부제아래~

 

4-6세기의 돌무지 덜넛무덤에서 한자가 쓰여진 부장품들이 발견되고 있어

한자를 활발히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나라에 유학생이 파견되고 불교가 융성하게 되면서

문자 수준도 급속히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동합

 

이 그릇의 특징은 뚜껑과 그릇 바닥에 똑 같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제조'로 판독되는데, 이는 죽은 이를 애도하기 위한 의미에서

글자를 새긴 것으로 여겨집니다.

 

 

 

 

'비'명 뼈항아리

통일신라

 

 

 

 

 

 

대부귀(大富貴)말종방울

5-6세기,경주 황오동 출토

 

말종방울에 대부귀라 적혀 있습니다.

 

 

 

 

단단한 토기를 대량생산하다 란 부제아래~

 

사람들은 신석기시대부터 토기를 만들어 왔습니다.

2천 년 전에는 새로운 토기문화를 받아 들여 회전판을 이용하여 빚은 뒤

밀폐된 가마에서 구웠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4세기 후반 다리에 엊갈린 구멍을 뚫은 독특한 형태의 굽다리 그릇에 이르면

토기를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4-6세기의 돌무지덧널무덤에는 매우 많은 토기가 부장된 것이 특징입니다.

황남대총 같은 왕릉에는 한 무덤에 삼천여점을 묻기도 하였습니다.

 

 

 

 

독무덤

5-6세기 경주 인왕동 출토

 

 

 

 

독무덤

6세기 경주 계림로 출토

 

 

 

 

수레모양토기

6세기 경주 계림로

 

1973년 56기의 신라 무덤들이 발굴되엇습니다.

이 중 계림로 25호라고 이름 붙여진 무덤에서는 수레모양토기가 출토되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계림 25호는 항아리 두개를 이어서 만든 독무덤으로

수레모양토기를 비롯해 흙으로 만든 구슬, 소형그릇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수레는 바퀴와 차체, 끌채 등을 자세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살이 촘촘한 바퀴는 중앙에 차축을 끼우기 위한 구멍이 있습니다.

 

차체는 양 옆과 뒤쪽을 판으로 막았고

판에 장식띠를 덧대고 못을 박은 모습이 매우 정교합니다.

 

차체 바닥에는 차축을 연결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차체 양 옆에서 길게 뻗어 나온 끌채는 부러져서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이 수레는 여기에 함께 묻힌 소형의 유물과 함께 무덤 주인공의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장송의례용으로 제작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신라인들이 어떤 수레를 사용했는지를 잘 알려 주는 것으로

이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합니다.

 

 

 

 

포항냉수리 돌방무덤 출토유물 6세기

 

뿔잔

각배라고도 불리는 뿔잔은 중앙아시아 유목민들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인데

통일신라시대까지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경주 용강동 돌방무덤 출토유물 7-8세기

 

당나귀와 수레바퀴, 마구가 있는 말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용강동 돌방무덤에는 여러 여인상이 출토되었는데

체격이 큰 여인상과 작은 여인상이 같이 출토되었습니다.

 

신분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문인상과 여인상

 

이러한 토용은 무덤에 껴묻기 위하여 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토용의 의복이나 모자 등 복식을 보면

매우 자세히 표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 표정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화장이 유행하다 란 부제아래~

 

이차돈(506-527)의 순교 후에 법흥왕은 527년에 불교를 공인하게 되고,

신라는 불교를 수용하면서 사회 전체에 큰 변혁을 맞이합니다.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아 안정을 이룩하고

삼국통일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불교의 전래는 땅에 주검을 묻던 장례절차를,

주검을 태워 장사 지내는 화장으로 바뀌게 하고 화장이 크게 유행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화장 뒤 남은 유골을 담아 묻는 뼈항아리들이 많이 만들어 집니다.

 

사진은 뼈항아리

8세기 경주

 

 

 

 

집모양뼈그릇

8세기 경주 북군동 출토

 

죽은 이의 영혼이 기와집에서 영원히 안주하기를 바랐던 것일까요?

이 집모양 뼈그릇은 암.수키와를 가지런히 이은 팔작지붕의 당당한 기와집을 표현하였습니다.

 

벽에는 도장으로 찍어서 구성한 육각형. 꽃모양 등 갖가지 무늬들을 새겼는데

이 무늬로 통일신라 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뼈그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나무 한그루를 가는 참선으로 표현하여

이 집에 딸린 정원을 의도한 듯 합니다.

 

문짝과 안에 들어 있었을 작은 단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뼈그릇은 통일신라시대 기와집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녹유 뼈항아리

 

안팎으로 녹유가 입혀진 이 뼈항아리는 꽃모양 또는 나뭇잎 모양의 도장무늬를

전면에 가득 메웠습니다.

 

그리고 바깥항아리의 어깨에는 짐슴얼굴모양을 한 네 개의 꼭지가 달여 있습니다.

이것은 잡귀가 범접 못하게 하려고 한 벽사적인 의미로 보입니다.

 

안단지에도 초록빛 유약이 곱게 입혀져 있는 이 항아리는

8세기 어느 신라 귀족의 장례에 쓰였던 뼈항아리로 생각됩니다.

 

 

 

 

굽다리병

8세기 출토지 미상

 

 

 

 

시간과 방위의 신, 십이지 란 부제아래

 

십이지는 시간과 방위를 맡아 지키는 일종의 신으로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순이 닭 개 돼지 등 12종의 동물로 나타냅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보이고 수나라 때부터 머리는 동물이나 몸은 사람의 모습인 토용으로 제작되어 무덤에 부장됩니다.

삼국시대 말에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무덤 내외부에 배치되며 불교 미술의 중요한 소재로 활용됩니다.

 

초기에는 조그만 십이지상을 무덤 안에 부장하지만

무덤을 지키는 신장상의 모습으로 무덤 둘레의 호석에 조각됩니다.

 

십이지상-돼지

8세기 김유신 무덤의 둘레석을 장식하고 있던 십이지신상으로

곱돌을 갈아서 만든 것으로 십이지신상을 대표하는 유물입니다.

 

 

 

 

청동십이지상

7-8섹경 경주 용강동 출토

 

 

 

 

신라, 서아시아를 만나다 란 부제아래~

 

경주에서 출토된 서아시아 문물은 신라가 머나먼 서쪽나라들과 접촉하고 교류했음을 알려줍니다.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는 약 25점에 이르는 유리그릇들이 출토되었습니다.

대부분 지중해 연안과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져 실크로드를 따라 수입된 것들입니다.

 

계림로 14호묘에서 발굴된 황금보검도 양 지역의 교류를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황금보검(보물 635호)

6세기초

 

서아시아에서 만들어진 황금보검은 칼집 표면을 금관으로 덮고

무수히 많은 금알갱이와 붉은 석류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3전시실과 국은기념실 사이에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모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암각화는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합니다.

 

 

 

 

이 암각화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물에 갖힌 네다리 짐승이 그려진 사냥장면

그 아래는 나무 울타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바다 거북 세마리가 움직이는 모습(거북이는 신비로운 생산력을 나타내는 영물)

그 옆에는 춤추는 샤만이 그려져 있습니다.

(커다란 성기, 엉덩이 부분의 꼬리를 가진 남자로 풍요로운 사냥과 고래잡이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경주박물관 고고관의 마지막 전시실인

국은기념실입니다.

 

경주박물관에 666점의 문화재를 기증한 국은 이양선박사의 기증 유물을 전시한 곳입니다.

 

이중 말탄무사모양토기는 국보로, 죽동리 출토유물과 옻칠발걸이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고깔동기

기원전 1세기 경주 안계리 출토유물

 

 

 

 

장대투겁방울

경주죽동리출토유물

 

같은 틀로 만들어진 한쌍의 청동기 유물입니다.

가운데가 빈 포탄형으로 아래부분에 테두리가 돌아가 있습니다.

내부는 중앙에 구멍이 뚫린 칸막이를 설치, 방울을 넣어 소리가 나게 만들었습니다.

 

 

 

 

꺾창

경주 죽동리 출토유물 청동기

기원전 2세기 보물 1152호

 

 

 

 

오리모양토기

기원전 1세기, 경주 교동 출토

 

경주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형태로 가야지역에서 많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말탄무사뿔잔(국보 275호)

가야시대, 5세기

 

맨 위에 옆모습, 뒷모습, 정면의 모습을 올려 놓았었지요.

 

전체적인 형태가 매우 특이합니다.

나팔처럼 아래로 벌어진 굽다리 위에 사실적으로 표현된 말이 올려져 있고 그 위에 무사가 타고 있습니다.

무사는 갑옷에 투구를 쓰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창과 같은 긴 무기를 비껴 들었고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말에도 갑옷을 입혔는데 가로와 세로로 그어진 선으로 보아 철판이나 네모난 조각을 이어 만든 비늘갑옷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사의 뒤쪽 말 등에는 두 개의 뿔잔이 대칭으로 높게 솟아 있습니다.

 

이 토기를 크지 않으나 매우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

당시의 기마풍습과 함께 갑옷 또는 말갑옷의 형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말모양, 대롱모양 토기

삼국시대 김해 양동리 출토

 

 

 

 

청동합과 청동자루솥

 

 

 

 

옻칠발걸이(보물 1151호)

통일신라시대 경주 황오동출토

 

 

 

 

녹유특수와전

양산지방 출토

 

기와 가운데 수막새는 황룡사터 등지에서 출토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도깨비무늬 수막새와 연꽃무늬 수막새 등이 있습니다.

 

암막새에 표현되어 있는 인동무늬와 새무늬는 역시 통일신라시대에 유행된 양식들입니다.

도깨비기와는 벽사의 상징으로 지붕의 마루나 사래 끝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서까래기와는 방형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녹유보상화무늬,

그리고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도깨비눈무늬가 있습니다.

 

한편 기와를 찍어내는 기와틀은 흙으로 빚어 구운 것입니다.

 

 

 

 

연꽃무늬수막새와 도깨비무늬 수막새

 

 

 

 

기오, 전돌, 기와틀

통일신라시대

 

 

 

 

도깨비기와

통일신라시대

 

영묘사터에서 발견된 수막새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도깨비문양이 새겨진 기와입니다.

생동감있고 힘이 넘치는 문양입니다.

 

 

 

 

금동여래입상

 

 

국립경주박물관 고고관..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유물들이 있었지만,

여행자의 눈에 띄였던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았습니다.

 

미리 공부하고 다녀왔더라면

훨씬 좋은 관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른 분들을 위해

며칠에 걸려 조금씩 정리해 보았습니다.

 

1박 2일동안 둘러봐도 다 못둘러볼 것 같았던

그 많은 유물들...

 

신라 천년의 역사문화와 만나는 여행..

다시 떠나보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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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http://gyeongju.museum.go.kr 을 클릭해 보세요~

 

아울러 여기 올린 대부분의 설명은

경주박물관 내의 안내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찾아가는 길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18

 

경주IC → 경부고속도로 이후 약 5분 소요(3.81Km) → 우측방향(62m) → 문천길(우회전)39m → 문천길(좌회전)638m → 일정로(우회전)38.5m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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