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아버님께-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참 행복합니다.

책 속의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 터이니 말입니다.

 

거기다 여행자의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면

두 배로 행복해집니다.

 

다산의 아버님께..

이 책을 만났을 때도 그러했답니다.

 

이 책을 서점에서 고르며

옆에 놓고 보고 또 보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요.

 

추석 무렵에 산 책을 두 번 보았으니

틀린 생각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다산 정약용 선생에 관한 글입니다.

 

딱딱하게 다산에 대한 소개의 글이 아니라

18년 간 다산이 유배지에 가 있는 동안

그의 둘째 아들인 학유의 눈으로 본 다산의 모습과 그의 가족들,

다산과 왕래한 편지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가파른 산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온 서늘한 북한강과 뭉근한 늪에서 생겨난 온화한 남한강은 두물머리에서 만나,

비로소 한강이라는 하나의 이름이 되어 흘러간다...

서로 다른 곳에서 흘러온 물결들이 만나는 저 두물머리처럼, 다산의 아버님과 이곳 소내 우리 가족들의 그리움도 서로 만나 편안히 젖을 곳이 있을까-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길에 오른지 7년,

다 자란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강진의 다산초당으로 떠나면서 글은 시작됩니다.

 

소내에서 충주까지 삼백 리 물길을 따라가며,

7년 전 흑산도와 강진의 유배지로 떠나던 둘째아버님(정약전)과 아버지(정약용)을 떠올립니다.

 

-겨울 강은 말없이 흐르고

강은 아득히 넓었다. 물살은 제 몸 위에 실린 엷은 얼음 조각들을 밀며 천천히 나아가느라 힘겨워 보였다

간혹 삐걱거리는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했다. 채 녹지않은 눈을 머리에 이고 있어서인지, 멀리 보이는 겨울산과 잿빛 하늘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늘도 당도 산도 강도 모두가 얼어붙은 잿빛이었다-

 

그날의 기억들은 모두 잿빛이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약용을 유배 보내며, 반대편 무리들은 이리 말하였다지요.

-천 사람을 죽이고도 정약용을 죽이지 않으면, 아무도 죽이지 않은 것과 같단 말이오- 라고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젊은 시절, 서학을 만나며 유학과는 다른 학문체계의 신선함으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피웠다고 하지요.

중인들의 영역이라 천대하던 수학과 천문학, 건축학, 지리학까지 망라하며 사람들의 실제 생활과 관견된 것들을 만나게 되었다지요.

이때 서양의 종교, 천주학에 관한 책들도 함께 젊은이들에게 전해집니다.

스물 넷에 이 모임이 발각되었지만, 대부분 양반가의 자제들이 관련되어 있어 크게 문제삼지 않습니다.

그리고 삼십대 젊은 관료로서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받고, 정조와 함께 이상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헌신하였지요.

 

삼십대에 동부승지까지 오른 다산..

그만큼 그에게는 적도 많았습니다.

정조가 그를 승진시키려 할 때마다 반대파들은 서학에 물든 자에게 나랏일을 맡길 수 없다는 반대 여론이 빗발쳐 좌절되곤 하였다지요.

 

스물 넷에 만난 서학이 그의 발목을 번번히 붙든 셈이지요.

 

 

 

 

그리고 갑작스러운 정조의 승하..

 

다산 정약용 선생은 대궐로 달려가 통곡하였으나, 조정의 관리가 아니라 하여 정조의 영정조차 배알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영구수레 밤에야 노량나루 모래톱 이르니

천 개의 등촉이 비단장막 에워싸네.

단청한 배 붉은 난간은 어제와 같은데

임금님 넋은 어느 틈에 화성으로 가셨는가

천 줄기 흐르는 눈물은 옷깃 흠뻑 적시고

바람 속 은하수도 슬픔에 잠겼어라

성곽과 대궐은 옛 모습 그대로이나

임금님 영정 모신 서향각 배알도 못하게 막네.

<발인날 슬픔을 아뢰다. 정약용.1800> -

 

책은 중간중간 이승민 님이 그린 수묵화와 같은 느낌의 삽화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초의 스님과의 만남 부분도 있습니다.

초의 선사는 다산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와 같은 나이였답니다.

 

-한 모금 차를 마시니 몸속에 찻물이 들어와 흐르는 길은 따로 있는 듯 했다. ..

핏줄을 타고 대번에 살갗까지, 신령한 기운과 함께 머릿속 뇌수까지, 혈관을 거슬러 올라 심장까지, 그리고 단단한 뼛속 골수까지 빠르게 스며드는 듯했다.

한 모금 차를 마시니 오스스 살갗도 놀라 깨어나고 뿌옇던 머릿속도 맑아졌다.

알 수없는 슬픔이 심장 부근으로 저릿 다가오는가 하면, 몸 속 깊은 곳까지 닿은 한 모금의 차가 다시 돌아 나올 때는 슬픔도 서러움도 말갛게 씻기는 느낌이었다.-

 

책은 다산의 18년 유배생활과 그의 가족들의 생활들..

지난 시간들의 회상과 함께 보여줍니다.

 

-18년의 세월..

 

1801년 2월부터 1818년 8월까지, 유배지에서 보낸 아버님의 세월은 어느새 18년째가 되어간다....

그 세월은 유배지의 아버님 혼자 보낸 18년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들과 집안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보낸 18년이기도 하다. ..

갑작스러운 환란에 움츠러들고 가족들 한 람 한 사람 저다마의 뜻이 꺾이기도 하면서, 슬픔과 분노, 그리움과 좌절로 보낸 눈물 어린 세월들이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당사자인 아버님의 세월이다. 붉은 관복을 입고 홍문관으로, 규장각으로, 선왕 전하께서 계시던 편전으로 바쁘게 오가던 삼십대의 아버님은 의금부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경상도 바닷가 마을과 전라도 바닷가 마을 유배지를 옮겨 다니며, 사십대, 오십대 세월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머리도 이도 다 빠지고 몸을 쓰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은 병든 노인이 되셨다-

 

1936년 다산 서거 백주년을 맞아 <여유당전서>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책은 154권 76책이라고 합니다.

시문집 25권 12책, 경집 48권 24책, 예집 24권 12책, 악집 4권 2책, 정법집 39권 19책, 지리집 8권 4책, 의학집 6권 3책...

방대한 양의 다산의 책들..

그의 18년 세월을 미뤄 짐작해봅니다.

 

책은 환갑을 맞이한 정학유의 회상,아버님을 그리며..로 마무리 글을 올려두었습니다.

 

책의 행간 사이에 읽혀지는 것들이 많은 글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였으나 부자간에 흐르는 정이 느껴지는 말들..

 

언젠가 또 다시 꺼내들게 될 책이 될 듯합니다.

10월이 되니, 여행을 다니기에도, 책을 읽기에도, 좋은 때가 되었습니다.

부족한 글로 책 소개 몇자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