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경남 답사에서 거창은 동계고택이 있어
더욱 매력적인 코스가 된다~
앞서 소개한 원학고가로도 불리는 '황산리 신씨 고가'는 거창 신씨의 재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갓집이라면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17세기에 지은 동계고택과 비교해보면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만약 이 두 집의 미적, 정서적 차이를 알아볼 수 있다면
전통건축을 보는 눈이 한단계 높아진 것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그 점에서 거창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익히는 좋은 현장학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거창.합천 편에서
동계고택을 설명하는 글들입니다.
이런 글을 읽고 난 후에 동계고택을 들르지 않을 수 없겠지요? ㅎ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여섯 번째 이야기는 동계고택입니다.
사진은 동계고택의 사랑채의 모습으로
용마루의 눈썹기와로 여느 사랑채와 다른 멋과 힘이 느껴집니다. (2011년 9월 3일)
거창군 위천면 강동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낮은 산자락을 등지고 시원스런 들판을 내다보며 자리잡은 동계고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동계 정온고택은 영남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고가라고 합니다.
솟을대문 우뚝 솟은 고택으로 향합니다.
솟을대문 위에 적힌 붉은 바탕 흰글씨.
'문간공동계정온지문(文簡公桐溪鄭蘊之門)'이라는 정려(旌閭)의 흰 글씨가 붉은 바탕과 대비되면서 또렷합니다.
인조가 정온선생의 병자호란 때 의절을 잊지 않고 내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쯤이면 정온선생은 어떤 분일까? 궁금해집니다.
동계 정온은 진사 유명의 아들로 본관은 초계이고
어려서는 말더듬이여서 고생이 심하였는데,
열다섯살 때 윗고을의 갈천 임훈의 문인으로 들어가 총명함을 인전받고
서른한살에 내암 정인홍(1535-1623)을 찾아가 사사했습니다.
학통으로 보면, 남명 조식, 일두 정여창, 내암 정인홍을 잇는
경상우도 영남학파의 거유라고 합니다.
그는 광해군 때 영창대군의 처형에 반대해 제주도에서 10년간 귀양살이를 했고,
병자호란 때는 화친에 반대해 자결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산간에 운둔하면서 여생을 보냈던 충신입니다.
동계고택은 동계 정온 선생이 사시던 곳으로
후손들이 순조 20년(1820년)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전형적인 종갓집 건물입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높직이 올라앉은 기역자 집 사랑채가 이 집의 얼굴이 되고
사랑채 옆으로 난 중문으로 들어서면 안방·대청마루·건넌방과 부엌이 있는 안채가
단정한 일자형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안마당 좌우로는 아래채와 곳간채와 뒷간이 다소곳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안채 뒤로는 낮은 기와 돌담에 둘러싸인 정온 선생 사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랑채 쪽에서 바라본 대문간채와 돌담, 그리고 너른 마당..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사랑채가 여느 양반 가옥보다
늠름하고 대단히 권위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지붕의 용마루에 눈썹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옥의 지붕에서 용마루는 기와를 5장, 7장 얹으면서 건물의 권위를 부여합니다.
이 집에서는 용마루에 낙숫물받이 격의 긴 눈썹을 붙여 그 무게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출된 사랑채 누각의 처마가 좀 과장되었다 싶을 정도로 겹처마로 되어 있어 더욱 그런 인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돌기단이 낮은 편이면서 툇마루가 성큼 높이 올라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채에는 충신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추사 김정희가 제주 대정에서 9년간 귀양살이를 하고 돌아갈 때,
일부러 동계고택을 찾아가 '충신당'이란 현판을 써주었다고 하지요.
그 현판이 지금도 동계고택 사랑채에 걸려있다고 하는데
저 현판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사랑채를 지나 안채를 향합니다.
곳곳에 사람의 흔적들이 묻은 고택은
여행자를 따뜻하게 맞이해 줍니다.
고택에 사시는 분들..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즐겁게 안채를 개방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랑채와 마주하고 선 'ㅡ'자형 안채와 커다란 굴뚝이 인상적이로군요.
사랑채의 뒷쪽에 이렇게 긴 툇마루가 놓여 있습니다.
동계고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대단히 권위적인 데 반해
중문채, 뜰아래채, 곳간채는 아주 소박하면서 단정해
지 전체에 조용한 건축적 리듬을 주고 있습니다.
안채의 부엌 바깥에 나란히 걸린 주걱들..
이 고택의 고단한 종부의 삶을 짐작케 하는 듯 합니다.
부엌 옆에는 우물이 자리하고 있구요.
예천의 고택들에 이어 거창의 고택들도
내부에 우물을 꼭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채 뒤로 향하면, 아름다운 돌담과 대숲..
그리고 장독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장이 익어가는 냄새가 근처만 가도
솔솔~ 나더군요.
그리고 그 옆에 자리한 사당..
동계 정온 선생은 훗날 인조가 문간공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정려문을 세우게 하였지요.
숙종은 동계의 절의를 높이 재평가해 영의정을 추증하고
정조대왕은 동계의 지조를 높이 사 손수 제문과 함께 시를 지어 보냈다고 합니다.
그 제문과 시는 현판에 새겨져 지금도 이 사당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정온선생은 나라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만이 영원히 모실 수 있는
'불천지위'가 되어 대대로 존숭되고 있습니다.
다시 사랑채로 나와 바라보니
대문간채를 지나 바깥의 너른 들판이 보입니다.
동계 이후의 초계 정씨는 북인이었던 탓에
중앙진출이 봉쇄되었다고 합니다.
동계의 9대손인 정기필(1800-60) 선생은
그는 현종.철종 연간에 영양현감을 지내면서 청렴한 인품과 덕망으로 명망이 드높았다고 하지요.
그가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거처할 곳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안의 현감과 고을 사람들이 뜻을 모아 집을 지어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동계고택 바로 곁에 붙어 있는 ‘반구헌(反求軒)’입니다.
반구헌은 반구제심(反求諸心), 즉 뒤돌아보면서 마음을 바로잡는다는 뜻에서 나온 당호라고 합니다.
사진은 동계고택 바로 옆에 위치한 반구헌의 모습입니다.
반구헌은 현재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지
문이 잠겨 있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거창 동계고택 찾아가는 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지곡IC→24번 국도→안의면→3번 국도→마리면→37번 국도→위천면-수승대 조금 못미쳐서 강동마을
거창의 다른 볼거리를 보시려면~
유홍준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따라가기-거창의 수승대 요수정 http://blog.daum.net/sunny38/11775721
유홍준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따라가기-거창 구연서원과 관수루 http://blog.daum.net/sunny38/1177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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