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란 이름은 '수군통제영'에서 나왔다고 하지요.
여행자에게 아름답게만 보이는 통영의 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걸고 왜군과 맞서 싸운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세병관은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며
1603년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으며
삼도수군통제사영 건물로 이용되었던 곳입니다.
세병관은 남만산공원에서 5분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통영 여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가는 곳입니다.
세병관은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두고 가기에는 '안타까운' 곳입니다.
사진은 국보 제 305호인 세병관의 전체모습입니다. (2010년 10월 29일)
세병관은 경복궁의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 중의 하나입니다.
세병관 내부로 들어서면 그 이유를 저절로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세병관을 찬찬히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병관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입장료 200원)
고개를 들어보면, 망일루가 여행자를 맞이해줍니다.
망일루..
해를 맞이하는 곳이라는 뜻이겠지요?
누각을 옆에서 바라보면..
누각 옆의 감나무가 눈길을 끌었던 곳..
누각에서 세병관의 문인 지과문에 들어서기 전 오른편을 보면
6대 통제사 이경준의 공적비 '두룡포 기사비'가 있습니다.
두룡포는 원래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경준이 이곳에 삼군수군통제영을 옮겨옴으로써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비문에 기록된 통제사 직책 유래가 재미있습니다.
'이순신이 적은 병력으로 적을 무찌른 공이 컸으나,
조정에선 마땅히 줄 관직이 없었고,
관직이 없으면 병사를 통솔하기 힘들기 때문에
특별히 통제사라는 관직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1593년 임시 변통으로 만든 직책이 300년을 이어졌고, 208명의 통제사를 배출했다는...
그외에도 비문에는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와 함께
통제사 이경준의 약력과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병관의 입구인 지과문..
세병관에 대한 설명을 하기전에 먼저 통제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지요.
세병관은 사실 통제영지의 많은 건물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이 위치한 곳으로
선조 37년(1604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년) 폐영 될 때까지
3도(경상, 전라, 충청)의 수군을 총 지휘한 관방 유적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의
한산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었습니다.
정유재란 이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마침내 천혜의 요항인 이곳 두룡포(지금의 통영시)에
제6대 통제사인 이경준이 본영을 창건하고부터
208대 홍남주 통제사 재임시 까지 무려 290여 년간
조선 수군의 총본영으로
오늘날의 해군본부와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세병관, 운주당, 백화당, 중영, 병고, 장원, 홍예문, 교방청, 산성청, 12공방 등
100여동의 관아들이 즐비해 있었으나,
지금은 세병관 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세병(洗兵)'은 '은하수를 끌어와 갑옷과 병기를 닦는다'는 말.
세병관 입구인 '지과문'도 '창을 거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으면,
군대 총사령부의 이름이 이렇게도 평화를 바라는 것이었을까요?
지하문 사이로 바라본 세병관의 모습..
어른 서너명이 누워도 될 만큼 큰 세병관 현판이 눈길을 끕니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 온 말이라고 하지요.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
뜻을 되새겨 볼수록 여러 생각이 듭니다.
세병관의 현판은 제 136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쓴 글씨라고 합니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의 단층 팔작집으로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흘림 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안으로 올라서보면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시설하였으며
안쪽의 중앙 3칸만은 한 단을 올려
궐패단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복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습니다.
여수의 진남관, 경복궁 경회루와 함께
평면적이 가장 넓은 3대 목조건축물로 꼽히기도 한다고 하지요.
세병관은 남아 있는 군사용 건물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습니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의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세병관 내부에 서서 우람한 기둥들을 바라보고
천장을 올려다보고, 들어왔던 지하문쪽도 바라보고..
세병관은 통제영의 중심 건물입니다.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모셨으며 전쟁에 나서는 군사들이 출사(出師)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사진은 궐패를 모셨던 궐패단의 모습입니다.
궐패단의 모습을 더 가까이서 담아봅니다.
궐패단은 조서시대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등에
통제사 이하 막하장수들이 나와
임금님께 예를 올리던 궐패와 전패를 안치했던 공간입니다.
궐패단 천정의 소란반자..
단3면(동,서,북)에는 정자살 분합문을 들어 올리도록 하였고
문위 동. 서쪽은 홍살로, 북쪽 제5열주는 판재로 막고 거기에 벽화를 그렸습니다.
통제영에 대한 개관은 <여지도서> 통제영 성지에 이같이 나온다고 합니다.
"성은 돌로 쌓았고, 둘레는 장(丈)으로 재면 1193장, 자(尺)로 재면 무려 1만1730자나 되고, 보(步)로 계산하면, 2346보가 된다.
높이는 장으로는 1장 반, 자로는 15자이다. 성가퀴는 707첩(堞)이다.
남문은 2층의 누문이고, 동·서문은 각 1층이며, 북문은 동서에 암문(暗門:숨겨져서 몰래 통하는 문)을 두었으나 누는 없다.
동·서·북쪽에 포루(砲樓) 세 곳이 있다. 원문(轅門) 2층 누각이다.
원문으로부터 왼쪽과 오른쪽은 바다에 닿아 있는데, 돌을 쌓아 막은 성채의 왼쪽은 길이 151보, 높이 13척,
오른쪽은 길이 202보, 높이 13척이며, 통제영으로부터 북쪽으로 10리 거리이다." 라고..
그 많던 통제영 유적 중 세병관만 온전하고 나머지는 10여개의 건물은 복원 공사중...
위를 올려다보면,
곳곳에 벽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단청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곳에서 한참을 놀았답니다.
사방이 탁 트인 건물이라 시원하기도 하였구요^^
전반적으로 건축물이 견고하고 위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넓은 시원한 마루에서 서서 바라보면
지과문 너머로 통영 시내가 바라다 보이고..
지과문을 나서며 바라보니
통제영의 누각과 통영시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세병관..
참 시원스럽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입니다.
건물의 전체적인 느낌이 여수의 진남관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였구요.
통영 가시거든,
통영의 아름다움들과 함께 둘러보아도 좋을 듯 하다는
여행자의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세병관 찾아가는 길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통영ic - 원문 검문소 지나 1시 방향 우회전 - 북신동 CV죤에서 우회전 -산복도로
-문화주유소앞3시방향 좌회전 내리막길 끝부분에서 3시방향좌회전 50m전방에서 2시방향우회전 100m좌쪽에 세병관
통영 세병관과 함께 거론되는 여수 진남관 보러가기~
남도의 봄소식-여수 진남관의 매화 http://blog.daum.net/sunny38/11774884
통영의 다른 아름다움들 보러가기~
한려해상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통영 미륵산 http://blog.daum.net/sunny38/11775046
이밖에도 통영의 전혁림 미술관, 해저터널, 동피랑 마을, 강구안 등을 다녀왔는데
아직 포스팅을 하지 못했네요.
가까운 시일 내에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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