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꽃이 피는 초봄보다
신록이 우거지는 늦봄이 더욱 좋은 곳이 있는데
이곳 남해 가천 마을도 그러한 곳 중의 하나인 듯 합니다.
맑고 청청한 쪽빛 바다..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하여 만든 층층이 계단식 논..
이런 풍경들이 잘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곳...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입니다. (2011년 4월 28일)
남해 바다의 쪽빛 물빛과 옥빛 하늘이 어우러지고..
노랗게 핀 유채꽃이 그 사이에 선연한 빛깔을 더하는 곳...
50여가구가 살아가고 있는 가천 마을은 지명보다
산비탈을 개간해 층층이 만든 계단식 '다랑논'으로 더 이름난 곳입니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경사지에 생김새가 다른 크고 작은 논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면,
이 땅에서 살아왔던 조상들의 억척스러움에 저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가천 마을에서는 오늘날도 소와 쟁기를 사용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지요.
마을에서는 쟁기질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농부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가천 다랑이 마을을 찬찬히 소개해보도록 할까요?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는 가천 마을이란 이정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층층이 새겨진 사람의 시간들...
바다로 곧장 곤두박질치는 가파른 지형..
층층이 다랑이논이 45도 경사의 설흘산 자락을 따라 바다까지 이어지는 풍경..
가천 다랭이 마을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무늬입니다.
이 무늬가 생기기까지 몇 백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지요.
눈이 시릴정도로 아름다운 바다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바다는 먹을 것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태풍이 일면, 곧바로 마을로 향하는 이곳..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돌을 날라 석축을 쌓고 흙은 넣어 논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108개의 계단식 논이 그렇게 생겨났다고 합니다.
683개의 논배미들이 땅의 모양새를 따라 알뜰하게 자리하였습니다.
너무 작아 아직도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논..
구불거리는 곡선의 무늬들에는 그 고단한 시간이 서려 있습니다.
척박한 삶이 빚은 다랭이 논에도 초록색 마늘이 자라고 있습니다.
마늘밭에서 밭일을 하는 부부의 모습은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봄 풍경화가 됩니다.
이곳에서 조금 더 왼쪽으로 돌아가면,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아래쪽으로 다랑논을 따라 층층이 내려갈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예전에 비해, 더 편리해지긴 하였지만..
어쩐지 옛맛이 나질 않아 조금 서운한 여행자입니다.
육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만과
바다 위의 작은 섬이 눈길을 끕니다.
쪽빛 바다 위에 유유히 지나가는 배들을 보고 있으니
한폭의 그림을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다랭이 논에는 '삿갓배미'란 유명한 일화도 전해집니다.
옛날에 한 농부가 김을 매다가
논을 세어보니 한 뙈기가 모자라 포기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삿갓을 들자 그 속에 한 뙈기가 숨어 있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이지요.
다랑논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중간 즈음에
암바위와 수바위로 이루어졌다는 가천 암수바위를 만납니다.
이 암수바위를 이곳 사람들은 미륵불이라고 부릅니다.
그리하여 숫바위를 숫미륵, 암바위를 암미륵이라 일컫습니다.
숫미륵은 남성의 성기를 닮았고,
암미륵은 임신하여 만삭이 된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암수바위에서 바라본 남해 바다..
이 암수바위는 이런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1751년 영조 27년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그 위로 우마가 다녀 몸이 불편하니
꺼내어 세워주면 필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현령은 이 암수바위를 꺼내어 미륵불로 봉안하였습니다.
도 논 다섯마지기를 이 바위에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어민들은 지금도 이 바위를 발견한 날인 음력 10월 23일을 기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뱃길의 안전과 많은 고기가 잡히기를 빌고 있습니다.
이 바위는 원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선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기능이 바다와 마을의 수호신으로 확대되어
미륵불로까지 격상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 지녔던 풍요와 다산의 기능은 그대로 유지되어
오늘날에도 아들을 갖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장소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마늘밭의 푸르름을 바라보며
해안가쪽으로 놀멍쉬멍 내려갑니다.
내려가다 올려다보니,
산은 온통 유초록빛...
다랑이 논의 석축의 높이가 보이시지요?
한뼘의 논을 만들기 위해 이리 높은 석축을 쌓고 논을 만들었다는..
가천 마을의 뒷산인 설흘산..
높이 488m의 나즈막한 산은 남해에서 일출 경관이 가장 뛰어난 곳이라고 하지요.
시간이 여유로운 여행자라면, 가천 마을을 출발해 되돌아오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니, 올라볼만 하겠지요?
다시 보아도 너무나 어여쁜 초록빛의 산이로군요.
조금 더 내려서자 남해의 쪽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남해의 바다빛깔이 이리 좋은 줄
요즈음 새록새록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면,
어여쁜 초록빛의 향연..
지기 시작한 유채꽃이지만, 그 초록빛깔만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빼어난 바다경치가 여행자를 사로잡는 곳...
해안가 바위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
그 바위위로 산책로가 나 있어 걷기에 좋습니다.
산비탈을 깎고 석축을 쌓아 만들어 놓은 다랑이 논...
이렇게 만든 다랑이논이 바닷가에서 설흘산 8부능선까지
촘촘한 등고선을 그리고 있는 풍경...
이곳에 선착장을 왜 만들 수 없었는지
알 수 있는 풍경입니다.
파도가 치는 날에는 거칠게 다가올 듯 합니다.
해안가를 뒤로 하고,
이제는 다시 올라가야 할 시간..
오르는 중간 즈음, 마을 가운데 밥무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밥무덤은 마을 중앙과 동, 서쪽 3군데에 있는데
매년 음력으로 10월 15일 저녁 8식경에 주민들이 모여 중앙에서 동제를 지냅니다.
제주는 한달전에 마을에서 가장 정갈한 사람으로 지정하는데
집안에 임신을 한 사람이 있어서도 안되고
잔치집이나 상가집 방문도 삼가하고
집 대문에도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이 제주집에 못들어 오도록
정성을 다합니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 마을 뒷산 깨끗한 곳에서
채취한 황토를 기존 밥무덤의 황토와 바꾸어 넣고
햇곡식과 과일, 생선 등으로 정성스럽게 상을 차려
풍농과 마을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며
제사를 지낸 밥을 한지에 싸서 밥무덤에 묻어 둔다고 합니다.
밥무덤 앞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쟁기질을 마친 소와 농부가 마을 위로 걸어 올라갑니다.
인사를 드렸더니, 본듯 만듯 하시고 갈길을 재촉하시네요.
아쉽지만, 뒷모습이라도...
남해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
새미끌집...
작은 명찰들을 달고 서 있습니다.
쟁기질하는 농부를 벽화에서 만날 수도 있고..
마늘을 심는 아낙네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바다쪽에서 설흘산쪽으로 올라가며 얹혀 있는 집들..
마을은 바다를 향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습니다.
마을은 관광이란 이름 아래 또 한번 변화를 맞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곳 마을은 누구하나 소외되는 이 없이 함께 잘 살기 위해 여러 장치를 고안하였다고 하지요.
그중 하나가 이들 모두는 트러스트 회원이라고 합니다.
1년에 5만원씩 회비를 내는 회원이 현재 700여명,.
마늘이 생산되는 6월에는 마늘 5kg,
햅쌀이 나오는 가을에는 햅쌀 5kg.
대보름에는 마을에서 수확한 봄나물이며 해초 3kg 을 보낸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수익금은 다랑이논의 유지, 보수에 쓰인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다랑이논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나이가 점점 고령화 되다보니, 휴경지가 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는군요.
오랜시간 동안 사람이 만들어 낸 무늬들을
지켜내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천 다랑이 마을을 떠나며, 돌아보니
마을은 초록빛 가득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배웅합니다.
요즘은 반갑게도 여행자가 걸을 수 있는 길들이 늘고 있지요.
이곳 남해에서도 남해 바래길이라하여 걷는 길이 있습니다.
남해 바래길 1코스인 다랭이 지겟길은
평산항에서 시작되어 사촌 해수욕장을 거쳐
명승 15호인 가천 다랑이 마을까지 이어지는 해안의 걷는 길입니다.
그 외에도 남해 바래길 2코스인 말발굽길은
남해 삼동면 지족마을에서 시작하여 적량해비치 마을까지..
남해 바래길 3코스는 고사리밭길로
적량 해비치 마을에서 시작하여 창선동대만 휴게소까지..
국사봉 자락에 고사리가 많아 고사리밭길로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남해 바래길 4코스는 진지리(잘피)길로
창선 동대만 휴게소에서 시작되어 창선, 삼천포 대교까지 이어지는 길입니다.
시간이 허락할 때, 어여쁜 해안을 따라 걸어보는 일도 좋을 듯 합니다.
남해 가천 다랑이 마을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남해, 진교ic -남해대교- 19번 국도를 타고 14km쯤 직진하다 - 신전 삼거리에서 우회전 - 계속 직진하면 가천 다랑이마을
또는 남해고속도로 사천 IC - 사천 방향으로 직진 - 삼천포 대교 - 지족삼거리- 가천 다랑이 마을
남해의 아름다운 관광지들을 더 보시려면,
은빛 찬란한 멸치축제- 남해 미조항 멸치털이(보물섬 미조 멸치축제) http://blog.daum.net/sunny38/11775497
매혹적인 바다빛깔,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우는 아름다운 항구- 남해 미조항 http://blog.daum.net/sunny38/11775487
남해의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독일마을 http://blog.daum.net/sunny38/11775490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노오란 유채꽃의 바다-창선,삼천포 대교 http://blog.daum.net/sunny38/11775464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들었던 창선, 삼천포 대교 http://blog.daum.net/sunny38/1177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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