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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호남 천주교의 뿌리이며 100년이 넘은 고딕식 성당-대구 계산성당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은 흔히 1784년 사신 일행으로

중국 베이징에 갔던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돌아왔을 때로 말해집니다.

 

한국에 교구가 생긴 건 그로부터 50년 후쯤인 1831년..

 

로마교황청이 조선교구를 설립해 초대교구장으로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한 것이 한국천주교 교구의 시초입니다.

 

이후 80년만인 1911년 서울교구와 대구교구로 분리되어

대구교구는 경상, 전라, 제주 지역을

서울교구는 나머지 지역을 관할하게 됩니다.

 

대구교구가 영호남 지역의 천주교의 뿌리라고 말해지는 이유입니다.

 

이후 우리나라 천주교 교구는 분리를 계속하여

1962년에 대구교구는 대구대교구로 승격됩니다.

 

대구대교구의 중심이며, 주교좌성당인 계산성당을 소개합니다. (2011년 5월 1일)

 

또한 이곳 계산성당은 1902년 세워져

100년이 넘게 저 자리를 지킨 '고딕식'으로 지어진 성당입니다.

 

 

 

 

길건너에서 바라다보니,

계산성당과 나란한 건물 벽에는 모자이크화들이 걸려 있습니다.

 

태극기..

이상화선생과 서상돈 선생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당 근처 골목에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이 자리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두 고택은 나중에 따라 올려보도록 하지요.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올려다본 나무에 방아찧는 토끼가 걸려 있습니다.

 

계수나무라고 하는군요.

계산동이란 이름이 계수나무와 관계가 있나봅니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천주교 전교가 트이고

대구본당 초대 주임으로 프랑스 선교사 로베르(한국이름 김보록) 신부님이 임명됩니다.

 

처음에는 박해를 피해 산골에 꼭꼭 숨어 지내다가

1899년 현재의 자리에 성당을 짓게 됩니다.

 

 

 

 

당시 로베르 신부님은 성당 자리로 현재의 자리와 그 서편 동산 두 곳을 놓고 고민하였는데

"높은 허허벌판 구릉에 성당을 지을 수 없다"는 노인 신자들의 고집에 밀려 지금의 자리를 선택하였답니다.

 

처음 지어진 성당은 지금의 서양식 고딕 건물이 아닌

한옥 기와지붕의 십자형 건물이었답니다.

45칸이나 되는 큰 집이었고, 지붕 한가운데 대형 십자가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 무렵 지어진 약현성당(1892년), 인천 답동 성당(1896년), 종현성당(1898년)이

모두 서양식 뾰쪽집인 것을 볼 때,

로베르 신부님과 신자들이 건물을 통해서나마 신앙의 토착화를 위해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성당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성당은 건립된지 40일만에 불타 없어지게 됩니다.

당시 대구에 큰 지진이 있었는데

제대에 켜 놓은 촛불이 넘어지면서 성당 전체로 옮겨 붙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네번째로 세워진 성당이자

당시 유일한 순수 한식성당은

그래서 지금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지금의 성당은

"천주께서 우리의 신덕을 시험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시고자 하심인 줄로 받아들이고 성당을 더 잘짓기로 한마음으로 협력하자"는

로베르 신부님의 호소문에 신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추렴하여

1902년에 다시 세운 건물입니다.

 

대구에서는 처음 세워진 서양식의 건물이며

현존하는 1900년대의 성당건축물로 유일한 것이라고 합니다.

 

설계는 로베르 신부님이 직접하고

중국에서 벽돌공과 미장이, 목수를 데려와 일을 시켰다고 합니다.

 

 

 

 

당시의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이

3.1운동 길에 걸려 있더군요.

 

카메라에 담아 모셔왔습니다.

 

 

 

 

출입구 위 두 개의 종탑을 나란히 뾰족하게 올린 '전면쌍탑'

 

위쪽의 사진을 보면,

그 탑 사이에 커다란 '장미꽃 창'을 만들어

성당 안을 환하게 밝히게 하였습니다.

 

 

 

 

성당 안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성수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다녀가셨다고 적혀 있군요.

 

 

 

 

내부로 들어서니

혼배미사가 한창입니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데,

방해가 될 듯하여 뒤에서 몇장만 찍고 나옵니다.

 

 

 

 

제대 위의 스테인드 글라스..

 

사진의 오른쪽 아래를 보면, 독특한 십자가 모양들이 궁금해집니다.

 

그것은 성당 축성 때 로베르 신부님이 만든 축성패로

문양과 색채가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채 지금도 또렷합니다.

 

 

 

 

뒤쪽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몇 장 담아 보았습니다.

 

 

 

 

이 스테인드 글라스들은

성단 건립 때 프랑스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12사도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은 또한 한국의 성인 6분을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넣은 곳인데,

 

앞쪽으로 가야하는데, 혼배미사 중이라

팜플릿의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답니다.

 

 

 

 

성당의 옆면..

 

 

 

 

이 성당의 전체적인 구조는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지만

평면 구성은 라틴십자형 3랑식 공간의 전형적인 고딕 양식이라고 합니다.

 

 

 

 

외벽은 화강석 기초석 위에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을 쌓았습니다.

 

이곳 계산 성당은 주교좌 본당이 되면서

신자들이 급속히 늘자

1918년 증축공사를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합니다.

 

이때 종탑의 지붕도 두 배가량 높여 더욱 뾰족해졌다고 합니다.

 

 

 

 

성당 옆쪽의 나무 한그루..

 

이 나무는 감나무로서 이인성(1912-1950년) 나무로 불리운다고 합니다.

 

이인성은 대구 출신의 화가이며

수령이 100년 쯤 된 이나무는 1930년대에 그린 그의 그림, 계산동 성당의 배경이 되어

현재는 이인성 나무로 불리운다고 합니다.

 

 

 

 

성당의 옆면의 작은 동산..

 

 

 

 

 

그 동산에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거로 떠나는 여행..

대구에서는 골목만 돌아보아도 가능한 일입니다.

 

동산 의료박물관, 3.1운동길,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진골목..

다양한 역사를 가진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대구 계산성당 찾아가는 길

 

북대구 IC - 신천대로 수성교 방향 - 수성교에서 우회전 - 반월당네거리 - 동아쇼핑 - 계산성당

 

또는 동대구역 -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1번 출구(약령시 방향)-계산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