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에서 북쪽으로 약 3km 떨어져 있는
카르낙 신전은 파라오 시대에는 '이페트슈트'라고 불리웠습니다.
그 의미는 "가장 완벽한 곳" 이란 뜻이었다고 합니다.
아몬대신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카르낙 신전은
현재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 가운데 최대 규모의 신전입니다.(2011년 1월 23일)
신왕조시대의 파라오들이 아몬신을 숭배하기 위해서
2000년 동안 계속 건립하고, 해체하고, 복구하면서
그 화려함이 더해진 거대한 신전입니다.
또한 이곳은 세계문화유산 2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규모나 내용면 모두 대단한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심사관들이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세계문화유산 1호로 지정한 뒤에 와서 보고
1호가 아닌 2호로 지정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을 정도라고 하지요.
위의 사진은 카르낙 신전의 첫번째 탑문과 그 앞에 길게 늘어선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들로
탑문 뒤에는
또 다른 탑문..
긴 다주식 홀..
또 다시 탑문으로 이어지는 곳입니다.
호모의 일리아드에서는 이곳을 "100개의 관문을 가진 거대한 도성"이라며
그 화려함을 언급하였다고 하지요.
바로 이곳, 134개의 기둥을 가진 거대한 다주식 홀을 보고 한 말이라고 합니다.
다주식 홀에 서서 위를 바라보며
그 거대함에 할말을 잃게 됩니다.
이제 카르낙 신전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보도록 하지요.
입구의 안내소에서는 검색대를 거치고 나면,
카르낙 신전의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18만평이나 되는 신전으로
중앙에 아몬신전이 있고, 좌우로 부인 무트신전과 아들 콘슈신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외에도 오시리스 신전, 이시스 신전..
여러 왕들이 세운 작은 신전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안내소를 지나와 맨 처음 만나는 풍경
멀리 첫번째 탑문이 보이며, 간간이 서 있는 대추야자 나무들만이
이 황량한 땅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곳은 피라미드, 왕의 계곡과 함께 이집트 3대 볼거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이라고 하네요.
또한 이곳은 영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첫번째 탑문 오른쪽에는 무엇으론가 사용되었을 돌무더기들이 보입니다.
이슬람 사원의 지붕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의 모습도 보이고..
고대 이집트 시대 이후로
그리스 정교회와 이슬람 사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그 긴 역사만큼 많은 변화를 겪었던 곳이라고 하니
그 변화의 부산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카르낙 신전 첫번째 탑문 앞에서
입장권으로 찍는 기념컷~
이 신전을 대표하는 다주식 홀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작은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고
그 뒤로 람세스 2세가 만든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상이 42개가 양쪽으로 도열해 있습니다.
숫양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한 스핑크스는
아툼이라고 불리우며
예전에는 이곳에서 룩소르 신전까지 약 2km에 걸쳐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대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룩소를 신전을 보시면,
신전 바깥쪽에 이런 스핑크스가 이렇게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대로를 보실 수가 있습니다.
반대편의 스핑크스상들
룩소르나 이곳 카르낙 신전을 잘 이해하려면
신왕국 시대의 종교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고대 이집트이 신들은 크게 4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방신 오시리스 신화에 관련된 신,
태양신,
신전은 없으나 원래 파라오만이 가지고 있던 신,
신왕국 시대 이전의 수많은 신들을 섬기는 다신 숭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신들은 각각의 기원 신화를 가지고 있었고
다양한 형태로 숭배되었다고 하지요.
룩소르 유적지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아몬 신은
원래 중부 이집트의 헤르모폴리스에서 숭배된 여덟 신 가운데 하나였으나
고왕국 시대 말엽에 테베로 숭배지가 옮겨간 것입니다.
테베가 아직 작은 마을이었을 때
아몬은 숫양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세력이 없는 지방 신 중 하나에 불과했던 아몬은 테베의 군대가
힉소스 족을 몰아내고, 이집트를 재통일한 후, 강력한 국가신으로 등장합니다.
즉 신왕국 시대에 들어 사제들은 아몬의 위상을 우주의 창조신으로
격상시킨 것입니다.
숫양은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으며
나일강을 지배하는 크놈신으로 숭배되기도 하였답니다.
독특하게도 양머리를 한 스핑크스의 발치에는
오시리스의 모습을 한 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탑문
성채처럼 높다랗게 보이는 탑문의 전면으로
위쪽에는 마치 인간의 눈처럼 뚫려 있어,
외부의 침입자를 경계하던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곳 카르낙 신전은 모두 10개의 탑문까지 있으며
앞쪽이 가장 최신의 건물이고,
안으로 들어 갈수록 오래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카르낙 신전의 평면도입니다.
맨 앞쪽의 점선으로 표기된 부분이 방금 본 스핑크스 길
그리고 제 1탑문이 있고
그 뒤로 탑문들이 길게 이어진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전들이 있는데
각기 다른 왕조, 다른 파라오들이 세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 1탑문에서 뒤돌아 본 풍경
고대 이집트 문헌에 오페트 축제를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이 스핑크스 길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일년에 한번, 오페트 대축제 때
아몬 신은 '남쪽의 하렘'인 룩소르 신전에 있는 무트 여신을 만나러 가기 위해
카르낙 신전에서 행렬을 지어 나온다
테베는 이날 환희에 넘친다
사람들은 성스러운 작은 배에 신상을 모시고 행진하고
나룻배는 전차, 군인, 사제, 가수, 음악가들과 군중을 대동한다.
행렬은 700여 개에 이르는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쭉 늘어선 길을 지나간다.
이 길은 카르낙 신전에서 룩소르 신전으로 이어진다
돌아올 때는 행렬이 나일강 쪽의 길을 이용한다>
제1탑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타하르카의 주랑이 보입니다.
먼저 주랑 왼편의 모습으로
왼편은 세티 2세의 신전입니다.
작은 방들과 그 옆으로 이어진 열주들..
밖에서 보기에 신전의 형태는 갖췄으나..
안으로 들어서면,
내부는 벽화가 거의 사라진 상태입니다.
제 1탑문의 뒷부분으로
돌벽이 서로 다른 세개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세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타하르카의 주랑 한가운데는
압도될 정도의 거대한 기둥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은 보시면
그 크기를 짐작하실 수 있을겁니다.
타하르카 주랑에는 이런 거대한 기둥이 여러개였는데
하나만 빼고 다른 기둥들은 이렇게 잘려져 있습니다.
타하르카 주랑 부분을 설명하는 안내도
붉은 부분이 타하르카 주랑입니다.
맨 왼편의 사진은 제 2탑문과 타르하카 주랑의 발굴 당시의 모습이네요.
다른 사진들은 발굴 당시 모래와 돌무더기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의 모습이구요.
이제 다음은 타하르카 주랑의 오른편에 해당하는 곳으로
람세스 3세의 신전입니다.
신전 입구와 그 옆으로 열주가 늘어서 있으며
열주 앞에는 마찬가지로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들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1탑문의 모습과 람세스 3세 신전의 모습이 보이는군요.
주랑의 넓이를 짐작케 합니다.
이제 람세스 3세 신전으로 들어가 봅니다.
람세스 3세 신전 입구의 좌우에는
람세스 3세의 상을 세워 놓았습니다.
다른편의 석상은 얼굴 형채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부서져 있는 상태이네요.
석상 뒤편의 부조를 보면
두 개의 큰 깃털 장식을 한 아몬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람세스 3세 신전을 들어서면..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석상들..
입구 위쪽에 새겨진 부조
다른 신전에서 보았던 태양과 코브라가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람세스 3세의 신전은 작은 신전이라 불릴만큼
이곳 카르낙 신전에서 규모가 그리 크지않은 곳이라고 하나
거대한 기둥들이 세워진 방이 이어져 있어
여행자의 눈에는 충분히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 당시에는 파라오만이 신전에 모셔놓은 신을 대면할 수 있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파라오가 '신을 모시는 최고의 종'인 대사제에게
여러가지 의식을 위임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하지요.
그리하여 신왕국 시대에 거대해진 신전만큼이나
신전과 성직자들은 엄청난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신전에 딸린 농경지는 대부분 파라오의 칙령으로 세금을 면제 받았고
람세스 2세의 통치 기간인 기원전 1250년경에는
카르낙 신전은 인부 8만명과 가축 400마리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였답니다.
람세스 3세 신전 내부의 벽화
채색이 되었던 흔적도 볼 수 있고
위쪽의 채광창으로 빛이 들어 올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다시 타하르카 주랑으로 나갑니다.
거대한 두번 째 탑문이 서있고
그 앞에 람세스 2세의 석상과 거대한 기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둥근 기둥은 연꽃 줄기를
위에 둥글게 펴진 모습은 파피루스의 꽃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합니다.
람세스 2세의 거대 석상
그 석상의 발치에는 람세스 2세가 가장 사랑한 딸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제 2탑문 안쪽으로 들어섭니다.
제18왕조의 호렘헤브 때 만든 것으로
거대한 크기에 수많은 부조들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탑문 안쪽으로 길게 늘어선 대열주식 홀
무려 134개의 거대한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는 이곳은
카르낙 신전의 백미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기둥은 하나하나 채색되어 있었으며
하나하나 부조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채색은 4000여년의 세월로 인해 많이 바래긴 하였지만..
중앙 통로를 기준으로 좌우 양쪽에 각각 67개씩
늘어서 있는 134개의 열주는
1은 풍요를, 3은 강함을, 4는 온 세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래쪽의 사람과 열주식 홀의 기둥..
거대함에 그저 말문이 막히는 곳입니다.
이 홀은 길이 102m, 넓이 53m 의 장방형으로 되어 있으며
파리의 노틀담 사원을 거뜬히 포함할 수 있을만큼 넓은 곳입니다.
기둥 하나의 높이가 23m, 기둥 하나의 둘레가 15m 에 달한다고 합니다.
실로 <거대한 기둥숲> 이라고 말할만 하지요?
기둥 위쪽은 원래는 지붕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듯 합니다.
수많은 카투쉬와 성형문자들이 그려져 있고
채색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둥의 높이를 달리해 채광이 잘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홀은 룩소를 신전을 건설한 제 18왕조의 아멘호텝 3세가 12개의 기둥을 세운 이래
19왕조의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을 보았는데
건설하는데 동원한 연인원이 8만 2천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 신전을 둘러보고, 감탄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전 출입은 통제되었고
신전 내부의 모임도 없었습니다.
제의는 일부러 신비화하기 위해
건물 안쪽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방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신전 외벽은 신전을 보호하고
내부의 신성한 장소의 경계 역할을 하였습니다.
신전은 창조의 언덕이 혼돈의 늪지대에서 솟아오르던 창세를 나타내는 일종의 소우주였습니다.
성소 앞의 이 다주식 홀은 늪지를 상징하고
기둥은 늪지의 식물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주식 홀보다 성소가 한 층 더 위에 있어서
성소가 솟아오르는 창세의 언덕이 되고
성소에 있는 석상에 나타난 신이 창조자가 됩니다.
다주식 홀의 기둥들에 새겨진 부조
람세스 2세가 음식을 아몬 신에게 바치고 있습니다.
왕은 몸을 앞으로 살짝 굽혀 무언가를 바치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는 아멘호텝 3세 시대에 이미 등장하였고
람세스 왕들의 시대에는 일반화 되었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이곳의 장식은
신이 왕을 영접하는 장면, 축제, 신성한 배의 행진, 신전 제사 등
왕과 신에 관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주식 홀을 빠져 나오면
신전은 오벨리스크와 다시 탑문,신전으로 이어집니다.
잠시 다주식 홀에서 정면을 향해 직진하는 걸 멈추고
왼편으로 나가봅니다.
바깥 쪽에는 신전의 잔해들이 보이고..
대열주식 홀의 바깥쪽 벽에는
파라오들의 군사 원정을 묘사하는 전투장면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부조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왕이 중심 인물로서
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왕의 아래 있는 적은 여러 개의 팔과 머리들이 중첩되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혼돈 속에 있는 적들을 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집트 왕은 그들에게 질서를 부여하고
그들을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끌고와
신에게 그들을 바친다고 합니다.
다주식 홀의 북쪽 외벽에 그려진 또 다른 부조
오른편을 보면,
말을 탄 세티 1세가 재위 첫해 가나안의 사수(팔레스타인 남부와 시나이 반도에 다니던 베두인들)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은 한쌍의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혼돈 속에 있는 적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왕의 위에는 태양 원반과 흰목 대머리수리의 신 네크베크가 왕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다주식 홀 바깥쪽에서 바라본 오벨리스크
다주식 홀을 지나 제 3탑문과 4탑문 사이에 좁은 마당이 나옵니다.
이곳에는 투크모세 1세와 3세가 세운 두쌍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으나,
세 개는 간 곳이 없고, 지금은 이것 하나만 홀로 서 있습니다.
투트모세 3세가 세운 오벨리스크와 다른 한쪽에 보이는 하트셉수트 여왕이 세운 오벨리스크..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사람의 오벨리스크가 나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왼편은 세번째 탑문, 오른편은 네번째 탑문이 보입니다.
현재 남은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23m,
무게는 무려 143톤이나 나가는 한 덩어리로 만들어진 돌입니다.
오벨리스크는 원래 쌍으로 세우는 법이지만
이집트에 남아 있는 오벨리스크 가운데 쌍으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하지요.
대개는 정부의 방관 속에 외국으로 반출되거나
후계자들에 의해 부서지는 비운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오벨리스크 만드는 방법은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소개할 때 설명하였었지요.
누워있는 대작, 미완성 오벨리스크 http://blog.daum.net/sunny38/11775390 를 클릭해 보세요^^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
다른 하나는 신성한 연못 근처에
부서진채 누워 있습니다.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 안쪽으로는
신전의 건물들이 부서진 채 이어집니다.
여러 파라오들에 걸쳐, 여러 세대에 걸쳐 만들어진 신전들이
이어집니다.
거대한 조각상들.. 거대한 돌들..
부조가 새겨진 벽들...
부서진 잔해..
이것은 어느 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물들일까?
궁금해지는 여행자입니다.
센우세르트 1세의 신전터가 아닐련지.. 하고 조심스런 추측을 해봅니다.
기둥은 독특하게도 아래보다 위가 더 배부른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둥근 원형의 상태가 아닌
여러갈래의 주름을 새겨넣은 형태를 하고 있구요.
그리고 뒤쪽에는 투투모세3세의 축제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전을 향해 가는 길..
그 앞에는 신전의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입구로 들어서자 다시 거대한 열주홀
이곳 홀은 천정과 기둥에 채색되었던 흔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천정은 하늘의 이미지를 띠고 있고,
이렇게 하늘의 별들이 천정에 가득 새겨져 있습니다.
채색된 기둥들..
열주홀의 중심에 서서 뒤돌아 보면,
멀리 1탑문까지 이어진 길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곳 제일 안쪽에 위치한 지성소
이곳은 아침 저녁, 해가 뜨고 질 때
빛이 이곳 지성소까지 들어온다고 합니다.
동서로 오픈된 구조 때문인 듯 합니다.
투트모세 3세의 축제전을 뒤로하고 나옵니다.
이곳이 카르낙 신전의 어느부분인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안내도
붉은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기둥에는 콥틱교도들이 그려놓은 성화도 있다는데
보질 못했군요.
다시 뒤로 돌아 나가는 길..
이제 신전의 오른편에 해당하는 쪽으로 이어지는 투트모세 3세의 신전,
하트셉수트 여왕이 세운 탑문, 성스런 연못이 있는 쪽으로 나가봐야 합니다.
신전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건물들이 튀어 나오는 듯..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가 있던 곳에서
오른편으로 나오면,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의 부서진 조각과 넓은 광장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성스런 연못이 보입니다.
투트모세 3세가 실권을 잡은 후
하트셉수트가 만들었던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고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을 설명할 때 말씀드렸었지요.
이 오벨리스크도 투트모세 3세가 파괴한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입니다.
아버지인 아몬 신으로부터 왕관을 받아쓰는 여왕의 모습을 그려놓은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벨리스크 앞쪽에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신성갑충 조각상입니다.
이것은 어둠을 물리친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아침에 다시 탄생하는 파라오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석상을 돌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동, 서양 사람들을 막론하고, 누구나 줄서서 도는 진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세번째 탑문의 바깥쪽에 해당하는 벽에는
파라오들의 석상들이 서 있습니다.
이곳 석상도 얼굴이 파괴되어 있군요.
그리고 이곳과 마주하고 선 성스런 연못..
사제들은 제사를 드리기 전에
이곳에서 몸을 씻어 마음과 몸을 정화하였다고 합니다.
연못에 비친 카르낙 신전..
연못에서 오른편으로 계속 가면
하트셉수트 여왕이 여덟번 째 탑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출입금지..
탑문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이 녀석들의 차지인 곳이지요.
하지만, 이곳을 지키고 서 있던 관광경찰은
여행자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안쪽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오라고 하는군요.
탑문 앞쪽에는 부서져가는 거대 석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편으로 갈수록 점점 부서져 가는 석상들이로군요.
호렘헤브 때 세운 아홉번째 탑문에도
올라갈 수 있게 해주네요.
제9탑문에서 바라본 카르낙 신전의 모습입니다.
제9탑문 위에 고개만 내밀고 바라보니
크논신전의 모습도 살짜기 보입니다.
열번째 탑문의 모습도 보이구요.
다시 돌아 카르낙 신전의 입구쪽으로 나갑니다.
투트모세 3세가 세운 일곱번 째 파일론의 정면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앞에도 거대한 파라오들의 석상이 서 있습니다.
이곳은 처음에 보았던 람세스 3세의 신전 뒷부분에 해당하는 곳인 듯...
그리고 처음에 봤던 1탑문 근처의 타하르카 주랑에 다시 서봅니다.
이제 발로만 남겨진 조각상..
오직 한발만 남겨두고 사라진 조각상이 어쩐지 짠하군요.
카르낙 신전 앞의 스핑크스들 뒤로 돌아 나옵니다.
4000여년 전에 만들어진 거대한 신전은
여행자에게 생생함과 웅장함으로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축제의 공간이고
산자들이 신과 만나는 기원의 공간이었던 신전...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의 카르낙 신전에 관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글을 마칩니다.
“엄청난 인파가 카르낙 신전 주위에 모여들었다.
금빛 대문이 열리고 왕과 그의 아들이 선두에 선 행렬이 모습을 나타내자, 환희의 물결이 넘쳐흘렀다.
이처럼 신들께서 땅 위에 계시므로 올해는 행복한 한 해가 될 거라는 즐거운 기대에 모든 이들이 들뜨기 시작한 것이다.
행렬은 둘로 나뉘어 나아갔다.
하나의 행렬은 카르낙과 룩소르를 이어주는 스핑크스 길을 따라 육로로 가고,
또 하나의 행렬은 카르낙 신전의 부두에서 룩소르 신전의 부두까지 나일강의 수로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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