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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여행(Egypt)

이집트 최초의 여왕이 만든 장대하고 아름다운 하트셉수트 장제전-이집트47

 

 

 

룩소르의 서안...

멤논 거상에서 약 1km 정도 걸으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에

놀랍게도 거대한 신전 하나가 그 자태를 드러냅니다.

 

이른바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이라고 불리우는 신전입니다. (2011년 1월 23일)

 

 

 

 

이곳은 왕가의 계곡의 산등성이 너머로

장제전을 마주보고 선 상태에서 오른편을 보자면,

이집트인들이 왕가의 계곡 쪽으로 넘어 다니는 길을 볼 수 있습니다.

 

왕가의 계곡에 묻히고 싶어했던 여왕은

왕가의 계곡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고

그 암벽의 반대편에 신전을 세웠다고 합니다.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황량한 계곡..

그 계곡 사이에 자리한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이 거대한 건축물에 다가가기 전에

그 뒤에 우뚝 선 봉우리에 먼저 압도 당하는 여행자입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이라고 불리는 이 신전은

19세기 중엽의 프랑스 고고학자 아우구스트 마리에트가 발굴작업을 시작하여

1896년에 발굴을 끝낸 유적지입니다.

 

이 장제전은 아랍어로는 데이르 엘- 바흐리 라고 불리는데

그 의미는 "북쪽의 수도원" 이란 뜻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 고대의 유적지를 수도원으로 사용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장제전 입구에서 내리니,

용도를 알 수 없는 탑문이 황량한 벌판에 서서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멀리로는 귀족들의 분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입구에서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까지는 한참의 거리입니다.

걸어가느냐구요?

햇살이 뜨거운 나라에서 한낮에 그 햇살아래를 걷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듭니다.

 

대신 이렇게 작은 열차를 타고 하트셉수트 장제전까지 이동을 합니다.

왕가의 계곡에서도 이런 열차를 타고 갔으니

이곳 룩소르에서 이동수단으로 애용되는 열차입니다.

 

 

 

 

물론 걸어가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기는 합니다.

모래 먼지와 뜨거운 햇살을 참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에서 돌아본 입구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 하안 신전이 개방형 둑길을 통해

장례신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입장권으로 인증샷을 한장 찍구요~

 

 

 

 

제 18왕조의 5대 파라오인 하트셉수트는 AD 1479-1458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3층의 거대한 테라스와 수십개의 기둥, 조각상을 세워 만든 장제전...

하트셉수트는 파라오란 칭호가 부여된 유일한 여성이며

이집트 최초의 여왕입니다.

 

세층으로 된 신전은 아래 두층은 커다란 뜰이 중앙 진입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층에는 열주식 뜰이 있고,

양쪽에 방들이 있으며, 아문라의 성소가 벼랑 안쪽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례 신전의 평면도입니다.

 

이 신전은 아문라에게 바쳐진 것으로

하트셉수트 자신과 그녀의 아버지 투트모세1세,

그녀의 할머니 세니소네브와 어머니 아흐모세의 제사 장소였습니다.

 

또한 이곳은 신 아문의 배가 왕의 장례 신전을 방문하기 위해

서편 둑으로 나아가 마침내 데이르 엘 바흐리의 와디에 이르는

와디 축제가 끝나는 장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첫번째 뜰을 지나 경사로를 오르며 돌아본 풍경

 

멀리로 룩소르가 펼쳐져 있습니다.

 

 

 

 

경사로를 조금 올라서면,

하층 주랑들이 보입니다.

 

하층 주랑은 수리중인지, 원래 개방을 하지 않는 곳인지

밧줄이 둘러져 있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층 주랑은 왼쪽은 날개 모양으로 꺾여져 만들어져 있구요.

 

 

 

 

그 한쪽에는 파라오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든

하트셉수트 여왕의 동상이 하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사로를 더 올라서면..

두번째 뜰에 당도합니다.

 

기둥들이 만드는 세로줄이 신전 뒤 벼랑에 있는 세로줄 무늬와 조화를 이룹니다.

 

 

 

 

두번째 뜰에 서서 뒤돌아본 풍경...

 

 

 

 

두번째 뜰에서 왼편을 바라보니

부서진 신전과 하토르 신당의 벽면 일부가 보입니다.

 

 

 

 

부서진 이 신전은 아몬호텝을 위한 신전이라고 합니다.

 

아몬호텝은 하트셉수트 여왕의 후대의 파라오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신전의 벽면을 장식하고

기둥을 지탱하였을 돌들이 이제는 아무 의미없이

바닥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뒤쪽의 벽면이 보이는 곳이 위의 평면도에서 5번에 해당하는

하토르 신당입니다.

 

 

 

 

하토르 신당 입구의 벽면 부조..

 

이 신전은 하토르 여신을 위해 바쳐진 곳으로

하토르 여신을 상징하는 소의 모습이 곳곳에 부조되어 있습니다.

 

 

 

 

신당 입구에는 이렇게 양쪽으로 두개의 커다란 벽면이 자리하고 있어

신전의 파이론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곳 벽면에도 하토르 여신을 상징하는 암소와 파라오가 그려져

여신과 파라오를 동일한 위치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하토르 신전 내부

지금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열주 기둥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던 곳입니다.

 

 

 

 

신전 뒤쪽의 벽면에는 하토르를 상징하는 암소의 모습만 남아 있습니다.

 

 

 

 

이쯤되면, 하트셉수트 여왕은 과연 어떤 이였을까?

궁금해시지시요?

 

그녀는 미스터리의 이집트 여왕...

역사에서 지워진 이집트 여왕...

이집트 최초의 여왕이라고 불리우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기원전 1500년 경,

투트모세1세와 아흐모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하트셉수트는 고귀한 여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 투트모세 1세는 네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어려서 전부 죽고 하트셉수트 공주만 남겨졌습니다.

 

당시 파라오 왕실은 왕가의 피를 보호하려는 전통에 따라 근친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런 전통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결혼은 친형제 자매간의 결혼이었으나

하트셉수트 공주에게는 친오빠나 남동생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 투트모세 1세와 여러 첩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 동생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이집트 왕가의 결혼을 살펴보면

근친결혼 외에도 한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파라오의 왕권은 왕비 우선 순위 1위와 결혼하고 있는 동안에만 정통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파라오는 그의 왕비가 생존해 있는 경우에 한해

파라오로서 군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왕권의 모계 상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단적인 예가 람세스 2세입니다.

람세스 2세의 경우는 자기 딸들은 물론,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와도 결혼했다고 하지요.

 

 

 

 

다시 하트셉수트 여왕의 이야기로 돌아가봅니다.

 

그리하여 하트셉수트 여왕은 이복동생인 투트모세 2세와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일찍 사망함으로써 20세 초반에

왕비 순위를 1위로 가진 미망인이 되었습니다.

 

그녀와 투트모세 2세와의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반면 투트모세 2세와 첩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아직 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아들은 투트모세 3세로 즉위하고

그녀는 어린 남편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문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였던 이 야심만만한 여인은

양아들 투트모세 3세의 이름으로 이집트를 통치하는 것이 불만이었다고 하지요.

 

 

 

 

신전 내부의 기둥들에는 아름다운 부조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상, 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왕관을 쓴 호루스 신의 부조도 보이고..

 

 

 

 

아름다운 얼굴에 소의 귀를 하고 있는 하토르 여신의 석상도 보입니다.

 

 

 

 

하토르 신전 안쪽에 아름답게 채색된 벽화들..

 

하트셉수트 여왕의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그녀는 부왕인 위대한 파라오 투트모세 1세와 할아버지이자 제 18왕조를 개조한 아흐모세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제 소년에 불과한 파라오는 따지고 보면

자신의 신분과 비교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녀는 자신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왕좌에 오를 자격이 누구보다도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아버지인 투트모세 1세가 즉위한 지 1년 7개월쯤 되었을 때

룩소르 신전에서 신탁을 받았었다고 하지요.

 

"룩소르 신전 대전정에서 두 대지가 나의 것임이 선포되었도다.

 바로 완벽한 신(네테르 네페르:왕)이 보는 앞에서 신탁이 내려졌도다"

 

파라오에게나 내려지던 신탁이 내려졌다고 한 것이지요.

두 대지가 나의 것~ 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하토르 신당 안쪽의 성소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성소의 입구 벽에는 왕이 긴 관을 쓰고, 한손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부조로

하토르 여신을 향해 경배하고 있는 것이지요.

원래는 아름다운 색조로 칠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은 두 개의 타조 깃털을 양쪽에 단 백색 오시리스의 전용 왕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하토르를 상징하는 소의 젖을 먹고 있는 벽화로

하토르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하늘, 사랑, 기쁨, 결혼, 춤의 여신입니다.

 

이 벽화의 의미는 신탁이 다시금 계승되어진다는 것입니다.

 

테베의 여주인이며, 하늘과 대지의 여주인인 하토르 여신은

여왕에게 젖을 물려 신탁이 이루어지게 한 것입니다.

마침내 하트셉수트 여왕은 "거대한 좌석, 신의 계단"에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신은 자신의 팔을 알 위로 드리웠다" 라고 하여

하트셉수트가 자신의 어머니 하토르 여신으로부터 수유를 받는 장면이 벽화로 재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토르 신당의 곳곳의 벽화에는 암소 모습을 한 여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암소의 목에 보면 사람의 얼굴이 보이시지요?

수유를 하고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얼굴입니다.

몸체 부분은 사라지고 얼굴만 남아 있는 벽화입니다.

 

 

 

 

 

 

 

 

 

 

다른 쪽 벽면에도 하토르 여신과 파라오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시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 3세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지요.

 

하트셉수트는 어린 파라오를 신전 안에 유폐시키고 실권을 장악합니다.

왕권을 장악한 하트셉수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자는 파라오가 될 수 없다는 수천 년의 전통을 깨고

파라오가 됩니다.

 

공식성상에서는 남장을 했으며, 파라오의 가짜 수염을 부쳤다고 합니다.

 

 

 

 

이제 열주들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것으로 보이는

중간층 주랑으로 가보겠습니다.

 

여행자가 바라보는 왼편의 중간층 주랑에는

푼트로의 원정을 묘사한 장면들이 있는 부조가 있으며

 

오른편의 중간층 주랑에는

하트셉수트의 거룩한(?) 탄생과 그녀의 카를 묘사한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른편 중간층 주랑 옆에는 아누비스 신당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간층 주랑의 부조들입니다.

 

아문의 배가 도착하는 마지막 장소였던 이곳..

아문의 배가 도착하고 있는 부조입니다.

 

 

 

 

 

벽에는 하트셉수트가 푼트 지역으로 원정대를 보냈다는 기록을

묘사한 벽화들이 있습니다.

 

푼트 지역은 오늘날의 에리트레아 또는 수단의 남해안 지역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소말리아 지방이 아니었을까 추측되는 곳입니다.

 

푼트 거주민들이 이집트인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이집트인들이 신 앞에 경배의 자세를 취하듯

손을 올려 이집트인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중간층 주랑의 기둥들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고

그 뒤쪽의 벽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중의 한 벽에는 이 장제전을 건축한 건축가 세넨무트를 그린 벽화가 있습니다.

 

하트셉수트가 재위기간 중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은

"이집트의 왕관없는 파라오" 라고 불리웠던 신전 건축가 세넨무트였습니다.

 

세넨무트는 여왕의 명령에 의해 장제전을 건축하면서

하트셉수트 여왕의 무덤 옆에 자신의 비밀 무덤을 설계하였다고 하지요.

 

비록 그의 비밀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로 끝났지만,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 가까이 있고 싶어한 그의 소망이었습니다.

 

 

 

 

기둥에 새겨진 벽화들..

 

 

 

 

중간층 주랑의 오른편으로

아누비스을 기리기 위한 신전입니다.

 

그 앞의 신전 잔해들은 토드를 위한 신전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하지요.

 

 

 

 

오른편의 중간층 주랑에는 하트셉수트의 탄생과

그녀가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벽화들이 이어집니다.

 

 

 

 

그녀는 아버지 투트모세 1세가 생전에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해

상, 하 이집트의 궁정과 신에게 후계자로 소개하고

왕관을 씌워 주었다고 주장하였답니다.

 

 

 

 

상층 주랑을 향해 오르는 길..

그 경사로의 입구에는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 신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경사로를 따라 상층의 주랑으로 오릅니다.

 

 

 

 

상층 주랑에 올라 뒤돌아 본 풍경..

 

한단 한단 올라서는 위쪽의 주랑들을 이어주는 계단들..

그 뒤로 룩소르의 모습이 멀리로 보입니다.

 

 

 

 

상층의 주랑의 열주들 앞에는 남장을 한 하트셉수트의 석상들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가짜 수염을 붙이고 파라오를 상징하는 왕관을 쓴 모습입니다.

 

하트셉수트는 대부분 이런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지요.

 

하트셉수트의 흉상으로 젊은 여왕이 절대자의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이 흉상에서는 여성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수염을 달고 있지 않으니, 여성적으로 느껴지는군요.

 

1926-1928년 이곳 장제전에서 발굴 된 것으로

훗날 얼굴의 좌측 부분은 보수 된 것입니다.

재질은 결정질 석회암으로 되어 있으며 여러가지 색이 칠해져 있었습니다.

 

현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조각상들

앞쪽에는 조각상의 머리가 떨어져 나온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신전이 철저히 파괴 되었던 흔적 중의 하나입니다.

 

투트모세 3세가 30세가 되던 해

하트셉수트 여왕의 통치는 종말을 고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푼트에 보낸 정벌대가 귀환하여 벌인 파티에서 여왕이 연설 할 때,

투트모세 3세가 나타나 자신이 진짜 파라오라고 공공연히 도전하였다고 합니다.

 

왕좌에서 물러난 후 하트셉수트 여왕은 돌연 사망합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던 투트모세 3세가 왕좌에 오른 즉시

자신의 양어머니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없애기 시작합니다.

 

20여년 간 신전의 구석에서 키워온 복수심이 폭발한 것일까요?

그 복수는 너무나 지독했습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에 그려진 하트셉수트 여왕의 모습이나

그녀의 상형문자 이름 들이 철저히 부서지고 긁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20년이 흐른 후, 이곳은 다시 한번 훼손을 당합니다.

이집트 최초로 유일신 숭배사상을 도입한 파라오 아크나톤이 아몬 신에 관련된 모든 것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기독교인들이

이 신전을 수도원으로 사용하면서 많은 부분을 이단적이라는 이유로 파괴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파괴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현재 남아 있는 유적만으로도 그 옛날 웅장하고 섬세했던

여왕의 장제전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상층 주랑의 중간 쯤..

뒤쪽으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 보입니다.

 

 

 

 

그 문의 양쪽에는 이렇게 하트셉수트 여왕의 조각상이 서 있구요.

비슷한 모습인 듯 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조각상들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상층 뜰을 지나

지성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바라본 지성소..

 

열주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뒤로 메르트 세게르 산(침묵을 사랑하는 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상층 뜰의 모습

 

오른편의 닫힌 곳은 태양의 뜰이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상층 뜰의 서쪽 벽감으로 열개의 미라 석상들이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몸체만 두어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왕의 좌상을 놓아두었던 깊게 파인 벽감도 볼 수 있습니다.

 

석상이 안치된 곳의 뒤쪽에도 채색된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에 새겨진 부조

 

오랜 기간에 걸친 훼손으로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상층 뜰의 기둥들은 잘려나가기도 하고..

 

 

 

 

미이라 석상은 양손을 교차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곳 기둥에 그려진 누군가의 카투쉬

 

풍뎅이 모양은 이곳에서 태양의 일상적인 재상을 상징하며

죽음 후의 왕의 부활의 징표라고 합니다.

 

 

 

 

이곳의 안내원 아저씨..

 

학자 스타일로 점잖은 모습이십니다.

 

 

 

 

지성소 앞에서 바라본 상층 뜰과 그 입구

 

상층 주랑 하트셉수트 여왕의 석상이 세워진 곳의 뒤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곳 벽의 벽화는 거의 훼손되고 없는 상태입니다.

 

 

 

 

다시 바깥쪽으로 나가

상층 주랑 오른편의 석상들을 카메라 안에 모셔옵니다.

 

 

 

 

얼굴이나 귀를 보면, 색채가 칠해져 있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석상은 발에 해당하는 부분만 남아 있는 것도 있구요.

 

 

 

 

신전을 대충 둘러보고

다시 꼬마 기차를 타고 나오는 길...

 

신전은 여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여행자를 배웅해줍니다.

 

 

 

 

3500여년의 시간이 여행자의 앞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였을 사막의 모래가

그래서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유적지..

하트셉수트 장제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