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다음으로 소개할 곳은 옥연정사입니다. (2010년 9월 4일)
이 정사는 서애 류성룡이 선조 19년 1586년에 지은 곳입니다.
조용히 거처할 곳으로 부용대 기슭에 터를 잡은 후 재력이 부족해 짓지 못하다가,
승려 탄홍이 건축을 주관하고 물자를 지원해 주어 10년에 걸쳐 완성하였습니다.
이곳은 류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징비록(국보 132호)을 쓴 장소로도 그 의미가 깊습니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이 곳에 이르러 깊어지는데,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옥과 같아서 정사의 이름도 옥연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옥연정사의 간죽문입니다.
낙동강변에서 올라오면 처음 만나는 곳..
옥연정사의 간죽문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하회마을의 모습
간죽문..
이곳 옥연정사는 영화 스캔들을 찍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 간준묵 너머로 배용준이 걸어 나오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영화 황진이도 이곳에서 찍었다고 하는 걸보면,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탓이겠지요?
간죽문..
이름대로라면 대나무 숲을 바라보는 문입니다.
류성룡이 이를 두고 다음 시를 남겼다고 하지요.
노옹이 낮잠에서 막 깨어나,
뒷짐 지고 뜨락을 거닐도다.
거닐다가 기분이 더욱 상쾌해지면,
문을 나서 대숲을 바라보네.
강 바람이라도 불어 나부끼면,
옥이 부숴지는 해맑은 소리.
더러 날 찾는 이 있는데,
누가 주인이고 나그넨지 몰라라.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 봅니다.
옥연정사는 일반 종택과는 다른 학문과 만남의 독립 공간으로 지어진 곳입니다.
서애 류성룡(1542-1607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 자는 이견, 호는 서애, 의성 사촌 출생으로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류중영의 아들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전, 우의정으로 있으면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권율과 이순신을 의주목사와 전라좌수사에 추천하였던 인물이지요.
옥연서당의 모습
류성룡의 나이 45세에 이 집을 완공하고 처음에는 옥연서당이라고 하였다지요.
옥연서당은 이렇게 앞뒤로 트인 공간들..
앞으로는 낙동강을 품어 안고...
뒤로는 산을 끌어 들이고...
길다란 대청마루..
선조 38년 1605년에 낙동강 대홍수로 하회의 살림집을 잃고 이곳에 은거하며 임진왜란을 회고하며 징비록을 저술하였다고 하지요.
지난 일을 회고 반성하여 후일 뒷근심을 없앤다는 의미로 책 이름을 지었다고 하지요.
한옥의 이 들어올린 문짝이 참 좋습니다.
왜 보기만 하여도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댓돌 위의 흰 고무신과 짚신도 눈에 띕니다.
마당 한가운데는 우람한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구요.
원락재와 살림집의 모습이 보입니다.
왼편의 건물이 원락재인데요.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원락재라고 하였다지요.
논어 중에 有朋(유붕)이 自遠方來(자원방래)하니 不亦樂乎(불역락호) 라는 뜻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먼 곳으로부터 벗이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450년 된 종송과 옥연정사에서 바라보는 풍경..
낙동강과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450년 된 종송
류성룡은 이 소나무를 심고 그 소회를 종송이란 시로 남겼는데, 그 자신이 이 어린 소나무를 심으면서도
그늘이 드리울 정도로 자랐을 때를 보지 못할 것임을 이야기하였다고 하지요.
실재 류성룡은 이 소나무를 심은 3년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류성룡 선생의 저서로는 서애집, 징비록, 운암잡기 등이 있습니다.
옥연정사의 쪽문을 나와 바라본 옥연서당과 간죽문의 모습
원락재를 지나 이 작은 쪽문을 나오면 살림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 서나 낙동강과 하회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쪽문을 빠져나오면 이렇게 다른 문이 있습니다.
화천서원쪽에서 들어갈 때 들어 갈 수 있는 문입니다.
높게 쌓아올린 장작들..
집으로 만든 망태..
세월이 이곳은 비켜 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지막 사진은 부용대편에서 올린 사진입니다.
부용대의 모습과 부용대 오른편에 위치한 옥연정사가 나온 사진입니다.
이 글의 마무리는 옥연정사 앞에 새겨놓은 시비를 옮겨 적어 봅니다.
소나무를 심고 머리글로 덧붙여서
스무아흐렛날 자제들과 재승 몇 사람을 시켜서 능파대 서쪽에 소나무 삼사십 그루를 심었다
내 일찍이 백낙천의 소나무를 심고란 시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나이 사십이 되어 몇 그루 어린 나무를 심는가
인생 칠십은 옛부터 드물다는데 언제 나무가 자라 그늘을 볼 것인지 하였다
올해 내 나이 예순 셋인데 새삼 나무를 심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떠오르는 감상을 재미삼아 몇 구절 시로 옮겨본다
북쪽산 아래 흙을 파서 서쪽 바위 모퉁이에 소나무 심었네
흙은 삼태기에 차지않고 나무크기 한자가 되지 않네
흔들어 돌 틈에 옮겼으니 뿌리도 마디 마디 상했으리라
땅은 높아 시원하여도 가꾸기엔 물이 적을 듯한데 비 이슬 젖기엔 더디면서 서리바람 맞기엔 빠르겠구나
늙은이 일좋아 억지부려 보는이 속으로 어리석다 웃을테지
어찌하여 늙은이 나이들어 자라기 힘든 솔을 심었을가나
비롯 그늘보지 못해도 뉘라서 흙 옮겨 심은 뜻은 알겠지
천년지나 하늘 높이 솟으면 봉황의 보금자리가 되리라
조선 선조 삼십칠년 일천육백사년 이월 이십구일
옥연정사 찾아 가는 길
주소: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20번지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ic로 나오면 하회마을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정표를 따라 하회마을로 향하면 됩니다.
하회마을에서는 나룻배 타는 곳에 가서 부용대쪽으로 나룻배를 타고 가면 옥연정사를 찾아 갈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이 아니면, 직접 옥연정사까지 차를 가지고 가는 법~
서안동 ic를 나와 하회마을 이정표를 따라 가다가, 회마을 삼거리에서(하회마을쪽으로 가지 말구요) 구담, 지보, 풍양 방면으로 1km 정도 갑니다.
풍천면 파출소에서 부용대 방향으로 좌회전-광덕교를 지나 바로 좌회전하여 1-2분을 가시면 화천서원이 나옵니다.
화천서원의 담장을 따라 100m를 가면 옥연정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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