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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상남도

파사석탑으로 더 잘 알려진 부드럽고 단아한 수로왕비릉

 

 수로왕릉을 보았다면,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수로왕비릉도 찾아봐야겠지요?

구지봉의 동쪽에 위치한 왕비릉의 모습입니다.

구지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모습이지요.(2010년 6월 22일)

 수로왕비릉의 홍살문은 이렇게 도로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왕비릉이 도로에 둘러쌓여 섬처럼 느껴집니다.

수로왕의 탄생 신화는 대부분 알고 계시겠지만, 다음번 구지봉 포스팅을 할 때 탄생신화는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로왕비릉이니, 허황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기42년 수로왕이 왕위에 오르고나서, 서기 48년 수로왕은 신하를 보내 포구에서 한 여인을 맞이하게 됩니다.

과연 바다에서 서남쪽으로부터 붉은 돛을 달고 붉은 기를 휘날리며 한 척의 배가 다가왔습니다.

그 배 안에는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이 타고 있었습니다.

허황옥은 본국에 있을 때 부모의 꿈에 옥황상제가 나타나 계시한대로 가락국왕에게 시집오기 위해 배를 탄 것입니다.

 구남문을 지나면 신도를 따라 이어진 길의 끝에 수로왕비릉이 자리하고 있으며, 왼편으로는 파사의 사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높이 5m,지름 6m이며 비문에는 <보주태후허씨릉>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파사석탑입니다.

허황옥이 배를 타고 가락국을 향해 출발 했을 때, 갑자기 파도가 높아져 배를 다시 되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해신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파사석탑을 배에 싣고서야 가락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파사석탑의 모습

파사석탑이 현재의 수로왕비릉에 위치한 것은 1873년입니다.

원례 호계사에 있다가 폐사된 뒤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것입니다.

파사석탑의 설화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각이 기이하고 돌에 붉은 빛이 도는 희미한 무늬가 대리석처럼 박혀 있는 파사석탑은 <신농본초>에는 닭벼슬의 피를 찍어서 시험해보니 피가 스미거나 굳지않고 물방울처럼 굴러 떨어졌다고 합니다.

확인결과 가락국에서 나는 돌이 아님이 재차 확인되었으며, 얼마전 향토학자가 시험해보니 <신농본초>의 내용 그대로라고 합니다.

 파사석탑은 현재 6층을 이루고 있는데, 그나마도 심하게 훼손되어 있습니다.

일명 <진풍탑>으로 알려져 사람들이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조금씩 떼어가 배에 싣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수로왕비릉 오른편에 자리한 돈종문과 숭보재의 모습입니다.

 

16세에 가락국에 도착하여 수로왕비가 되어 서기 189년 1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묻힐 때까지

수로왕의 곁에서 내조를 다했던 수로왕비 허황후..

12명의 자식을 낳아 10명에게는 김수로왕의 성씨를 물려주고, 2명에게는 자신의 성을 물려주어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허황옥..

金海....

철의 바다..

김해에는 신화 속의 이야기들이 무궁무진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