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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태백산맥의 무대- 현부자네집

 

 그 자리는 더 이를 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 <태백산맥 1권 14쪽>

소설 <태백산맥> 이 문을 여는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입니다.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와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펼쳐지게 됩니다.

 대문앞에 있는 연못은 조금 넓혀 보수공사를 하였지만 연못 가운데 동산은 그대로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태백산맥을 읽으며, 생각했던 현부자네 집과는 조금 다릅니다. 조금 더 낡고 퇴락한 집을 생각했었지요.  

 아직도 이층솟을 대문이 장관입니다. 1930년대 목욕탕 한 개로 온 마을 사람들이 목욕을 하던 시절에 이미 목욕탕을 갖춘 으리으리한 집. 지금은 사람 기척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위풍당당한 기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솟을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섭니다.

 중도 들녘이 질펀하게 내려다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우뚝 세워진 이 집과 제각은 본래 박씨 문중의 소유입니다. 이 집의 대문과 안채를 보면 한옥을 기본 틀로 삼았으되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의 건물로, 한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꽤 흥미로운 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부자네 집 앞의 소화네 집. 토담 일부와 장독대 등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이렇게 복원해 놓았다고 합니다.

 손때 묻은 절구가 눈길을 끕니다.

 벌교 곳곳에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었던 곳들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벌교 홍교는 벌교천 위에 걸쳐진 돌로 만든 세 칸의 무지개형 다리로 전체길이 27m, 높이 약 3m, 폭 4.5m 내외의 다리로 영조 5년 1729년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불교에서는 다리를 놓아 사람이 편안히 다닐 수 있게 하는 월천공덕을 중요한 보시로 꼽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아치형 석교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30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벌교라는 지명은 다름 아닌 뗏목다리로써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보통명사입니다. 벌교 즉 뗏목으로 잇달아 놓은 다리라는 뜻이니,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뀌어 지명이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뗏목다리를 대신하는 홍교는 벌교의 상징일 수 밖에 없습니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어 섰다..... 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가지에 붙어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   <태백산맥 1권 257쪽> 중에서..

 홍교 앞에 자리한 보성 벌교 홍교중수비군

홍교 앞 도로변에는 모두 5기의 비가 있습니다. 홍교가 낡고 헐어 다시 고친 내력과 참여자 등을 자세히 기록한 중수비와 단교명비입니다.

이곳 홍교는 단교라고도 불렸는데, 큰물이 나면, 다리가 끊어지고 사람의 통행이 끊어진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비문은 대부분 마모가 심하거나 훼손되어 내용 판독이 어려워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밖에도 벌교에는 중도방죽, 회정리 교회, 소화다리, 김범우 집 등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었던 많은 곳들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문학으로 읽혀졌던 곳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는 일.

 

역사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인 것이다.

역사는 관념도 추상도 과거도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뚜렷한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크는 것이다.

솥뚜껑 같은 사람의 힘과 의지로 역사는 크는 것"

이라는 작가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