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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권

평택 황산리- 떼까마귀의 군무

 

 2008년 1월 13일, 충남 아산에 일이 있어 가는 길이었지요. 길 왼편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새들의 군무..

가던길 돌아서 새들을 만나러 갑니다. 울산 태화강변에나 가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던 떼까마귀의 군무를 보게 됩니다.

 논 위를 까맣게 뒤덮고 앉아 있는 떼까마귀들.

까마귀는 철새인 떼까마귀와 텃새인 큰까마귀가 있는데, 모두 무리지어 산다고 합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수천 마리에 이르기도 한다고 하네요.

떼까마귀가 평택에서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가 따뜻해진 탓이라고 합니다.

 까마귀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네요.

보통 까마귀를 흉조라고 이야기 하는데,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이 땅에서 까마귀는 국조 즉 나라새였습니다.

고구려 벽화에 보면, 세 발 달린 까마귀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삼족오는 고구려 왕실은 물론, 백제와 고대 일본 왕실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까마귀를 흉조라고 여기는 민족은 중국 밖에 없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민족이 까마귀를 신성한 새로 여기고 숭상한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까치를 신성한 새로 여기는 민족은 거의 없습니다. 중국과 일부 북미원주민 부족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늘 북방초원의 유목민들이 만리장성을 넘어 처들어오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방 초원유목민들은 하나같이 까마귀를 신성시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까마귀 하면 북방의 초원민족들을 떠올렸고, 그래서 까마귀하면 재앙을 몰고 오는 흉조라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까치는 길조, 까마귀는 흉조라는 관념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전후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중국을 사대하면서 중국의 관념에 따라 까마귀는 흉조, 까치는 길조라 여기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떼까마귀들은 해질녘이면 군무를 펼친다고 합니다.

 까마귀를 북방민족들은 태양새로 여긴다고 합니다. 고구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삼족오의 신화적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북방민족들은 이 우주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는 현실계와 신들이 사는 천상계, 죽은 조상들이 돌아가는 지하계(또는 수중계)의 삼계로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태양은 아침에 떠서 이 세상을 비추고, 낮에 천공으로 올라가 천상을 여행하며, 이 지상을 비추며, 저녁에는 서쪽으로 지며 지하계를 비춘다고 합니다.

이렇게 태양은 우리가 사는 현실계와 천상계, 그리고 지하계를 순환하며 비춥니다. 그래서 태양의 정인 까마귀는 삼계를 두루 관장하는 세 발 달린 까마귀로 그려지게 된 것입니다. 까마귀들은 아침이며 해가 잘 비치는 골짝기나 들판, 또는 전깃줄 같은 데 모여 햇볕을 쬐며 서로 까불고 지치며 논다고 합니다. 저녁에는 다시 높은 산정이나 언덕 주변에 모인다고 합니다. 일몰 때 석양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군무를 추며 하늘을 난다고 합니다. 이렇게 까마귀는 태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무가지 위에도 까마귀들이 앉아 있습니다.

 전깃줄 위에 새까맣게 앉아 있던 새들은 제가 다가가자 날아 오릅니다.

망원 렌즈를 미쳐 챙겨오지 못해서,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예민한 녀석들입니다. 전깃줄 위의 새까맣게 앉아 있는 모습들을 찍으려했는데, 잘 안되네요.

 

위에 까마귀에 대해 인용한 글들은 서정록 선생님께서 (모아진)에 기고하신

<영혼을 실어 나르는 태양새, 까마귀> 중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