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진을 둘러본 후, 고려궁지로 향합니다.
고려는 고종 19년(1232년) 7월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최우의 권유로 도읍을 송도에서 강화로 옮겼습니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로 원종 11년(1270년) 환도 할 때까지, 39년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날은 하늘의 구름이 멋진 날이었습니다^^
고려궁지의 입구.
고려궁지는 규모는 작으나 송도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궁궐의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 하여 왕도의 제도를 잊지 않으려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여러차례의 전란을 겪으며, 고려궁지는 모양이 많이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입구에 올라서서 돌아본 모습.
조선시대에 들어서 고려궁지에는 왕이 행차시 머무는 행궁이 건립되었고, 유수부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 장년전, 만녕전 등이 건립하였으나,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1964년 이곳은 사적 133호로 지정되었으며, 1977년에 보수, 정비 되었다고 합니다.
강화유수부 동헌
강화 유수부 동헌의 현판으로 <명위헌>이라는 현판은 영조 때 명필인 백하 윤순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동헌 건물을 옆에서 바라본 모습.
동헌 내부에 옛 모습을 재현해 놓았네요.
고려궁지의 변천사입니다
외규장각입니다.
조선 정조 때, 왕실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된 곳으로 특히 왕이 친히 열람하던 어람용 의궤를 보관하던 곳입니다.
어람용 의궤는 특별하게 비단을 사용하고, 종이는 고급 초주지를 사용하고, 해서체로 글씨를 쓴 다음, 붉은선을 둘러 왕실의 위엄을 더하였다고 합니다.
병인양요 때에도 외규장각에 보관 중이던 은괴 19상자와 함께 프랑스 군의 눈을 자극한 것도 채색비단 표지에 선명한 그림으로 장식 된 어람용 의궤였다고 합니다.
외규장각과 유수부 동헌 건물.
400년 된 회화나무가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고 20m, 나무둘레 6m.
강화부동종
강화유수 윤지완이 주조한 것을 그 후 1711년(숙종 37) 유수 민진원이 정족산성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것입니다.
높이 198cm, 입경 138cm로 조선후기 동종으로는 큰 규모입니다. 몸통 중앙에는 큰 줄이 둘러있고 그 아래 만든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동종을 보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강화유수부 이방청이 보입니다.
이곳은 강화유수부의 행정실무자들이 업무를 보던 곳입니다. 1654년(현종 5) 유수 정세규가 세웠고 1783년(정조 7) 유수 김노진이 내부 수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1915년 등기소로 사용되었다가, 1972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구조는 ㄷ 자형 단층기와집으로 방이 8칸, 마루가 12칸, 부엌이 1칸으로 모두 21칸 규모입니다.
이방청의 길다란 마루
이동하다가 본 강화산성의 모습입니다. 차 안에서 찍어 많이 흔들렸네요.
이 성은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천도하여 토성으로 축조하여 그 규모가 매우 광대하여 강화읍 선원면 일대를 돌려 쌓았으나, 몽고군의 강요로 헐렸던 곳입니다.
이후 조선초에 이르러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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