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에는 서울에서 눈을 보기가 힘들었지요. 하루였던가요? 눈이 전날 오긴 왔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햇살에 벌써 녹아내리고 있었지요.
25일 날,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요. 저녁 쯤 되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더군요.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지붕 위에, 길 위에 눈이 쌓이고 있더군요.
다음 날 일어나서 눈이 그치면 관악산을 가야겠다하고 마음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지요. 26일 아침 일어나니, 하늘이 뿌옇습니다. 눈이 더 올 듯 합니다.
일기예보에서도 눈이 더 올거라구 하구요. 그런데 10시가 되니 눈이 그치고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친구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고 관악산으로 향합니다. 사당역에서 올라가 과천역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서울 근교에서 눈이 가득한 하루를 만끽하였습니다
사당역에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관음사
절집 마당 한켠에는 이날 온 눈을 치워 놓았더군요. 하늘은 푸르고, 나무가지에도 눈이 쌓여 있네요.
관음사 일주문 - 오후 1시경에 오르기 시작했더니, 벌써 하산하시는 분들도 보입니다.
관음사 일주문 옆을 지키고 있는 관음 대장군과 여장군
관악산 관음사(觀音寺)는 관악산의 북측 사면인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519-3번지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로서, 신라 말엽인 895년(진성여왕 9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천여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관음기도도량(觀音祈禱道場)이다.
1977년 극락전 헤체시에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을 보면 조선조 숙종 42년인 1716년 4월 21일 (康熙 55년)에 극락전을 개축하였고, 영.정조시대에 쓰여진 <범우고>와 <가람고> 및 <여 지도서(與地圖書)>에 의하면 관음사에 대한 기술과 함께 사찰근처에 승방벌이라는 마을과 승방 교라는 다리가 있었던 사실로 보아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컷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봉은 본 말사지>에 의하면 1924년에 전석주 스님이 요사채 1동을 신축하였고, 그 후 정태선 스님이 삼성각과 극락전을 다시 개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웅전과 헌성비
절집은 눈이 쌓여 한층 더 고즈넉해보입니다. 마당을 비질을 해 놓아서 그게 조금 아쉬웠습니다.
관음사를 벗어나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합니다. 조금 오르다 왼쪽을 바라보니 관악산의 봉우리가 얼굴을 보여주네요.
소나무가 많은 산이더군요. 소나무에 눈꽃이 피었습니다.
새벽까지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가득입니다.
관음사에서 처음 오르는 길은 이렇게 편안했지요. 눈덮힌 솔숲 사이에 난 길을 따라 멀리 관악산의 봉우리를 가늠해보며 가는 길이었지요.
조금만 올라가도 나무 사이사이로 봉우리들이 조망됩니다.
편안한 오솔길에서 갑자기 이런 길이 됩니다. 경사는 45도가 넘고 잡고 올라 갈 밧줄 하나 보이지 않는 바윗길입니다. 후회가 밀려옵니다. 눈오는 다음날 무리한 산행이었나 싶어서, 다시 내려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이 깊어집니다.
어쨌든 진퇴양난.. 내려가는 일도 만만치 않아서 바윗길을 조심조심 기어올랐더니.. 이런 봉우리에 도착했습니다. 태극기 펄럭이는...
뒤로 돌아보니 사당역 부근의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이것이 서울 근교 산행의 맛이지요^^
산봉우리들 뒤로 도시가 펼쳐집니다 - 산 하나로 다른 세상입니다.
가야할 산 봉우리, 멀리 연주대도 보입니다. 눈 앞의 이 바위산만 넘어서면 편안한 길이 이어질 듯 합니다.
바위산을 올라서니 이런 풍경입니다.
관악산은 바위가 많은 산이라고 했지요. 실감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관악산은요~
관악산은 서울의 남쪽에 솟아있는 산이다. 서울의 강남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이 산은 높이는 700m에 못미치지만 산괴가 방대하고 암봉이 줄을이어 솟아 있는데다가 계곡이 깊어 산의 변화가 다양하여 언제 찾아도 산행의 재미를 볼 수 있는 산이다. 지리적 특성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서울에 있는 산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므로 그것은 관악산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관악산은 암괴로 이루어지다시피한 석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능선에 가든지 암봉과 암릉이 줄을 이어 나타난다. 팔봉능선이나 육봉능선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능선의 암릉이 재미와 다양한 산행을 보장하여 산행의 즐거움은 강열하게 해주고 암릉의 특색인 시원한 조망은 관악산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큰 특징중 하나이다. 관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품이 너른 산이 관악산이다.
관악산은 높이는 도봉산보다 낮지만 대표적인 등산로인 서울대입구-계곡-연주암-정상코스는 도봉산의 주차장-도봉산장-만월암-포대능선-신선대보다 길었으면 길었지 짧지는 않다. 이 사실은 관악산이 높이에 비해 덩어리가 작은 산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기 위해 들어본 하나의 예이다.
관악산은 화산(火山)의 기가 있다고 하여 일찌기 한양천도때에 무학대사가 궁궐의 방위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 대안으로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하여 광화문에 해태상을 세우고 관악산 여기저기에 물동이를 묻었다고 한다. 풍수설을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하지만 동시대인들로서는 무학의 주장에 대하여 일리있다고 판단했는지 나름대로 대비하고자 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남쪽의 화기를 조금 더 확대해석하여 산에 물동이만 묻을 게 아니라 남으로부터 재래할 재앙을 예상하였더라면 임진왜란에 대비하고 남쪽인 해양으로부터의 물밀듯이 밀려온 외양세력에 대비하여 나라의 영구적인 발전을 기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결국 남으로부터 습래해온 세력에 조선조 사직은 500년을 시한으로 무너지고 말아 후세사람의 지나친 기대인지는 모르지만 무학의 주장이 풍수적 대비에만 그친 아쉬움을 남긴다.
관악산은 불(화기)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아름다운 바위산으로 계곡엔 곳곳에 샘도 여러 군데 있고 규모는 작지만 계류도 여기저기 흘러내려가 봄의 진달래,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을 반영한다.
바위 틈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네요. 이런 나무를 볼 때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저 바위 틈에 살아남아 언젠가는 푸르고 꼿꼿한 낙락장송이 되겠지요?
가야할 연주대가 많이 가까와졌네요.
마당바위 - 설악의 흔들바위처럼 한번 밀어보고 싶어지네요.
정상인 연주대가 한층 더 가까와졌습니다.
연주대와 기상 관측소
연주대 - 기암절벽 위에 절집을 앉혀 놓은 사람들의 솜씨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관악사지의 법당지 - 2동의 건물이 잇던 자리라고 합니다.
경기도지정기념물 제190호 소재지: 과천시 중앙동 산 12-1번지
과천시 중앙도 85-1에 있으며 연주암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는 관악사지는 관악산 동쪽 산기슭에 석축을 쌓고 건물을 지었던 전형적인 산지가람 형식의 사지이다.
연주대 암벽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관악사 창건과 관련한 기록은 매우 다양하다.
'연주암지'에는 '신라 문무왕17년(677)의상조사가 의상대(후대에 연주대로 개명)를 창건하는 동시에 관악사를 개산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연주대 나한전 법당 중수기'에는 조선 이태조가 1392년 관악산에 친임하여 대를 쌓으며 복을 빌고 '원각','연주' 두 절을 창건하였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한편, '연주암지'에는 태종11년 양녕과 효령대군이 충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전위한 후 관악사를 고지(원 위치)로 부터 현 위치로 이전 하면서 40칸의 가람을 건설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99년에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 15세기 전반부터 18세기까지의 유물로 확인된 도자기편, 기와편 등이 출토되어 효령대군이 관악사를 조성했다는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관악사지는 적어도 6동 이상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들은 일시에 건립된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일정한 가람을 건립하고 이것이 산사태 등에 의해 소실되면 그 자리에 다시 대지를 조성하거나 인근으로 옮겨 새로운 가람을 건립함으로써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8 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의 건물은 급경사 지형에 석축을 쌓아 평탄하게 만든 후 평탄대지를 따라 누층적으로 축조 하였는데 이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인공적인 건물과 자연환경의 조화를 꾀하려는 전통적인 산지가람의 배치방법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완전 소실된 것으로 조사된 연주대 바로 밑의 다지구 건물은 제단 성격의 석축과 회랑의 유구가 있어 사당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출토된 막새기와의 대부분이 봉황이나 용의 문양이기 때문에 호국도량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폐사지의 쓰러진 나무에도 눈은 쌓이고...
폐사지를 지나 연주암을 오릅니다.
폐사지에서 연주암까지는 계단길이 이어집니다. 오르다 바라보니, 과천 경마장도, 서울대공원도 보입니다.
올라가다 왼편을 바라보니 하늘을 향해 높게 치솟은 연주대.
신라 제 30대 문무왕 17년(667)에 의상대사가 참선을 하던 곳이라서 '의상대'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연주대'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연주대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두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나는 고려가 멸망한 후 관악산에 은거했던 고려말 충신 강득룡,서견,남을진 등이 이곳에 올라 개성 땅을 바라보며 옛왕조를 그리워 했다 하여 연주대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에는 조선 태조대왕이 이곳에 행차하여 '원각','연주' 두절을 새로 짓고 친필로 '연주대'라 명명한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관악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이 연주대에서 전망을 즐기는 것.
옛날에는 송도(개성)까지 보였다고 하며, 지금도 맑은 날이면 서울은 물론 인천 앞바다,수원 등 수도권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기도 기념물 제 20호로 지정되어 있는 연주대의 벼랑 끝에는 자그마한 법당이 아슬아슬하게 걸린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 법당은 웅진전으로, 5평 남짓한 아담한 건물에 맞배지붕을 이고 있다
연주대를 오르는 길 - 계단 가의 절벽에 소나무가 거의 눕다시피해서 자라고 있네요.
관악산 정상 - 629m 를 오르는 것이 힘드네요. 예전부터 '악'자가 붙은 산은 만만하게 보지말라는 말이 있다는데 그 뜻을 깨우치는 하루입니다.
연주대에서 바라보는 기상관측소
연주암 - 깎아지르는 절벽 위에 세워진 연주암에 서서 탁트인 경치를 바라보는 일, 눈이 호사를 하는 날입니다.
연주암 뒤의 바위 그리고 소나무
연주암을 내려오다보면 연주사가 있습니다.
저 오래된 나무는 수령이 얼마나 될까? 하고 혼자 생각을 해봅니다.
관악산 등산 코스
사당역에서 12시 반쯤 출발해서 관음사 지나, 관악사지를 지나 연주암을 올랐다가 과천역방향으로 하산하니 6시경이 되었더군요.
겨울 바위산의 모든 것을 만끽하고 내려와
파전에 동동주 한잔....
태백산, 남덕유산, 관악산까지....
이번 겨울 눈 산행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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