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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바람과 햇살과 함께 걷는 가을 산책-장성 필암서원

 

노란 은행잎, 

붉은 단풍잎, 

바람.. 

그리고 햇살... 

 

바람과 햇살과 함께 걷는 가을 산책,

장성 필암서원입니다. (2020년 11월 7일)

 

 

 

 

수령이 오래 된 은행나무 자리한 필암서원, 

햇살 좋은 가을 날 

찾아가려고 생각했던 곳, 

주차장에 내리니 색색의 단풍잎들이 먼저 반겨주는 곳입니다. 

 

 

 

 

 

 

 

 

 

 

 

 

 

 

 

떨어진 단풍잎들까지도 

아름다운 가을... 

 

 

 

 

 

 

 

소나무들 사이에 홍일점, 

단풍나무~

 

 

 

장성 필암서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름다운 서원입니다. 

 

 

 

하늘에서 바라보니

서원의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필암서원은 대표적인 평지형 서원입니다.

앞에는 가까이 문필천이 흐르고 들판 너머 멀리 안산인 월선봉이 보입니다.

서원 앞에는 신위가 봉안된 신성한 장소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학교 나무를 상징하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원의 정문에 해당하는 확연루, 

강당인 청절당과 동재와 서재

경장각이 자리하고 그 뒤로 사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당 오른편으로는 장판각이 있습니다. 

 

 

 

필암서원 왼편에 자리한 유물전시관과 기념관

 

 

 

 

 

 

 

필암서원, 

 

 

 

서원과 기념관, 

 

 

 

 

 

 

 

필암서원은 1590년 건립됐습니다.

제향인물은 하서 김인후(1510~1560년)이며,

호남 학맥의 본산으로서 으뜸가는 서원이라고 합니다

 

하서 김인후는 1540년 대과에 급제했습니다.

조선왕조 제12대 임금인 인종의 세자 시절 사부로서

군신간에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인종이 임금이 되자 함께 어진 정치로 나라를 안정시키고 참된 지치주의를 펼치려 했는데

8개월밖에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죽을 때까지 관직에 나가지 않고 임금을 위해 충성했다고 합니다.

 

 

 

김인후는 인종 승하 이후 곧바로 낙향해

고향에서 서재를 짓고 학문연구와 제자양성에 힘썼다고 합니다.

호남 성리학 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수준을 높여

율곡학파의 학설이 정립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지요.

 

송시열은 “도학과 절의와 문장을 다 갖춘 사람은

오직 김인후 한사람뿐이다”라고 칭송했다고 합니다.

1796년(정조 20년) 문묘에 종향됐는데

이때 정조는 “동방의 주자”라고 높이 평가했다고도 합니다.

 

 

 

은행나무 노랗게 물든 가을날의 서원

 

 

 

서원의 이름인 ‘필암’은

김인후의 고향인 황룡면 맥호리 맥동마을 입구에

자리한 붓바위(筆巖)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 바위는 마치 모양이 붓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이후에 뛰어난 학자가 태어난다고 믿었는데

‘필암’과 인연을 맺은 대학자가 바로 김인후였습니다.

 

김인후 사후 30년 만에 호남지역 유림들이 필암서원을 창건했으며

1597년 정유재란으로 서원이 소실됐다가

1624년 이곳으로 이전해 다시 세웠습니다.

 

 

 

2019년 7월 6일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서원 9곳을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등재된 서원은 소수서원(1543년 건립),

남계서원(1552년 건립), 옥산서원(1573년 건립),

도산서원(1574년 건립), 필암서원(1590년 건립),

도동서원(1605년 건립), 병산서원(1613년 건립),

무성서원(1615년 건립), 돈암서원(1634년 건립)입니다. 

 

 

 

확연루 양쪽으로 자리한 은행나무~

 

 

 

 

서원의 정문에 해당하는 확연루

 “군자의 학문은 확연해 크게 공정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확연루의 편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합니다. 



 

 

확연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청절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암, 수 두그루의 은행나무

양쪽에 호위하듯 서 있습니다. 

 

 

 

강당이 입구인 문루를 바라보지않고

등지고 앉아 있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눈을 들어보면

사방에 가을 빛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모양의 굴뚝과 모과나무~

 

 

 

강당인 청절당

다른 서원과 달리 입구의 문루를 향하지 않고

반대편 산 아래 사당을 보고 있습니다.

강당과 동·서재가 사당을 일상적으로 바라보도록

독특하게 공간을 구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필암서원 현판과 청절당 현판~

 

 

 

청절당의 좌우에는 수학하는 원생들이 거처하는

숭의재(서재)와 진덕재(동재)가 배치됐고

경장각이 마당 서쪽 가까이에 세워져 있습니다.

 

 

 

 

 

 

 

 

 

 

 

 

사당과 동재

 

 

 

 

서재와 경장각과 사당

 

 

 

경장각(敬藏閣)은 ‘왕과 조상의 유물을 공경하여 소장하다’라는 의미로

이 건물 안에는 인종이 김인후에게 하사한 묵죽도의 판각이 소장돼 있는 곳입니다.

경장각의 편액은 정조 임금이 쓴 글씨입니다.

임금이 쓴 글씨는 직접 보지않는다는 의미로

편액에는 망이 쳐져 있습니다. 

 

 

 

 

장판각과 한장사

 

 

 

장판각을 하서 선생의 문집과 목판 700여 매를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내부를 들여다 보니

목판을 마치 합천 해인사처럼 보관하고 있습니다. 

 

 

 

 

하서 김인후 선생이 모셔진 사당

 

김인후는 문묘(文廟)에 배향된 18현에 속합니다.

신라·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유교의 성인인 공자를 모시는 사당에

함께 배향된 우리나라 유학자 18명에 들어가 있습니다.

문묘18현에 영남의 이황, 한양의 이이, 충청의 조식과 함께

유학(儒學)에 통달한 권위 있는 학자,

유학의 대가로 꼽히는 것입니다. 

 

 

 

세월이 느껴지는.. 

 

 

 

뒤란의 굴뚝

굴뚝이 참 이쁩니다. 

 

 

 

 

서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주차장 근처에 정자와 연못과 누운 소나무가 발길을 붙듭니다. 

 

가을 산책... 

언제나 좋은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