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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박물관은 살아있다' 박물관에서 떠나는 1930년 시간여행-군산근대역사박물관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조정래님의 아리랑에 실린 작가의 말 중에서-

 

여행자에게 있어 군산은 조정래님의 아리랑의 무대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김제, 만경의 너른 평야..

그곳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가던 사람들,

그들이 일제 치하에서 군산으로, 경성으로, 미국으로, 일본으로, 만주로

떠나서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을 이어나가는 이야기들..

 

김제, 만경 평야의 쌀들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커졌던 군산,

그 시절, 1930년대의 군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좀 놀랍습니다.

 

1930년대 그 시절의 군산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그 시작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입니다. (2012년 5월 19일)

 

사진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3층

'1930년 시간 여행'이란 제목으로 공연되는 연극의 모습입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그 마당 한켠에는 은적사 3층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래 월명공원 수원지 인근에 위치했던 선종암의 탑이었는데

1912년 수원지가 건설되면서 선종암이 폐찰되자

군산공원으로 옮겨졌다, 1976년 은적사로 옮겨졌다

2011년에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고려시대의 탑이라고 하는데

유랑의 세월을 견뎌낸 탑이로군요.

 

 

 

 

박물관 입구에는 근대 군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20년대 용수로 공사하는 모습은

2월에 다녀온 인도에서 본 용수로 공사의 모습과 흡사하네요^^

 

 

 

 

개항이전의 군산은 한가로운 어촌마을 풍경이로군요.

그리고 개항직후, 1920년, 1930년대를 거치며 시가지 전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의 근대 군산 사진 및 영상자료실에 들어가면

이밖에도 많은 근대 사진들을 만나 볼 수가 있습니다.

http://museum.gunsan.go.kr/content/sub04/04_02.do?tct=02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니 어청도 등대가 여행자를 맞이해줍니다.

청일전쟁 후 중국항로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1912년에 만들어졌다는 등대..

 

 

 

 

등대 옆의 계단으로 내려오시는 이분..

복장이 독특하십니다.

 

이곳을 안내해주시는 분인가 싶어

이분을 따라 갑니다.

 

 

 

 

박물관 3층에 위치한 <근대 생활관>

군산근대역사 박물관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곳입니다.

 

이곳 근대생활관은 일제강점기 군산에 존재했던 건물들을 재현하고

각각의 건물 내부에 당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전시, 체험학습 할 수 있어

마치 관람객이 시간여행을 하는 듯 한 감동을 주는 공간입니다.

 

 

 

 

그뿐 아니라 일제의 수탈과 관련한 내용을 주제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3시 두 차례 공연하는 ‘1930년 시간 여행’ 연극은

전국 박물관 최초로 전시장을 무대로 활용한 시대극 공연입니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박물관에서 떠나는 1930년 시간여행..

그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아까 계단에서 뵈었던 분,

이 연극에서 해설자를 맡으신 분이셨네요.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

이 재미난 시간여행에 푹 빠진 듯 합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됩니다.

 

연기자들이 소설 「탁류」의 미두장 앞 정주사 장면,

소설 「아리랑」의 부둣가 노동자의 삶과 쌀 수탈 장면,

군산 영명학교와 3.1운동 등 군산의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스토리화하여 관광객들에게 보여줍니다.

 

 

 

 

소설 <아리랑>에 보면 만경 만석꾼의 아들인 정재규는

미두 놀음에 미쳐서 결국은 재산 다 날리고 논두렁에 쓰러져 죽습니다.

 

그 미두장입니다.

미두는 일종의 쌀 선물시장으로 쌀을 가지고 하는 노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쌀 시세를 미리 예측하여 돈을 걸고, 돈을 따는..

일본의 쌀 시세는 일본 사람들이 조작하여

결국 조선사람들은 이곳에서 돈 잃고, 땅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지요.

 

 

 

 

우리나라 집집마다 술을 담궈먹던 시절,

일제는 집집마다 술 담그는 것을 못하게하고

이렇게 술 양조장과 도매상을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착취의 수단이었지요.

그 덕분에 우리나라에 전해져 오던 수많은 가양주들, 그 비법이 이 시절에 다 잊혀지게 되었다고 하지요.

 

미두로 돈 잃고, 토지조사사업으로 땅 잃은 사람은

다시 일본인에게 돈을 내고 술을 사서 먹고 목 놓아 웁니다.

 

 

 

 

군산 포구에 밀려드는 일본장삿배들은 소비상품만을 부려놓은 것이 아니었다

일본사람들을 몇명씩 떨구어놓고 떠나갔다.

그 숨어들듯 묻어들 듯 하는 일본사람들로 날이 갈수록 군산은 인구비율마저 뒤바뀌어가고 있었다

-조정래님의 소설 <아리랑> 1권 중에서-

 

그 많은 일본 사람들에게 땅을 주기 위해 이루어진 토지조사사업..

소설 <아리랑>에서는 하시모토를 통해 그려지지요.

 

 

 

 

당시의 곡물을 달던 기구들

직접 곡물을 달아볼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연극 공연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시더니

연극 밖에서 또 이렇게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취해주시며

여행자들을 즐겁게 해주시네요.

 

 

 

 

부잔교(일명 뜬다리)

 

일제가 전라도 곡창지역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송출하기 위해 건설한 항만시설로

제 3차 축항공사기간(1926-1933)에 부잔교 3기를 설치하여

3천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후 3기가 추가되어 6기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서해안의 특징인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부두 기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요.

부두에서 정박시설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 밀물과 썰물시 상하로 움직이며

선착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부잔교는 지금 군산진포해양공원에 가면

아직 3기가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리랑>에서 보면 이 부두에서 쌀을 지어 나르는 장면이 나오지요.

 

쌀가마를 지어나르던 부두 노동자들,

땅을 빼앗기고 부두나 철도 노동자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지요.

 

쌀가마를 지고 갈 때는 최대한 빠르게 뛰고,

배에 실고 돌아 나올때는 느리게 걸어 나오며 한호흡 쉬어간다고 하였던..

 

 

 

 

고무신 가게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1907년 경성박람회에서 선보였던 고무신..

 

 

 

 

그후 우리나라 사람들 발에서 짚신을 벗겨내고

고무신을 신게 만들었다지요.

 

지금도 절집의 댓돌에 가지런한 흰고무신을 보면

그 정결함이 느껴져서 좋은데,

시작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던...

 

 

 

 

인력거꾼들도 인력거 조합이 있었군요.

 

 

 

 

연극에 풍금이 빠질 수 없겠지요?

 

 

 

 

군산좌~

 

일본사람들이 몰려들고, 사람들이 모여드니

연극과 영화를 상영하던 군산좌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군산에 언제 처음 영화관이 문을 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14년 조선 총독부 철도국에서 펴낸 <호남선>에 '군산에는 군산좌와 명치좌 두 곳의 극장이 있다' 고 적고 있어

아마도 1914년 이전에 영화관이 개설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산좌는 1920년대 군산사람들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며

민족운동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다양한 공연들과 모임들이 이루어지는 문화운동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사용하던 영사기 방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군산좌는 개장 초기에는 일본 전통극인 가부키 중심의 공연을 하였으나

후에는 변사가 진행하는 활동사진인 신파극과 연극(국극, 창극)도 교대로 상영하는 다기능 공연장이었습니다.

 

당시 군산좌는 2층 건물이었는데 실내에는 의자가 없이 널찍한 다다미방이라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표를 사 가지고 들어가면 현관에 신발을 보관하는 신발 보관소가 있고

손님이 신발을 맡기면 신발장의 번호가 적힌 신발표를 주었습니다.

 

관객석인 다다미방은 수평이었고

겨울에는 객석에 담요(자부동)가 있어 추위를 견디기 위해 무릎을 덮었으며

여자 종업원들이 한 잔에 5전하는 차와 찹쌀떡(모찌)를 팔았다고 합니다.

 

 

 

 

1912년 3월 6일 호남선의 지선으로 군산선이 개통될 때 세워진 군산역은

그 모습을 외부에서 보면 2층의 일본식 목조 건물인데

내부는 1,2층이 트여 있어 넓은 대합실을 갖추고 있는 큰 건물이었습니다.

 

실제 군산역의 특징은 북한의 평양역과 같은 설계로 만들어져 역의 모습이 똑같았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본래 군산역은 한국전쟁 때(1950년 7월 1일)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임피역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군산선의 익산역과 군산역 사이 간이역으로 1936년에 지어진 곳으로 등록문화재 제208호.

갈수록 이용객이 줄자 임피역은 어느해인가 무인역으로 바뀌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영명학교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근대생활관 이외에도

해양물류역사관, 어린이체험관,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참 이곳 기획전시실에서는 현재 동국사 복장유물전을 하고 있습니다.

동국사 복장유물전은 동국사 소개를 할 때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양물류역사관을 들어가니

십이동파도 해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003년 10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이루어진 유물발굴은

고려청자 8,100점과 그것을 싣고 가던 고려시대 침몰선 1척이 인양되었습니다.

 

 

 

 

청자는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에 전남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 요에서 구워져

개경의 관청에 공급되던 자기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함께 인양한 침몰선은 전기 고려 선박 구조를 살펴볼 수 있고

고려시대 청자의 유통 및 선적방법, 그리고 운송해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요즘 보기 힘든 요여(영거)의 모습도 보입니다.

 

전통상례에서 장례를 지낼 때 혼백과 신주를 모시는 작은 가마로

영여 또는 영거라고 하는데 장례 시 상여 앞에 서는 가마입니다.

 

기증된 용여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앞뒤에 각각 한사람씩 가마자루를 잡고 운반하는 형태로

임피면 월하리 제주고씨 제각에 보관되어 왔던 것입니다.

 

 

 

 

전라우도 고군산진 지도와 옥구군지

고군산진 발견 기와편 등 유물이 이어집니다.

 

 

 

 

전라우도 고군산진 지도

 

고군산군도(선유도)는 본래 군산도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인조 2년(1624) 군산도에 수군 진을 설치하면서

세종 8년(1426) 옥구현 북쪽 진포에 세워진 수군부대인 군산진과 구별하고자 고군산진이라 칭하였다고 합니다.

 

고군산진은 현재 선유도 2구 진말에 있었다고 합니다.

 

<정조실록>에 의하면

"고군산의 가구수는 모두 600호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선유도의 어른들은 선유도 진말에는 가옥들이 즐비하여

비가 와도 처마 밑을 따라가면 비 한 방울 맞지 앟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살았다고 전합니다.

 

 

 

 

고군산 지역의 독특한 문화 소개가 이어집니다.

 

 

 

 

당사주책이나 무당이 사용하던 무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군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초분이라는 장례 풍습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번 청산도에 갔다가 봤던 기억이 나는 여행자입니다.

 

초분은 섬에서 갑자기 상을 당하거나 묏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또는 정월에 사람이 죽게 되면 절대 땅을 파지 않는 풍습 때문에 탄생한 장례 풍습입니다.

 

초분은 땅바닥에 돌을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눕힌 후

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는 형태입니다.

 

이후 어느 정도 세워이 흘러 시신이 육탈하면

그때 뼈를 골라 이장을 하는 이중 장제입니다.

 

 

 

 

위쪽에서 시계방향으로

어살-전통 어로 방법으로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것

주목망-나무 말뚝으로 입구를 고정시켜 물고기를 잡는 그물

정치망-한곳에 쳐놓고 고기떼가 걸리도록 한 그물

죽방렴-좁은 바다 물목에 대나무로 만든 그물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그물

 

전통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잡는 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이곳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보유유물이 4천400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각계 각층의 시민, 단체들이 기증한 유물이 2천250여점이라고 하니

군산 시민들이 직접 만든 역사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의

박물관에서 떠나는 1930년 시간여행,

어떠셨는지요?

 

오늘 마무리는 인력거꾼이 끄는 인력거를 타는 걸로 하겠습니다^^

인력거는 이정도는 끌어줘야 된다는... ㅎㅎ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찾아가는 길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40(장미동 1-67)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 27번 국도로 군산방면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관람시간

오전9시 ~ 오후6시※ 동절기(11월 ~ 이듬해 2월)는 오전9시 ~ 오후5시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1월 1일

관람료는 현재는 무료입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 그밖에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클릭해 보세요~

http://museum.gunsan.go.kr

 

 

 

 

 

2012년은 전라북도 방문의 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자꾸 전북으로 발길이 향하는 여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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