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에서 야무나 강을 건너면 만나게 되는 아그라 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을 축조한 샤 자한이 아들에 의해 유폐된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인도의 아그라..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의 아그라비나에서
지금의 아그라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인구 백만도 안되는 작은 도시지만
이곳은 타지마할과 아그라 성이라는 문화유산으로 빛나는 곳입니다.
먼저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아그라 성의
재항기르 팰리스와 디와니카스 등을 소개해드렸었지요.
오늘은 아그라 성의 두번째 이야기입니다.(2012년 2월 17일)
붉은 성벽 끝의 대리석 팔각 타워인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샤 자한이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갇힌 곳입니다.
무삼만 버즈는 아그라성 안쪽 별궁으로
샤 자한이 1666년 숨을 거둘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손바닥만 한 목욕탕이 딸린 침실은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삼만 버즈는 이름 그대로 '포로의 탑'이었다고 하지요.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무삼만 버즈의 발코니에서 타지마할을 볼 수 있었다는 점..
깨어 있는 동안 샤 자한의 유일한 낙은
야무나(Yamuna) 강 건너에 자리한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샤 자한의 사무치는 눈물이 야무나 강을 건너
타지마할로 흐르던 곳, 그곳이 바로 이곳 아그라성이었습니다.
제항기르 팰리스가 붉은 사암의 공간이었다면
디와니암 Diwan-i-am (왕의 공식접견실) 으로 가는 길은
흰색의 대리석 일색입니다.
이쯤되면 눈치채셨지요?
바로 샤 자한에 의해 건설된 곳입니다.
악바르가 세운 아그라 성,
그 안에 샤 자한은 접견실을 비롯하여 궁전, 모스크 등을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샤 자한다운 것이었지요.
샤 자한이 만든 궁전은 곳곳에 화려한 문양들, 금박들..
아름다운 조각들..
시선을 붙드는 곳들이 많습니다.
악바르 황제가 아그라성을 최고의 방어기지로 만들었다면
성 안을 장식하는 정원과 모스크 등은 샤 자한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샤 자한은 아그라성을 단순히 침입을 막는 요새로만 생각하지 않고
호사스런 건축물을 가미해 아그라성을 요새이자 왕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곳곳에 아름다운 조각들..
바라보는 내내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리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놓은 샤 자한..
그 시절에 만든 분수와 바닥의 색색의 대리석들..
그리고 그 사각의 공간을 둘러싼 건물들..
샤 자한은 자식이 많았다고 하지요.
샤 자한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우랑제브는 그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1658년 큰형 다라 시코를 제압하고 그는 왕위에 오릅니다.
그는 아버지가 어머니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
국가 재정이 바닥날 정도로 돈을 쓰는 데 큰 불만을 가졌고
수도를 델리로 옮기려고 계획하자 큰형과 전쟁을 치르고
아버지를 폐위시켜 무삼만 버즈에 유페시켰습니다.
그래서 샤 자한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포로의 탑에 갇혀
8년 동안 야무나 강 건너의 타지마할을 보며 지냈다고 하지요.
아내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들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처량한 신세가 되어
야무나 강 건너편에서 눈물로 세월을 보냈던 샤 자한..
한때 무굴제국의 황제로서 인도 전역을 호령하던 그의 운명은 너무나 비극적입니다.
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아내의 묘를 바라보며 흘렸을 샤 자한의 눈물은
야무나 강을 메우고도 남았을 듯 합니다.
타고르가 노래했던 것처럼 아내를 위해 흘린 눈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강물이 되어 타지마할을 지금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궁전의 어느 방 앞,
자물쇠 걸린 방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창 틈으로 안을 바라보니
보석으로 장식된 방이라는데 잘 보이지 않습니다.
순백의 대리석..
자꾸만 타지마할이 눈 앞에 겹쳐보입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자꾸만 멈추는 곳,
이곳이 샤 자한이 건설했다는 왕의 공식 접견실 디와니암입니다.
내부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어
사방을 둘러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화려한 디와니암 내부
이곳은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규모와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내부의 대리석 벽면과 천장이 온통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기법으로 장식돼 있습니다.
이는 대리석에 갖가지 문양으로 홈을 파 보석을 채워 넣는 장식법을 말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굴제국의 몰락과 함께 보석들은 대부분 약탈당했다고 합니다.
1859년 세포이 항쟁을 진압한 후 아그라성에 부대를 주둔시킨 영국이 그 약탈의 주범으로 지목된다고 하지요.
디와니암 내부 사진들 더 올려보겠습니다.
디와니암 앞의 흰 대리석 좌대~
왕비의 자리라고 합니다.
반대편에는 검은색 대리석 좌대가 있습니다.
사진에 담아 왔는데, 찾아보니 보이질 않습니다.
검은색 대리석 좌대는 왕의 자리라고 합니다.
디와니암에서 바라보면 무삼만 버즈(포로의 탑)가 보입니다.
손을 뻗으면 타지마할이 저리 지척인데..
8년의 세월동안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참 슬픈 곳입니다.
이제 사람은 가고, 그 사랑만 남아 이야기로 전해져 오는 오늘..
어디선가 날아온 초록빛 새 한마리, 그곳에 둥지를 틀었나봅니다.
디와니암 앞을 지나 긴 회랑들을 거닐어 봅니다.
초록빛 정원..
수많은 방과 방들..
오른편에 보이는 곳이 조금전에 둘러본 디와니암이로군요.
제항기르 팰리스에서 시작하여 디와니카스(개인 접견실)
디와니암(공식 접견실) 무삼만 버즈(포로의 탑)까지 둘러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옵니다.
아래쪽에도 비슷한 양식의 대리석 건물들..
이곳을 건축하는데 앞장 선 신하, 이름은 들었는데 잊어버렸네요.
신하의 묘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아그라 성 한가운데 묻히는 영광을 누렸군요.
흰 대리석 건물들을 지나고
다시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이어집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귀여운 다람쥐,
먹이를 먹느라고 열심이군요.
여행자를 배웅하는 다람쥐라 나쁘진 않습니다^^
아그라성은 인간이 빚은 아름다움의 극치라고도 불리우는 곳입니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을 듯 하신지요?
이제 여행자의 발걸음은 핑크시티라 불리우는
자이푸르로 향합니다.
인도 여행을 지금 돌아보니 제법 긴 여정이었네요.
아그라성의 첫번째 이야기를 아직 만나보지 못하셨다면 클릭해 보세요
머리카락 한 올도 낄 수 없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진 인도의 아그라성 http://blog.daum.net/sunny38/11776064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아직 만나보지 못하셨다면 클릭해 보세요
영원한 아름다움이라 불리우는 타지마할 http://blog.daum.net/sunny38/11776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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