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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권

서울의 얼굴이고 심장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광화문

 

 

 

경복궁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외형적으로는 건축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리고 내면적으로는 조선왕조의 법궁이라는 역사적 가치가 따로 있다.

왜 우리는 경복궁을 다시 복원하였는가?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중에서

 

유홍준 교수님은 자신의 책 6권에서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중 광화문에 새겨진 영욕의 이력서란 소제목의 글에서는

위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복궁의 복원이란

일제 강점기에 경복궁의 전각을 허물고 총독부 검물을 세우며

그 법통을 짓눌러 버린, 경복궁의 상징적 가치를 복원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베를린궁을 복원하는 과정을 예로 들며

왕조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에 왕궁이 남아 있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큰 상실감을 일으킨다고 이야기 합니다.

왕궁은 그 민족, 그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정통성에 대한 확신이자 상징이라고 합니다.

외국인들은 경복궁을 보면서 우리 역사의 만만치 않은 저력과 현재적 삶의 역사적 뿌리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하지요.

 

자~ 이제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들고 떠나는 경복궁 여행!

그 두번째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두번째 이야기는 경복궁 진입영역에 해당하는 광화문과 홍례문

그리고 영제교 천록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서울의 얼굴이고 심장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광화문과

그리고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세종대왕의 모습입니다. (2011년 9월 19일)


 

 

 

조선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궐들은 일제 강점기에 많은 수난을 당했습니다.

경복궁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훼손된 궁궐을 원래대로 복원하기란

어쩌면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10년 복원공사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낸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지요.

원래 경복궁은 광화문부터 교태전에 이르는 일직선상에 놓여 있었지만

일제는 경복궁에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짓고, 후원에 총독이 사는 집을 지었습니다.

 

이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광화문은 불타 없어졌고,

전쟁이 끝난 뒤 광화문을 원래의 축이 아닌

조선 총독부 건물의 축에 맞추어 복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2010년에 마무리 지은 복원공사는 바로 광화문을 원래 자리에 다시 옮겨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서울의 중심을 일컫는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광화문 사진을 낮부터 담았었지만, 

저녁에 찍은 야경 사진을 먼저 올립니다. 

광화문과 광화문 광장을 먼저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광화문이 복원된 후에, 그리고 광화문 광장이 생긴 이후에

이곳을 처음 찾은 여행자입니다.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상과 그가 만든 측우기, 해시계 등이

도심의 하늘 아래 자리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은 광화문의 앞에 자리하여

이제 광화문에 넉넉한 품을 안겨 준 듯 합니다.

 

광화문 광장 뒤로 광화문..

그리고 그 뒤로 북악산까지 자리한 모습은

바쁘게 움직이는 차량행렬과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는 일부터, 광화문 복원작업,

그리고 광화문 광장을 만드는 일까지

많은 찬반의견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상징성을 회복한 광화문과 광장을 가지게 된 것은 좋습니다.

 

 

 

 

이리 빼곡이 들어찬 도시의 숲 사이에

그저 넉넉한 품이 있다는 일이 마냥 좋습니다.

비록 도심의 섬이라고도 불리우는 광장이긴 하지만요^^

 

 

 

 

일제강점기를 거치지 않았다면,

원래 경복궁 앞 육조 거리였던 이곳이 역사적인 광장으로 자연스럽게 남았겠지요?

 

원래 해치상이 있던 자리입니다.

광화문으로부터 길게 이어지던 거리를 상상해봅니다.

 

 

 

 

광화문은 문뿐만 아니라, 높은 담도 함께 복원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의 해치상..

 

광화문이 수난받던 시대에 함께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이제 온전히 제자리는 아니지만, 광화문 앞에 다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광화문은 건물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권위있고 품위있다.

경복궁의 다른 문과 달리 출입구의 무지개문인 홍예가 세 칸으로 되어 있어 자뭇 정문다운 위용이 있다.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광화문의 늠름한 자태는 마치 날갯짓하며 하늘로 비상하는 듯한 모습이다.

양옆으로는 긴 담장이 동십자각, 서십자각까지 길게 펼쳐져 있다.

 

-유홍준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6권 중에서-

 

 

 

 

마침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이 시작됩니다.

 

 

 

 

덕수궁과 경복궁에서 정기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진행된다는 수문장 교대식..

 

 

 

 

안으로 들어서서 수문장들 너머로 바깥을 보면

서울 도심의 모습이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홍예문 사이로 바라본 경복궁..

 

3조3문의 경복궁.

광화문 지나 흥례문..

그리고 다시 근정문으로 이어지는..

 

 

 

 

광화문을 지나 이어지는 홍례문..

 

 

 

 

그리고 홍례문과 90도 방향의 유화문.

정문이 아닌 쪽문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ㅎ

 

 

 

 

홍례문을 지나면 길은 근정문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3문의 경복궁이 이어집니다.

 

근정문에 이르기 전에 만나는 저 다리는 영제교입니다.

 

 

 

 

홍례문과 근정문 사이의 텅 빈 공간에는 명당수가 가러질러 흐르고

영제교라 부르는 금천교가 놓여 있습니다.

 

 

 

 

유홍준님의 책을 읽다가 경복궁에 가면 꼭 보리라 생각한 영제교의 천록상들입니다.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던 조각상들이라고 합니다.

 

영제교 돌다리 양옆의 호안석축에는 물길을 뚤어져라 내려다보는

돌짐승이 모두 네 마리 조각되어 있다.

이들은 천록이라는 전설 속의 신령스러운 짐승으로

'왕의 밝은 은혜가 두루 미치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천록상에는 왕의 밝은 은혜가 온누리에 미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서려 있는 것이다.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중에서

 

 

 

 

이 천록 조각은 대단히 생동감있는 명작이다.

한껏 웅크리고 있는 자세도 실감나지만 금천을 뚤어져라 응시하는 눈의 표정은 살아있는 듯하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천록들의 표정이 개울을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지 능청스러운 모습이라는 점이다.

네 마리 모두 표정이 다른데 한 마리는 아인슈타인이 '메롱'하는 것처럼 혓바닥을 날름 내밀고 있다.

앞발로 턱을 고이고 넙죽 엎드려 있는 모습은 "내가 나타날까 말까를 목하 궁리중"이라는 듯한 표정이다.

 

이 천록 조각은 창건 당시부터 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영제교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서면서 이 조각들은 수정전 앞뜰로 옮겨졌다가

경복궁 복원 때 다시 제자리로 옮겨놓은 것인데 그중 한 마리는 이상하게도 등이 파였고 뚜껑도 덮여 있다.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중에서

 

책을 보지 않고 경복궁을 둘러보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곳들이

여행자에게 가깝게 다가옵니다.

경복궁의 구석구석 친절한 안내에 따라 돌아보는

경복궁 이야기, 그 세번째 이야기도 놓치지 않으실거지요?

 

아직 경복궁 경회루를 보지 못하셨다면 클릭해보세요~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들고 경복궁 돌아보기-경회루 특별관람 http://blog.daum.net/sunny38/11775958